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3 - 나의 식인 룸메이트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2
이종호 외 9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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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표지에 작은 글씨를 주의하라.
이 책은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나왔던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그 세번째 책이다.
하긴 제목이 낯설다고 해도 강렬한 제목과 그로테스크한 표지 컨셉덕분인지 본격적인 호러단편집임을 한눈에 알아볼수 있겠지만 말이다.
1편부터 3편까지 중복되는 작가들의 이름도 보이고, 또 그 작가들의 발전모습도 엿볼수 있다.
전체적인 감상부터 먼저 말하자면, 전작들보다 "호러"라는 측면에서의 느낌은 많이 줄어든 느낌이지만, 이전작과는 확연히 달라진 면모들이 많이 보이는 책이고, 전체적인 완성도와 재미면에서는 지금까지의 시리즈중에서는 최고이다.
좀 더 다듬어져 매끄러운 문장력, 색다른 소재들, 단지 "여름에 읽는 무서운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이 포진해 있어서, 이제까지의 작품들에서 느껴졌던 한계를 극복하는 점이 돋보여 읽는데 무척 즐거웠다.
 
 
신지수:나의 식인 룸메이트
표제작인 "나의 식인 룸메이트"는 잡지사 기자인 주인공이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니 식인 괴물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어, 그 괴물에게 3일에 한번씩 먹이감을 제공하기로 계약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단편이다.
소재의 강렬함 덕분에 "공포소설"이라는 느낌은 톡톡히 받을수 있는 작품이지만, 강렬한 소재를 다소 평이하게 풀이해 나간것 같아서 아쉽다. 마지막 임팩트가 더 강했으면 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단편이다.
 
장은호:노랗게 물든 기억
어린 시절 질투가 났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항상 질투가 났었던 그 아이의 예쁜 엄마는 아이가 죽고난 후에 매일 주인공을 엘레베이터에서 기다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어간다.
이 단편은 어쩌면 아주 뻔해질수 있는 이야기이다. 아파트 괴담같은 것은 질리도록 많이 들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무척 유치해질수 있는 작품이었는데, 딱 좋은 호흡과 서서히 첨예하게 파고들어가는 심리묘사가 무척 잘되어있어 유치하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던 작품이다. 오히려 한밤중에 읽으니 초조해지면서 살짝 무섭기도 했다.
 
신진오-공포인자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공포가 극대화 되는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돌기 시작한다. 그것은 감기처럼 찾아와 개인을, 가정을, 사회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포비아에 시달리느라 본분의 생활을 잊는 사람들-그리고 주인공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그 공포전염병에 물들어간다.
우리나라 공포소설에서는 볼수 없는 소재를 가진 소설로, 묵시록적인 느낌이 강한 소설이다. 어찌보면 SF 공포소설이라고도 할수 있지 않을까. 안정적인 묘사와 무리하지 않는 전개가 마음에 들었고, 이 단편은 장편으로 만들어도 재밌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명희-담쟁이 집
언니와 함께 담쟁이집에 가게된 주인공은 그 집에 가게된 이후로 이상하게 변해버린 언니를 보게된다. 원하는 것은 모두 갖춰져 있을 것 같은 담쟁이 집이 어린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겠는가.원하는 게임이나 인형은 다 가지고 올수 있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변해버린 언니가 무서워 그 집에 가지 않기로 하는데, 자꾸만 주인공을 담쟁이집으로 데려가려는 언니.
이유는 무엇일까.
신비스러운 느낌과 어딘지 알수 없는 불안함이 멋지게 표현된 단편으로, 마지막 반전에서 슬퍼지는 단편이었다. 지난번 단편집에서 "들개"라는 강렬한 단편을 실었던 우명희 작가의 다소 유한 단편이었는데, 이런 느낌도 무척 좋다.
 
엄성용-스트레스 해소법
우유부단한 성격탓에 여러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끔찍한 두통에 시달리는 남자. 마치 짜기라도 한듯, 현실은 그의 목을 점점 죄여온다.
그리고 그는 마음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들을 죽이라고.
내가 뽑은 이 단편집 베스트 오브 베스트중 하나라고 생각되는 단편이다.
매끄러운 진행과 주인공이 광기에 시달리게 되는 충분한 이유를 적제적소에 꼽아넣는 센스, 그리고 주인공과 함께 점차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호흡도 몹시 좋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도 돌만하다. 현실적으로 가장 와닿는 이야기였다.
 
김준영-붉은 비
어느날 붉은 비가 내리고, 그 비를 맞고 짐승들이 죽는다. 슬픈 마음을 뒤로한 채 애완동물을 묻어야 하는 사람들, 거리에 무더기로 죽어있는 비둘기와 개, 고양이들...
이런 이상현상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하기위해 집을 나선 주인공은 버스안에서 거리에서 죽은 동물들을 치우고 있던 환경미화원들이 다시 살아난 죽은 동물들에게 습격받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거리는 죽었다가 살아난 동물들과의 사투를 벌이게 되는데...
스티븐킹의 몇몇 소설들이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기현상으로 인해 죽었다가 살아난 존재들과의 싸움을 다루고 있어서일까. 그러나 이런 작품이라면 스티븐 킹도 두렵지 않다. 역시 내가 뽑은 이 단편집 베스트 오브 베스트! 그리고 이 작품도 장편으로 본대도 재밌을 것 같다.
 
전건우-선잠
교통사고로 연인을 잃은 사람이 불면증에 걸려버린다. 계속되는 선잠속에 혼자만 살아남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주인공은 병원에 찾아가 불면증을 호소하던 중, 의사의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사고당시 그는 혼자였고, 그에게 죽은 여자친구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고...
한국공포문학 단편선에서 이전에는 받을수 없었던 느낌을 받았던 단편이다. "어라..."하고 어느 순간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선잠속에 꾸는 꿈처럼 몽롱한 느낌이 가득찼던 단편. 불가사의하게 진행되던 이야기의 풀이도 좋았고, 호흡도 좋다.
역시 내가 뽑은 이 단편집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이종호-은혜
치매에 걸린 어머니,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 남동생에 여동생까지 딸려있는 이런집에 어떤 여자가 시집을 오게된다.
은혜라는 이름처럼 예쁘고 착한 이여자는 맏형의 애인으로 갑자기 집에 등장하더니,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채 아내가 된다. 군소리 한마디 없이 시부모를 봉양하는 것도 모잘라, 일요일에는 봉사까지 가는 이 도가 지나치게 착한 여자- 그런데 어째서인지 정이 가기는 커녕 의혹만 깊어져간다. 이번이 네번째 결혼이라는 불가사의한 과거와 함께.
매끄러운 전개와 안정적인 느낌이 편안하게 읽을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기는 하지만, 결말이 평이하다는 느낌은 어쩔수가 없다. 사실 읽으면서 나는 구미호같은걸 상상했다나 뭐라나...
 
황희-얼음 폭풍
미국 이민가정의 이야기이다. 가진 돈을 모두 카지노에서 잃어버린 남편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때마침 불어닥친 눈폭풍으로 도시는 쑥대밭이 되었다. 게다가 학교갔던 딸아이는 돌아오지 않는 갑갑한 상황. 주인공은 딸아이를 찾으러 눈속을 내달린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정체가 작품에 너무 많이 반영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꼭, 남의 일기를 읽는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캐릭터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작가가 놓쳐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지는 확실히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불편한 생각으로 이 단편을 보았던 것 같다.
지난번 책에 넣었던 "벽곰팡이"나 이 작품이나, 둘다 미국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역시 미국에서 이민중이라는 작가의 내력을 함께 읽어서인지 작가가 지나치게 주위에서 소재를 찾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더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두 단편에서 거의 비슷한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니, 어쩐지 안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김종일-불
주인공이 조회시간에 돋보기로 개미를 태워죽이는 장난을 치고 있던 도중, 학교에서 왕따당하는 한 소년이 자신에게 말을 건다. 어딘지 무덤덤한 것이 알수 없는 불안감을 주는 녀석. 그 녀석에게는 불을 일으키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저 나름대로는 호의인지, 주인공을 괴롭히려던 남자를 불로 태워버리는 엄청난 짓을 저지르는데,마치 친한 친구처럼 들러붙어 하는 말이, 이 사실을 남들에게 알리면 네 부모고 누나고 다 태워버리겠다는데..
안정적인 느낌의 단편인데 딱히 재미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재밌는 것도 아니었다. 김종일 작가라면 조금 더 강렬한 소재를 써주길 바래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단편은 무척 평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단편집을 다 읽으면서 확연하게 느낀 것은, 거의 모든 작품들의 완성도가 무척 높아졌다는 점과 읽기가 훨씬 편해졌다는 점이다. 1편은 강렬한데 비해, 완성도면에서는 조금 아쉬웠고, 2편은 안정적인데 비해 소재는 아쉬웠었는데, 1,2편의 장점을 적절히 살려서 단편을 읽는 즐거움을 한껏 주는 단편집이다. 거의 모든 작품들이 재밌었고, 소재들이나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딱 적당하다.
찌르고 죽이는 장면 자체가 공포인 것만은 아니다. 공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물질적인 잔혹성 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심을 극대화 시키는 긴장감이 아닐까 싶은데, 이 단편집의 거의 모든 단편들이 그런 긴장감을 충실히 주고 있어서, 아주 후련하고 즐겁게 읽을수 있다.
(말 그대로 "신나게 읽어내려갔다.")
내년에도 나올 단편집을 기대해본다. 해가 갈수록 좋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내년에도 굳게 기대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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