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의 발레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김의석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잊을수 없는 한 장면,
당시 초미소녀였던 제니퍼 코넬리가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던 장면을 창밖에서 소년이 몰래 훔쳐보는 장면.
워낙 어릴적에 본 영화라 그 영화의 상세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머릿속에 뚜렷히 각인되고 있는 그 장면 덕분에 나는 그 영화를 그 장면으로 기억하곤 한다.
평화롭고, 아름답고, 나약하고 어딘지 무척 그리워지는 첫사랑의 애달픈 설레임같은-내 마음속의 명장면.
이 소설을 고르게된 계기는 표지에서나 제목에서나 그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사랑하던 첫사랑 소녀의 이야기같은, 그런 느낌을 받기를 원했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기도 했고, 또는 아니기도 했다.
 
말을 훔친 댓가로 5년을 감옥에서 보내야했던 앙헬 산티아고는 잘생긴 죄(?)로
감옥에서 윤간과 괴롭힘에 시달리던 청년이다. 대통령 특별 감면으로 출옥하게 되고,
자신을 괴롭히던 간수 산토로를 반드시 죽이리라 엄포를 놓고 세상에 나오게 된다.
겁에 질린 산토로는 살인마 리고베르토에게 앙헬을 제거하도록 사주하고,
나름대로의 알찬 포부-크게 한탕해서 떵떵거리고 살리라는-를 가지고 세상에 나온 앙헬은
발레리나를 꿈꾸는 소녀 빅토리아를 만나게 된다.
낙제생에다가, 돈이 없어 발레 교습소비도 못내고 있는 불쌍한 소녀 빅토리아.
청춘의 불장난처럼 보이던 앙헬과 빅토리아의 사랑은 내 생각보다 훨씬 깊고 단단한 것이었다.
 
앙헬이 출옥하던 날, 니콜라스 베르가라 그레이 역시 출옥한다.
칠레에 사는 사람이 그의 이름을 알지 않고는 간첩일정도로 유명한 그는 대(大)도둑이었다.
천재적인 절도범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나, 감옥에서 썩어가는 동안 그는 나이를 먹었고, 변했다.
크게 한탕하고 나서 그가 얻은 것은 감옥에서의 공허하고 외로운 생활 뿐이었다.
범죄자인 남편에게 질려 사랑하는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떠나버렸고,
훔친 돈 역시 친구라 믿었던 자에게 홀랑 털려버렸다.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사랑도 없이, 베르가라 그레이는 허름한 여관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데,
그의 앞에 젊은 청년 앙헬이 나타나 감옥에서 난쟁이가 알려준 대로 함께 크게 한탕하기를 제안하지만,
감옥에서 세상의 냉험한 이치를 깨달은 60의 노인 베르가라 그레이는 거절해버린다.

<빅토리아의 발레>를 이끌어나가는 힘은 사랑이다.
남녀간의 사랑, 그리고 인간과 인간과의 끈끈한 정.
도둑질할 목적으로 만난 사이지만, 베르가라 그레이는 낯선 청년 앙헬이 돈 좀 빌려달라는 말에도
욕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돈을 내어주고, 앙헬 역시 그런 베르가라 그레이를 따른다.
우울한 현실을 탈피하고자 발레리나를 꿈꾸던 보잘것 없는 소녀 빅토리아를 구하기위해 그들은 온 힘을 다 쏟는다.
모두 거리에서 만난 인생들, 마냥 순수하지는 않은 가난하고 초라하고 갈곳없는 처지들인데도,
그들에게는 인간과 인간사이에 가장 중요한 "믿음"이 있다.
풍부한 문체, 통속적이면서도 낭만을 잊지 않는 여유- 라틴어권소설에서 갖추어야할 것들은 모두 갖춘
삶에 녹아든 열정과 가난에의 낭만을 지닌 소설이었다.
딱 이브라함 페레의 목소리같은 느낌의 그런 소설.
 
영화 <일포스티노>의 원작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는 영화는 보았지만,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같은 작가의 소설이라니 어딘지 비슷한 느낌을 받을수가 있었다.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역시 위시리스트에 달아놓아야겠다.
여유를 느껴보고 싶을 때, 삭막한 소설들에 지칠 때쯤에 꺼내볼수 있도록...
 
p.s 표지와 띠지의 더할 나위 없는 조화!!!! 책이 너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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