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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 토리노 - Gran Torino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노인후의 삶이 어떨지는 생각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가 올바른 표현이겠지.
간혹 반려자가 떠난 이후의 삶을 사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들을 볼 때면, 사람의 노년이 아름다울수만은 없으며, 그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나름의 한을 가지고 남은 평생을 그 기억들에서 허우적대며 살아야할지도 모른다는 쓸쓸한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래서 많은 영화들에서 화자를 노인으로 잡고 그들이 떠올리는 기억속으로 들어가는 구도를 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인의 기억. 그것은 한평생이고, 또 사라지지않고 쌓여가는 과거이며 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일테니.
그랜 토리노의 이 깐깐한 노인 코왈스키는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한국전 참전에서 있었던 자신의 살인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이끌고 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의식이 지나친 나머지 죽으면서 남긴 참회하라는 아내의 말은 들어먹지 않는 고집쟁이이기도 하다.
꼬장꼬장. 온갖 편견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노인네. 인종차별주의자에다가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꼰대.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모습의 노인의 모습을 다 갖춘 이 노인네가 변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내 것을 건드리는 것이 싫어 그랬을 뿐이다. 자기집 마당까지 침범하며 싸움질하는 이민계 갱들을 혼내주려다보니, 몽족 소년을 구하게 되었고, 기대한 적도 아니 사실 그래주기를 전혀 바라지 않는데도 이웃집 몽족 식구들은 그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며 음식이며 꽃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바라지도 않았는데, 그의 차를 훔치려다가 들키고 말았던 소년을 심부름꾼으로 부리라고 시키게 된다.
아내가 죽은 이 집에서 평온하게 살기를 원했건만, 저마다 자신의 가정을 꾸린 아들들은 그를 노인정에 보내려고 하고, 어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전혀 무지한 날라리 손녀딸하며, 시도때도 없이 길에서 사람을 위협하는 흑인, 동양인 깡패들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투성이.
보기싫은 것을 바꿔보려다가 그가 바뀌기 시작한다.
백인이 아닌 인종은 멸시하다시피 했는데 동양인들의 친근한 관심이 기분나쁘지 않았고, 그들의 답례 의식에 익숙해져가게 되었고, 계집애처럼 우물쭈물한 소년을보니 남자로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그렇게 노인은 이웃집 동양인 가족에게 정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바꾸기 힘든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 노인일 것이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이상, 하루아침에 무언가 크게 바뀌길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평생 그들이 간직했던 성격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다가 죽으며, 아마 나 역시 나이들어 그렇게 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결국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은 "마음"이구나 싶었다.
아껴주고 싶고 보호해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노인이 되어서도 인간은 변한다.
All you need is love. 결국은 사랑이었구나.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자신도 변화하며,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는 것, 평범한 사람이 거대한 선을 행하게 만드는 것.
모두 사랑에서 비롯되었구나.
그 작은 사랑이 한 인간의, 한 가족의 삶을 구원했다고 말하면 너무 거창한 것일까.
그는 지독한 보수주의자에, 아무도 어여삐 여겨주지 않는 아집쟁이에, 어쩔수 없는 차별주의자였지만,
적어도 "악"을 외면하지 않는 선한 인간이었다.
가끔 "왜 이걸 극장에서 안봤지?"하고 후회되는 영화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 역시 다 보고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박하면서도 거대한 감동이 있는 영화였다. 이렇게 당연한 얘기를 당연하게 풀어내면서도 깊이감을 느낄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거장의 힘일 것이다.
나이가 한살씩 들어갈수록,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점점 너그러워지고, 인간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드러운 남자가 되는 것. 그것이 정말 강한 남자이고 매력적인 남성성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는 것일지.
그의 나이는 이제 황혼기도 넘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 당연하고도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계속 듣고 싶다. 남들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여, 만수무강하소서!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리라.
누군가 그랬다. 예술은 젊을 때는 할 수 있어도 나이가 들면 감각이 떨어져서 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예술에는 감각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있기 때문에 예술인 것이 아닐까.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노장 감독들의 영화에서 범접할 수 없는 깊이감을 느낄수 있는 것은, 굳이 풀어내지 않아도 그들의 삶의 지혜와 황혼기에 접어들때까지 했던 삶의 수많은 고뇌들이 담겨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아마 이 영화를 젊은 감독이 찍었더라면, 이 정도로 가슴 찡하지는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