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글빙글 도는 미끄럼틀
나카무라 코우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 꿈을 잃어버린 걸까.'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세상에 얼마되지 않는 청춘의 꿈을 이룬 사람중 하나인 나는 꿈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다행히도 내게는 꿈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고, 기회가 있었고, 성실함이 있었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복받은 인생이라고.
그런데도 가끔씩 "너는 한가지 길을 쭉 이어나가는구나. 부러워."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째서 은근슬쩍 부아가 치밀고 마음이 씁쓸해지는 걸까.
현실은 꿈처럼 달콤하지 않고, 열정만으로 부딪히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문제가 여기저기서 도사리고 있고, 우왕좌왕하면서 방황하다가, '나 제대로 살고 있는걸까'하는 물음을 백만번 토해놓고도 답을 찾지 못하고, 그러다보니 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꿈이 퇴색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그런 질문에 울컥하는 것은 질문자 본인의 실수가 아니라, 흔들리는 자신에 대한 화가 아니었을까.
 
나카무라 코우의 <빙글빙글 도는 미끄럼틀>을 읽으면서 여러번 생각해보았다.
청춘시절 꾸었던 반짝이는 꿈과 날개달고 날수도 있을 것같던 열정에 대해서.
획일화와 효율화. 모두 결과에만 촛점이 맞추어진 딱딱한 세상을 살아가는 주인공들.
어찌된 일인지 학교를 휴학하고 학원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나',
공장에서 기계처럼 맞추어진 채, 효율화 효율화를 부르짖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쓰로와 치바,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베이스를 엉겹결에 맞게되고, 할아버지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은 오자키, 수학을 좋아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기로 했지만, 수업을 조금도 알아들을수가 없어서 결국 때려친 나카하마.
다섯 젊은이의 일상은 시계초침처럼 흘러가며 청춘의 열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느낄수 없는
평범하고 무미건조하기만 해보인다.
일상은 그런 것이었지. 무료하고 건조하다. 즐거운 일도 잠시, 언제나 평준화되어있는 일상들.
뭐 재밌는거 없을까 하고 찾아보아도, 그건 늘 그때뿐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니, 그런 일상을 가끔은 즐겁게 받아들일수 있었던 것은 꿈이 있었기 때문인 것같다.


청춘의 꿈이나 열정같은 걸 얘기한다고 해서,
반드시 미친듯이 즐겁거나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감격적이지는 않아도 된다.
이 무미건조하고 차분한 소설은 충분히 청춘의 열정을 되살리게 만들어준다.
심심한 일상을 부유하며 살아가지만, 마음속으로는 비틀즈를 연주하는 청춘들은
빙글빙글 도는 미끄럼틀(Helter Skelter)를 타고, 저마다의 황금비율의 꿈의 세상을 찾아간다.
책속에 실린 젊은 치기와 열정에 달뜬 젊은이들의 밴드 모집광고를 보면서 아직도 마음이 두근거리며 흥분되는 것은
자신의 근본을 잃어버린 듯 우왕좌왕하는 최근의 나도 아직은 꿈을 잃지 않았고,
또 아무도 모르는 마음속의 열망들을 언젠가는 밖으로 불태울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그래.
꿈이란 언제나 즐거운 것이었다.
어릴 때에도,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무료한 일상을 견뎌내고 조금더 즐겁게 살수 있도록 자신에게 달아주는 날개같은 것이었다.
"빙글빙글 도는 미끄럼틀" 후반부, 찬란한 석양 아래 언젠가 또다른 꿈을 꾸게될 아이의 머리를 잘라주며 Helter Skelter를 듣고, 언젠가 만들어져 세상에 울릴 밴드의 음악을 상상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중 하나로 기억될것이다.
무언가를 꿈꿀수 있다는 것은 무척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축복받았다는 사실을
이 책으로 다시금 깨닫는다.
 
다시 한번 날아보자. 다시 한번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아보자.
다시 한번 꿈꾸고, 다시 한번 내 세상을 불태울 열정의 불을 당겨보자.
이불속에 숨어 책을 잃고, 수업중에 책속에 만화책을 숨겨 읽고,
이어폰을, 내 방을, 내 심장을 미친듯이 때려대던 록음악을 들으며 감격하던 그 순간 순간들을 잊지 말자.
꿈꾸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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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11-2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역시 시즈님 서평은 깊이가 느껴집니다. 공감가는 글.
청춘을 이야기하는 책은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좋더라고요ㅋㅋㅋ

Apple 2007-11-2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예상외로 아주 괜찮았어요. 쥬베이님에게도 추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