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재밌게 보고 나왔으면 기분이 한껏 상큼하고 즐거워야 하거늘, <마더>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마음이 한없이 불편해졌다.
나는 영화를 보기전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영화를 보기 때문에, 그저 살인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된 아들을 빼내는 엄마의 눈물어린 사투-같은 것을 막연하게 생각했었고, 내게 있어 피보다 진한 가족애같은 것은 언제나 낯간지럽고 부담스러운 것중에 하나였으므로 봉준호의 영화를 기다렸으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피보다 진한 모성. 자신이 오로지 자기자신이 되지 못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애정.
그래. 그것에 대한 영화 맞다. 그런데 왜 이리 등골이 서늘하고 마음이 불편하던지.
잔인함을 평가하는 기준 역시 다양하겠지만, 내 기준에서 이 영화는 무척 잔인한 영화였다.
보고싶지 않은 것을 보여준 것 같아서.
극장을 나오면서 내가 저 여인이었다면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하고 생각해봤는데,
그보다 잔인하고 그보다 더 좋을 것 같은 방법이 없겠더라. 이성은 정의를 택하는데, 감성은 이기심을 택해버린다.
감정과 이성을 마비시켜버리고 이도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로써 이 영화는 아주 잔인해져버렸다.
모든 어머니의 마음속에 들어있을 것. 무한한 모성애가 이렇게 비틀어진 방식으로 보여지다니 정말 무서웠고, 마음이 얼어버리는 것 같더라.
이 영화를 보고 "엄마" 또는 "아줌마"라는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이다.
줘도 줘도 모자란 거대한 모성애에 대한 찬미라면 또 그럴수도 있겠고, (어쩌면 엄마들은 불편하게 바라보기보다는 당연하게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그 거대한 모성애의 지나침이 "악"과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면 또 그럴수도 있겠다.
모든 여자안에, 모든 사람안에 "악"이 있다. 다만 엄마에게는 없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을 따름이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아줌마"라는 존재는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를 넘어선 제 3의 다른 인종이었을런지 모르겠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벌판에서 김혜자 아줌마가 홀로서서 뜻모를 춤을 춘다.
울듯 말듯, 웃을듯 말듯, 애매모호한 표정, 애매모호한 춤.
나도 그랬고, 극장안의 사람들도 모두 그 민망한 춤사위를 보고 키득댔던것 같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서 또다시 김혜자 아줌마는 춤을 춘다. 이번에는 다른 아줌마들과 같이.
이번에는 울듯 말듯한 애매한 표정도 아니고, 그녀가 무슨 표정으로 어떤 몸짓으로 춤추고 있을지 제대로 알아볼수 없다.
영화 시작할때 그랬듯, 영화 마지막의 그 춤을 보고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비슷비슷한 아줌마들에 섞여서, 자신의 표정을 감추고 그저 아줌마 집단이 되는 것.
맹목적 희생의 이름으로, 집착에 가까운 모성의 모습으로.
그렇게 뒤섞여 알수없는 춤추는 것처럼, 모든 아줌마들의 내면에는 이 영화의 주인공 그녀와 똑같은 모성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던건지. 첫장면의 춤보다 마지막 장면의 춤이 더 우스꽝스러운데도 도무지 웃음이 나질 않더라.
그리고 그녀가 오열하면서 "너는 엄마도 없어?"라고 말할 때는 나도 따라 울고 싶었다.
그녀가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듯, 나 역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으니까...
최근 몇년간 본 영화들중에 가장 인상적인 오프닝과 엔딩이었고, 극장을 나오는 순간부터 무척 무겁고 불편한 감정이 가득하긴 했지만 "이런 맛에 영화본다-"싶을 정도로 멋진 영화였다.
봉준호식의 서민 스릴러는 이제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었구나.
엄마랑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엄마는 뭐라고 말했을까. 엄마도 불편해 했을까.
최근 개봉하는 우리나라에서 꽤 주목받고 있는 감독들의 영화를 보다보면,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하기보다는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어떤 한가지에 치닫는 감성을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것이 "지나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지나침에 우리 모두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