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할리의 마차
히로아키 사무라 글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서점을 어슬렁거리다가 건져온 <브래드 할리의 마차>는 어쩐지 낭만적인 제목과는 달리 무척 잔혹한 만화이다.
브래드 할리가의 양녀가 되는 것을 꿈처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고아원의 소녀들, 가극단의 여주인공이 되어 화려한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고아원을 떠난 소녀들이 도착한 곳은 어느 형무소. 형무소 죄수들의 심적 안정과 성욕해소를 통한 폭력성 저하를 위해 희생되는 일종의 위안부 소녀들이 되는 것이다.
고아원을 떠나 스타가 되는 꿈을 꾸었으나 처참히 짓밟히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이다.
하루에 몇십명이나 되는 폭력적인 죄수들을 상대하면서, 소녀들은 금방 금방 죽어나간다.

이 만화가 정말 무서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 소녀들이 자살해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처럼 찢기면서도, 6일간 살아있으면 7일째에는 정말 브래드할리가의 양녀가 될수 있다는 부질없고 바보같은 희망. 이곳에서 견디고 살아나가면 뭔가 더 있으리라 하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정말 잔혹한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들은 모두 거짓으로 밝혀진다.
두고온 아내를 떠올리고, 두고온 여자친구를 떠올리면서, 당장은 일주일후에 오게된 새로운 소녀를 기다리는 짐승같은 죄수들.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고아원 소녀를 희생량으로 삼은 잔혹한 남자들의 세계. 그리고 그 잔혹한 남자들을 이용해먹는 더 잔혹한 시스템.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른 채 망가져가는 사람들...
일말의 인간성같은 것을 남겨놓은 것이 오히려 더더욱 잔혹하게 느껴진다.
이 만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희망이라는게 대체 뭐길래 이런 거지같은 상황에서도 살아있게 만드는 걸까.
만화속에 이런 대사가 있다.
절망속에서 죽는 것과 일말의 희망을 간직한 채 별안간 죽어버리는 것- 어느 것이 행복한 것일지.
어느 것을 선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고, 그런 부질없고 악랄한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 또한 결코 행복하고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만화는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물론 수많은 피해자와 수많은 희생량을 거름으로 삼아.
현실이었더라면 과연 해피엔딩이 되었을까. 어쩌면 만화에서나마 이런 해피엔딩을 꿈꾸는 것이 인간의 마음일까.
이것 역시 부질없는 환상일까. 그럼에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절망을 품고 죽어버리는 것보다 나은 것일까.
최근에 들려온 나영이 사건과 맞물리면서, 그리고 일제시대 위안부를 떠올리면서 보는 내내 마음이 불쾌해졌던 만화이지만, 작가의 필력에 새삼 놀라게 되고, 작화도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읽고나니 여러가지로 마음이 불편해지더라.
우리는 대체 뭘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짐승이나 괴물이 아닌, 인간이 될수 있는 걸까.

 p.s 작가 자신이 밝혔듯이 이 만화는 작가가 <빨강머리 앤>에 한창 빠져있을 당시에 기획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연결고리를 전혀 찾을수 없을 정도로 다른 작품이기는 하나, <빨강머리 앤>에 바치는 작은 경외심같은 것은 느껴진다. 우리의 <빨강머리 앤>의 주인공들이 어느 부분에서 등장하는지 찾는 것도 나름의 재미일듯.
귀엽게도 앤 셜리는 그녀가 꿈꾸던 이름 "코델리아"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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