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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다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다
박누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4월
평점 :
그림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특히 시각적인 효과에 종종 현혹되곤 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는 것, 사진을 보는 것, 영상물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다.
학교다닐 때, 교과서를 배정받고 제일 먼저 펴드는 것은 미술책이었는데,
이유는 아주 단순히 그림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술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는 미술이야기들은 왜 그렇게 재미없던지.
인상파이니, 야수파이니 하는 일종의 그림의 장르를 외워야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미술은 언제나 감상하기 이전에 이론적으로 접근해야하는 느낌이었고,
나는 항상 그런 점이 싫었다.
나는 모든 예술에 있어서 가장 처음으로 해야하는 일은 이론이나 전문적인 의견이 아니라
보고 듣고 감상하고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술에세이나 미술 평론서를 좋아한다.
내가 보았던 것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또는 내가 갸우뚱하며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던 그림을 타인의 관점으로 훔쳐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내가 눈으로 보고 감상하는 것과는 별개로,
하나의 작품을 다른 사람이 느끼고 소화한 것을 내가 다시 소화해내는,
3단계를 걸친 조금 특별한 감상법이라고 생각한다.
박누리의 <꿈을 꾸다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다>라는 책은 박누리의 미술에세이로,
전문적인 의견없이, 좀더 편하고 즐겁게 그림을 감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실은 귀도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이 인쇄된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사게된 책인데,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그다지 독특할 점도,매력적일 점도 없었다.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일상적이고 개인적이라는 점인데,
일상적인 이야기들과 섞여져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 뿐, 그다지 독특한 감상법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소개되어있듯 그다지 감각적인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해서 실망하려는 찰나에,
반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를 소개하며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고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마추어 그림 애호가로서 고흐의 매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행복하지 않아.하지만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이다.(p202)
아,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이 문장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고흐의 그림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음울하다거나 우울한 것과는 조금 다른,
눅룩하고 어눌하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같은 것이 저 문장에서 너무나 잘 표현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볼때, 조금더 성의를 들여서 찬찬히 뜯어볼 때, 문득 스치고 지나갈지 모르는 생각들-
아주 특별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흘려버릴 정도로 하찮지도 않은 감상들을 적어놓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서로서 아주 훌륭하다고 말할수는 없다.
미술+에세이 이지만, 가끔은 이런 얘기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텐데....싶을 정도로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개인사에 치중되어있어 미술보다는 에세이쪽에 비중을 더 두게될 때도 있다.
그러니까 이 책에 있는 것은 그림속의 "베아트리체"보다 "박누리" 본인이 있을 때가 더 많다고나 할까.
어쩌면 이 책의 근본이 박누리의 싸이월드 페이퍼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속에도 있지만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것들을 남이 대신 정확히 표현해줄 때같은
소소한 공감을 느낄수 있는 책이지만, 조금만 더 미술이야기를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같다.
p.s 저자 본인의 취향을 솔직하게 드러낸 점은 좋은데,
별로 좋아하지 않는 화가의 이야기는 굳이 쓰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특히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클림트의 이야기를 쓴 챕터는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이 정도 인기있는 화가 얘기는 안하고 넘어갈수 없지."같은 마음으로 쓴 것처럼,
감상이 매우 뻔하고 성의없어져 버린다.

빈센트 반고흐 밤의 테라스 Cafeterras aan het Place du Fo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