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 - Breathl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와, 멋있다. 몇년간 우리나라 인디영화 꽤 봤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재미와 잔향이 남는 영화도 흔치 않았다.
<워낭소리>가 예상밖의 성공을 거두었는데, <워낭소리>못지않은 인기를 몰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영화, 진짜 물건이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듯 인디영화라고 무작정 무겁거나 어렵지 않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슬픔이 한가득한 영화이다. 이 영화 안봤더라면 후회했을 것 같다.
굳이 비교해보자면, 이 영화는 자애심과 인간애 가득한 김기덕영화같으며(날 것의 냄새랄까?), <파이란>같은 잔잔하고 거대한 연민의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는 영화이다.

세상이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착하다. 착한 것이 문제가 되었던 걸까?
용역깡패로 욕설을 입에 달고 살고 폭력이 몸에 배었지만, 이 거칠고 막사는 남자 상훈을 우리는 무작정 미워할수 없을 것이다.
공부에는 생각도 없는 고3, 일단 졸업하면 돈벌 생각만 하는 강단있고 변죽좋은 소녀, 죽은 엄마를 바람나 도망갔다며 욕설을 퍼부어대며 딸에게 칼부림까지 해대는 정신 나간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사느라 삐뚤어진 소녀의 동생, 떼인 돈 받는 사채업자이면서도 데리고 있는 용역깡패들 수고비는 절대 잊지 않고,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사장.
그 어느 인생이 그저 한심하기만 하고, 밉기만 하겠는가.
그들의 피토하는 듯한 욕설들, 몸부림같은 폭력들에서도 피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모든 등장인물들이 상처와 폭력의 고리를 끊지못하고, 이렇게밖에 이어질수 없다는 듯이 죄여오는 현실의 굴레들.
투박하고 거친 이 영화속에서 그 슬픈 운명의 고리를 발견하는 것은 괴로울정도로 가혹한 일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가정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안식처, 괴로울때 숨을수 있는 곳, 결국 내가 돌아올 곳.
그러면서도 세상 다른 누구보다도 인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도의 강력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바로 가족이다.
살면서 당신에게 가장 상처가 되었던 말은 무엇이냐 물어보았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족이 했던 폭언에 대해 얘기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이기 때문에 더 상처가 되고, 완전히 떨어질수 없는 핏줄이라는 것이 또 상처가 된다.
대체 이 핏줄이라는 게 뭐길래, 완전 남인 사람들이 했다면 평생 용서하지 않을 행동들을 묵인하고 넘어갈 수 있는걸까.
이미 몇몇 영화에서 얘기하듯, 가족이라는 건 꼭 핏줄을 나눌 필요는 없는지도 모른다.
피투성이가 된 나를 이해해주고, 상처를 보듬어주고, 치유해주는 것은 꼭 가족일 필요도 없지 않을까.
원래는 별 연고없었을 사람들이 모여 고기를 먹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저런 형태의 가족이 어쩌면 더 가족다울지도 모른다고.
상처를 주었으면서, 상처준지도 모르는 핏줄보다는....

마냥 무겁고 슬픈 영화라기보다는 피식피식 웃을수 있는 코드들이 아주 많고, 그렇기 때문에 슬프기도 한 영화였다.
시종일관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배우들의 욕설에 살짝 거북해하다가, 마지막에는 그 욕설들마저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그래. 사는 게 이런거라면 욕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겠다. ㅅㅂ....
가장 초라하고도 아름다운 인생들의 이야기. 거북하고 불쾌하고 찝찝하면서도 뭔가 따뜻한 인간애가 풍겨서,
다른 말 필요없이 "짠하다"하는 말로 이 영화를 요약할수도 있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에서 피눈물이 철철 난 기분이다.
유명배우 하나 없이, 연기자들 모두 단역배우 출신들이라는데 어느 영화 못지않은 연기 포스를 보여주어서,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인간극장을 보는 듯한 생각마저 들만큼 리얼하다.
감독겸 주연배우인 양익준 감독이 전세집까지 빼면서 만든 저예산 영화라던데, 그가 새집을 살수 있을 정도로(빌리는 게 아니라!!) 이 영화가 성공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내용성에서 훨씬 밀리는 영화들도 잘되는데 이 정도로 마음을 울리고 웃을수 있게 만드는 영화라면 그 정도 댓가는 쥐어줘야하지 않겠는가?
올해에는 재밌게 본 영화들이 많은데, 나의 올해의 영화 베스트 10에는 죽어도 올려줘야겠다.
(아니 그게 무슨 권위가 있다고......;;;;;;;;;)
아...이 영화 다시 보고싶다.

이 참담하기 그지없는 진흙탕같은 세상에 우리는 아직도 살아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장하다.

(+)마지막으로, "아...눈물이 날라고 한다...흑..."하면서 표정관리 하려던 내 옆에서 훌쩍대며 울어대던 어느 덩치큰 청년에게 축복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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