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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 펭귄 클래식 ㅣ 펭귄클래식 1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기쁘거나 슬프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누구에게나 시간은 간다. 잡아두고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도, 빨리 지나갔으면 싶은 지옥같은 순간도, 시간의 속력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절대적으로 똑같이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불변하지 않으면서 가장 정확하면서도, 가장 잔인한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나이가 들고, 이런 저런 일을 겪다가 결국은 죽게 마련이다.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는 이 자연의 섭리를 기이하게 벗어난 벤자민 버튼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아기로 태어나지 않고, 노인으로 태어난 것이 벤자민 버튼이다. 2세 탄생에 기뻐 병원으로 달려갔던 아버지는 당황스러움에 혐오까지 내비치는 간호사들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신생아실에 몸을 구긴채 누워있는 노인이 그의 갓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노인으로 보이든 말든 일단은 신생아라는 신념이 굳게 자리하고 있던 아버지는 노인아들에게 차마 노인옷을 사다줄수 없었다. 그의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이웃집 아이들과 밖에서 뛰어놀아야 마땅한 귀여운 아들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신생아 노인은 관절이 아파서 이웃집 소년들과 노는 것은 사양하고 싶지만, 나름 의젓한 구석이 있어서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가 마땅히 생각하는 것들을 억지로 하면서도, 아버지 몰래 아버지의 시가를 훔쳐피고, 밤에는 할아버지와 시가를 나눠피우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이 기이한 노인 소년이 바로 벤자민 버튼인 것이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면서 노인은 중년의 아저씨가 된다. 제목 그대로 꺼꾸로 가는 인생.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가 되어 죽는 이 기이한 인생을 다룬 소설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꺼꾸로 된 인생이라면 차라리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이대로 늙어간다면, 그의 인생 후반기가 되어서는 인생의 경험이 쌓인 젊은 청년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건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폐와 경험을 딛고 일어선 굳세고 현명한 정신과 무슨 일이든 할수 있는 젊은 체력을 갖추었더라면 무엇을 해도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아쉽게도 소설은 그런 이점까지는 다루고 있지 않더라.
오히려 나는 나이대에 딱 걸맞는 행동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벤자민 버튼을 볼수 있었다.
몸이 노인이면 노인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청년이면 청년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아이일 때는 아이의 생각만을 가지고 있다.
이 기이하게 뒤집혀버린 벤자민 버튼의 인생에서 제일 자연스러운 것은 그것이었다.
나이에 걸맞는 정신. 사실은 그것이 가장 자연스운 진리인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생각해보니 노인같은 아이처럼 징그러운 것도 없을 것 같다.
표제작은 <벤자민 버튼...>이외에도 1920년대 1차대전 후,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여러가지 단편들이 있으나, 하나씩 거론하지는 않겠다. 단지 <벤자민 버튼...>의 리뷰만 쓰는 것은 <벤자민 버튼...>말고는 재밌었던 단편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리츠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정도가 괜찮달까.
피츠제럴드는 사치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단편을 썼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떤 소설들은 순간적인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얄팍하고 가볍기 짝이없는 경박함마저 엿보인다.
예술가가 삶을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더 있어보이는 삶을 위해서 소설을 쓰는 남자는 내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고, (당장 입에 풀칠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치를 위해서라면...) 그래서 충실한 내러티브가 있다기보다는 이벤트나 소동에 가까운 이야기들 -특히, 나의 마지막 자유분방한 그녀들 챕터에 들어있는 단편들-같은 경우에는 널리 알려진 그의 이름만큼의 값어치는 그다지 느끼지 못하겠어서, 여러모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래서 유독 간결하고 환타지 스러웠던 <벤자민 버튼...>이 재밌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째즈시대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시대이다.
그 시절의 패션이나 나른하고 관능적인 분위기는 좋아하는데, 왜인지 그 시대의 소설은 잘 맞지 않는다.
내게는 좀더 우울하고, 좀더 암흑에 가득찬 세계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반짝임, 자유분방함만 넘쳐나는 시대의 세계관과 에티튜드는 내게는 잘 맞지 않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