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안토니오 스쿠라티 지음, 이현경 옮김 / 낭기열라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2001년 어느 날, 졸업시험을 치르기 위해 체육관으로 오토바이 헬멧을 든 학생이 들어온다.
비탈리아노라는 이 문제아는 오토바이 헬멧에서 총을 꺼내 시험을 감독하기 위해 체육관을 지키고 서있던 교사들을 향해 총알 세례를 퍼붓는다.
"저의 무지를 깨우쳐주세요, 선생님!"이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읊은 채 역사교사이자 철학교사인 안드레아 마레스칼키 선생만을 살려둔 채, 그는 유유히 세상밖으로 사라진다.
무차별 총기 난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안드레아에게 세상은 생존자라는 한편으로는 영광스럽고도, 또다른 한편으로는 치욕스러운 이름을 지어주고, 온 세상은 그 사건의 유일한 증인인 안드레아에게 "어째서"냐고 일제히 묻는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앞서 커다란 죄책감과 부담을 짊어진 자, 생존자 안드레아는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질문세례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갖혀 사건을 떠올려본다.
어째서, 왜, 비탈리아노는 그 많은 교사들을 무참히 살해해버린 것일까.
절망과 죄책감에 빠져 죽음보다 못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안드레아가 살아있기 위해 반드시 찾아야하는 질문의 답을,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고통과 고독, 무기력속에서 안드레아는 답을 찾기로 한다.
과거를 돌이켜, 자신이나 학교가 비탈리아노라는 문제아에게 저질렀던 실수, 잘못된 교육, 불운한 연결고리, 그 무엇이든, 생존자로써의 책임감을 짊어지기 위해서.

짧게 이 책의 이야기를 들어도 누구나 떠올릴수 있듯이, 이 책은 올해 세상을 공포와 경악, 안타까움과 절망으로 술렁이게 만들었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안드레아의 일기와 기억의 추적으로 비탈리아노를 악마의 광기에 빠뜨리게 만들게 된 연결고리들을 아무리 찾아도, 우리는 비탈리아노가 바랬던 무지에의 계몽이 무슨 뜻이었는지, 확실히 알수 없다.
비탈리아노는 속된 말로 '노는 아이'였고, 낙제생으로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도 많았으며,
한편으로는 무척 똑똑하고 철학적이었으며, 또다른 한편으로는 멕시코에 가는 것이 꿈이었던
어쩌면 세상에 많은 그저그런 평범한 학생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에게는 소설에서처럼 변덕스럽고도 불우한 환경도, 세상을 총알로 쓸어버릴정도로 깊은 트라우마나 인생을 좌지우지 할만한 열등감이나 증오심도 없다.
비탈리아노는 스무살, 그 나이 또래의 청년들이 그렇듯, 젊은 혈기에 세상을 비웃는 건강한 증오심이 있었고, 책속의 말처럼,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는 신들이 사랑하는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젊은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평범하고 건강한 젊은이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병이 든 것은 비단 이 젊은이뿐만이 아니라 어찌할 바도 모른 채 섣불리 진단내려버리는 인간세상인지도 모른다.
흔히 자주 쓰는 트라우마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새삼 궁금해진다.
똑같은 상처를 받고 살았던 사람이라도 예후는 사람마다 다른데, 인간이란 존재는 무언가를 확실히 결정짓고, 판단내리고, 그것이 진실이라 믿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던가.
언제나 세상에 통용되는 진실라는 것은, 믿는 것이 당연한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믿어야만 한다는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안드레아가 알수없어 끊임없이 고뇌하듯이,
이런 경우에도, 저런 경우에도, 이런 불행한 사건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학생들의 권익을 위해 애쓰는 자애로운 선생처럼 비치는 안드레아 역시,
또다른 자신처럼 느껴지는 비탈리아노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학생들과 교사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이래도 저래도 피할수 없었던 사실들에 절망을 했듯이.
하나를 위하자면 다수의 것이 피해입게 되고, 다수를 위하자면 하나를 완전히 절제해버려야하는 진퇴양난의 모순들속에서 교육의 의미란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무엇을 어쩌자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생각을 좀 해보자는 것뿐.
책을 절망에 빠진 지도 모르는 모순덩어리 세상을 묵직하고 절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우리들에게 "어째서"라는 질문을 토해놓고, 애매모호하고 씁쓸하게 사라져버린다.

인간은 결국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어째서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어째서 사람이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넣는지.
어째서 마음속의 악마가 깨어나는지.
그렇게나 수많은 연구를 해도, 하나의 사실로 귀결지을수 없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생각을 가지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살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잘못된 많은 것들을 옳고 진실되다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나도 모르겠어. 우리들 모두 알지 못해."
우리 모두 알지 못하고, 가끔 그 알수 없는 세상과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우리는 책임질수도 없고, 결론지을수 없는 허무한 무기력감에 괴로워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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