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지옥 - Possess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제목의 싼티 때문에 왠지 꺼려졌던 영화 <불신지옥>.
영화를 다 보고난 후에도 이 제목이 그리 마음에 든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동안 몇년간의 국산 공포영화의 저급한 수준에 실망해왔던 나로써는 기대보다 훨씬 재밌었던 영화였다.
누구나 선호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타 영화장르보다 더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게 추리, 스릴러, 그리고 공포영화류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한가지 감정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긴장감, 공포, 그리고 뭔가 모를 희열감 등,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분명, 능수능란한 연출력가 스토리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왜일까.
우리나라에서 공포영화란 이 계열에 그닥 취미 없어보이는 신인감독들의 등용문, 발로 연기하는 신인여배우들의 등용문이 되어버리니, 심리적 공포와 연출력의 부재가 있을수 밖에 없는 노릇 아닐까.
한 장르에 있어, 장인정신이 간단히 무시되는 현실. 우리나라 영화계가 추리 스릴러에서는 조금은 발전했을지도 모르지만, 꾸준히 여름을 겨냥한 공포영화들이 나오면서도 공포장르에서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
물론 최근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타국의 공포영화들도, 오래된 고전 공포영화들에 비해 감각도, 스토리도, 심리적 압박감도 떨어진다는 것은 인정하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이런 불신을 품고 영화를 보러갔는데, 생각보다 재밌고 진중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예전에 소소하게나마 매니아층이 있었던 <소름>같은 영화와 비교할수 있겠다.
떠들썩하지 않되, 조근조근 얘기할줄 알고, 찢어질 듯한 음향효과로 귀를 혹사시키지 않되, 다만 서서히 조여드는 음향효과로 긴장감을 조성할 줄 안다.
얼토당토 않은 반전은 이제 그만.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풀이해나가면서 환상이나 귀신 출현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 주변의 증언들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 해나가는 솜씨 또한 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매우 무서운 공포영화를 기대하고 갔다가는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공포영화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찢고 자르고 고문하는 잔학성이 아니라, 한맺힌 귀신이 귀청 터질것같은 음향효과를 동반하고 등장해서 사람을 괴롭히는 등의 자극적이고 공허한 공포가 아니라,  내러티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괜찮은 영화가 될 것이다.

이 영화는 토속신앙, 그리고 기독교적 맹신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귀신들린 아이가 등장하고, 그 아이를 둘러싼 이상한 사람들이 출현하면서, 아이의 실종을 둘러싸고 기이한 소문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이웃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언젠가 귀신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되기도 하지만, 막상 귀신은 등장하지 않고,
정작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귀신들리는 기이한 현상에 대한 생경한 공포보다도, 사람 마음의 이기적임과 잔학성이었다.
저마다의 욕망으로 충혈된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과 생각 자체가 호러이고 슬픔인 것이다.
감독이 전달하려는 얘기를 차근 차근 듣고 있다보면 욕망의 잔혹함에 소름끼치기도 할 것이다.

이 제목을 보고 특정종교를 결코 떠올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특정종교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신앙에 대한, 믿음에 대한 맹목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예정이라, 종교에 대해서 특별한 거부감도 호감도 없는 편이지만,
사람들은 왜 종교를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으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극장을 나오면서 해보았다.
맹목적인 믿음의 내면에 욕망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고 말할수 있을까.
내가 더 잘살게 되기를. 건강해지기를. 천국에 갈수 있기를.
그런 욕망 없이, 단지 순수하게 무언가를 믿고 있다고 말할수 있을까.
그리고 모든 것을 내버릴 정도로 무언가를 욕망하게 되었을 때, 그래도 이성과 감성을 간직할수 있을까.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도 판다는데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누군가에게 줏어들었던 광신도들의 이야기를 떠올렸고, 이런 어처구니없이 비현실적이고 기이한 행태들이 인간세계에서는 전혀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참 씁쓸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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