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5
앙드레 지드 지음, 이혜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좁은 문>은 <독인인의 사랑>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함께 기억나는 추억의 책이다. 이 세가지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기억이기도 하지만, 셋다 속터지게 느리고 답답한 러브스토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세권 다 참을수 없이 지루했던 기억도 똑같다. 어린 시절 읽었던 <좁은 문>은 꽤나 두툼한 책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기억의 왜곡이었나보다. (아마도 지루했기 때문에 더 길다고 느껴졌을지도..) 다시 만난 <좁은 문>은 25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소설이었으니...

그때에도, 지금도 나는 이 소설 주인공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무신론자인 나로써는, <좁은 문>의 여주인공 알리사가 사람보다 신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라는 말은 믿어지지가 않는다. 게다가, 소설속에서 소심하게나마 알리사는 제롬을 은근슬쩍 유혹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렇다고 제롬의 알리사와의 사랑을 맺기위한 노력이 딱히 소극적이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알리사를 사랑한 순간부터, 내게는 너뿐이다-사랑한다- 이런 말을 달고 살았는데, 더이상 뭘 어떻게 적극적이길 바라나.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서 무작정 납치해가기라도 하란 말인가. 그건 너무 강압적이다. 책속의 주인공들을 지켜보는 나로써는, 제롬의 애정공세는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입이 좀 저렴한 부분이 있기는 했어도 그정도야 미숙한 청년의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생각해두자.)
그렇다면, 왜 멀쩡한 두남녀가, 서로 사랑하는데도, 현실적으로도 아무 제약이 없는데도,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것일까.

책속에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짐작해볼수 밖에 없지만, 어쩌면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도망가버린 알리사는 사랑이라는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이 아니었을지. 어머니가 떠난 후, 무기력해진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지례 낙담해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자신도 어쩌면 어머니처럼 변해버릴지도 모르다는 것을.
닿지도 못할 신에게 의지해버린 것은, 어떤 초월적인 것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변질되지 않는 허공의 사랑, 알리사가 택한 것은 현실의 열렬한 애정공세보다 그런 것이었다.
신은 대답을 하지 않으니, 자신이 붙들고만 있다면 배신당하지 않을수 있으니까.
성녀처럼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 역시 한낱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누구도 그녀의 희생을 바라지 않았으며, 자신 역시 성녀가 되지 못한다. 끊임없이 제롬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믿음속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은 그 고질적인 불안감과 불신의 소용돌이에 먹혀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롬이 소심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너무나 지쳐버렸기 때문이지, 더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영원한 것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면 그 기억은 영원히 기억될 거라는 사실을 알리사가 알았더라면 좋았텐데.

어른이 되기까지, 내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내가 꿈꾸고 있었던 것은 신은 아니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초월적인 존재를 꿈꿨다. 그것이 몽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그저, 자라지 못한 소녀의 결벽증에 가까운 망상이었을 뿐이었다.
다 커서 읽은 <좁은 문>의 알리사는 여전히 소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여전히 내게는 지루한 <좁은 문>이었지만, 어린 시절 읽었을 때와 달리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게다가, 캬-이 표지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좁은 문>의 핵심되는 씬을 딱 찾아놓은 듯한 느낌이다.
잘못된 조사사용이 몇개 눈에 띄었는데 그런 점도 좀 개선이 되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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