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모에 - 혼이여 타올라라!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재작년인가, 잠깐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을 때 보았던 기리노 나쓰오의 <다마모에>. 이제서야 책으로 보게 되었다. 기리노 나쓰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인지라 기대도 컸는데,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 자체의 심심함에 잠시 멍해졌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이 작가의 매력은 그런게 아니라고, 단정짓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감따위 갖지 않고 보았던 책이지만, 의외로 굉장히 재밌었다.
아마도 시기가 시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어감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면 제대로 된 삶을 살게되는 것인지, 20대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생각을 해보았는데 미래를 알수 없는 것처럼 도무지 알수 없는 문제였다. 아마도 30대를 정리하면서, 40대를 정리하면서도 마찬가지이겠지.
그런 때 읽은 <다마모에>. 혼이여 타올라라!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의문점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보게 될수 있었다. 그리고 나이가 더 들어가고, 인생에서 모르는 것이 아직도 넘쳐나도, 용기만 있다면 혼은 언제든지 타오를수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

<다마모에>의 주인공 도시코는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온 주부이다.
살면서 남편에게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남편이라는 이름에 아주 걸맞는 성실한 남자였다. 그러나 단한번도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소심한 그녀에게는 사랑의 열정 보다는 삶의 안정감이 더 어울렸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가슴 떨리는 경험 한번 해본 적 없고, 결혼후에는 직장을 다닌 경험도 없었고, 집밖의 일상이란 그닥 알고 있는 것이 없는 여자- 59세의 나이에도 온실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여자가 이제 홀로서기를 하려고 한다.
어느날 갑자기 남편은 죽어버렸고, 다 큰 자식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얼마 되지도 않는 재산을 가지고 어머니와 다투기까지 한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죽은 후에 그에게 10년이나 사귀어온 내연녀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가족에 대한 배신감은 넘쳐흐르는데, 도시코는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화내는 법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씩 경험해보기로 한다. 살면서 한번도 해오지 않았던 일들,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채워나간다.
캡슐 호텔이라는 곳에도 가보고, 아내 있는 남자와 살짝 바람도 피워보고, 자식들에게 화도 내보고, 예쁜 옷도 사고, 거기에 어울리는 가방과 구두도 사본다.
그리고 그녀는 서서히 변해간다.

영화 <다마모에>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장면 중 하나는, 도시코의 죽은 남편의 내연녀 아키코의 발에 칠해진 페티큐어를 클로즈업 했던 씬이다. 남편에게 향을 드리러 왔던 중년의 여성 아키코의 발에 칠해진 페티큐어는, 영화의 런닝타임이 한참 흐른 후 막바지에는 지워져있다.
소설속에도 아키코의 페티큐어 얘기는 등장한다. 겨우 발톱에 칠해놓은 페티큐어따위가 무엇이 특별하단 말인가. 그것은 그 페티큐어가 <다마모에>에 등장하는 여자들에게 있어서는 희망과 자아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내연녀에게 절대 뒤쳐지는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았던 도시코는 평소 바르지도 않던 립스틱을 바르고 아키코를 맞지만, 아키코의 발에는 페티큐어가 칠해져 있었고, 도시코는 일단 거기에서 폐배감을 느낀다.
여기에서 중년 여자가 발톱에 페티큐어를 했다는 것의 의미란- 당연히 손톱에는 메니큐어가 칠해져 있을 것이 뻔하다는 뜻이고,  손톱이나 발톱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써서 치장하는 여자가 옷을 대충입을리가 없으며, 때마다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받는 것이 분명하고, 공들여 화장을 하는 여자라는 뜻이 된다.
신발을 신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발톱까지 치장하는 여자-중년의 여자에게 있어서 그것은 아직까지 그녀가 여자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비록 불륜이지만, 남자에게 사랑받던 중년 여자 아키코는 그가 죽은 후에 그 "희망"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두 여자 도시코와 아키코는, 한 남자의 죽음으로 전혀 다른 방향의 변화를 겪게 된다. 도시코는 남편을 잃은 후에 자유와 삶의 열정을 되찾았으며, 아키코는 남자를 잃은 후에 희망을 잃었다.
소설속의 도시코의 다소 소심한 일탈들은 그녀가 하나씩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계절에 걸맞는 옷을 사고, 구두를 사고 가방을 사고- 이런 것이 자아회복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 싶은 남자들이 있을런지도 모르겠지만, 여자의 변신과 자아회복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거울에 비추어 보았을 때 초라하지 않는 자신이 되는 것.
여자의 자신감에서 그것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니까.

책을 읽으면서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도시코보다 한살 어린 우리 엄마는 나와는 달리 활발하고 사교적인 분이시다.
그리고 아직도 유행에 민감해서, 매년 유행한다 싶은 것들은 한번쯤 해보고 싶어하고, 가끔은 내 옷도 훔쳐입는다. 어린 시절에는 잘꾸미고 다니고, 또래 아줌마들보다 훨씬 동안인 엄마가 자랑스러웠고, 조금 더 커서는 조금 짜증을 냈었다.
가끔씩은 엄마가 자식들보다도 친구들과 놀러다니고,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는 시간이 더 중요한게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더 나이가 들고보니, 그런 생각은 돌고 돌아 어린시절처럼 그런 엄마의 성격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자식에게 희생하는 부모는 싫다. 우리 부모가 그랬다면 나는 숨이 막혀 죽어버렸을런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여자"인 우리 엄마가 좋다.
아직도 거울앞에서 한시간동안 화장하는 것이 보기 좋고, 때마다 유행하는 옷을 사질러 버리는 우리 엄마가 좋다.
자신에게 투자하지 않는 여자만큼이나 매력없는 여자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그런 여자가 되고싶다고 생각한다. 쉰살이 넘고, 일흔살이 넘어도, 폐경기가 찾아오고, 인생의 쓴 맛에 좌절해도, 그래도 언제까지나 여자인 여자가 되고싶다.
남편이 죽고나서야 자신의 "여자"를 찾은 도시코 여사처럼 뒤늦게 깨닫기는 싫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이 들고, 누구나 죽는다.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생명이 붙어있는 한,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갈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시간에 모든 것을 양보하는 무기력함에 찌들어서는 안된다.
살아있는 한, 숨을 쉬는 한, 심장은 언제든지 세차게 뛸 준비가 되어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먹기에 따라 지금, 당장, 바로 여기에서 대기중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꿈들은 하나씩 포기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혼은 다시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더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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