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숲
윤민혁 지음 / 자상한시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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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는 겨울인데, 책 내용은 사계절이 담겨 있다. 그와 그녀가 만났던 초여름부터 겨울의 모습까지 몇 계절이 나온다. 대관령이 배경이다. 말이 뛰어놀고 정원을 가꿀 수 있는 공간에서 그와 그녀의 이야기는 애틋하면서도 저릿하다.

288쪽
그대여. 언제부터 우리가 함께 들었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샤콘느도 고통의 선율로 들리기 시작했어요. 숲을 걷기도 힘들었고 아름다운 대관령 붓꽃은 불어 터진 만두처럼 산목력은 썩은 계란처럼 보였어요. 환영과 망상의 그림자들만 보이고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모든 불안의 서들이 저에게 가자고 몸과 마음을 흔들었어요.

그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영서. 나무를 소개하고 꽃을 가꾸면서 차곡차곡 쌓이는 감정들을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그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실제 작가가 운영하는 ‘살바토레펜션‘을 모티브로 삼았다. 검색해 보면 살바토레는 대관령(평창)에 위치해 있으며 수려한 정원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책 읽으며 펜션까지 검색하게 만드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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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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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이 건설되고 사람이 살 수 있을만큼 건물이 건설되고 나면 다음은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문명이 만들어질 것이다. 화성에 처음 건너온 사람들이 기술자라면 문명을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기술자와 한 발 떨어진 사회학자나 행정, 역사가들일지 모른다. 그리고 화성에서 태어난 다음 세대도 당연히 한 몫하겠지. 그렇게 화성에도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렇다고 화성이 지구와 같은 환경일리 없다. 화성에서 키운 채소를 지구의 채소와 같다고 할 수 없다. 같은 깻잎이라도 화성에서 적응한 깻잎은 지구의 깻잎과 다를 것이다. 무에서 유로 작물을 키울 수도 없다. 지구에서 작물을 들여 화성 작물로 순화 시켜야 한다. 작물을 들이고 키우는 담당관이 깻잎을 싫어해서 샐러리를 들이기로 결정했는데, 누군가는 깻잎이 너무 좋아서 깻잎을 들이지 않는 것에 화가 나 살인을 저질렀다면? 어차피 나가면 산소가 없어서 숨도 쉴 수 없는데 감옥이라는 것이 있을까? 살인자를 어떻게 어느 법을 기준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이런 관점이 사회와 문명이 아닐까. 단순히 사람들이 건너온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해 나가는 과정. 국가의 형태가 필요한지. 지구와 화성을 연결하는 우주에는 별일이 없는지.
지구인 중에 화성으로 오고 싶어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반대로 화성에서 태어나 지구의 중력이 아닌 화성의 중력으로 살고 있는 화성인 중 지구로 건너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는지.

지구가 아닌 화성이 배경이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있다. 기술로 영화같은 장면으로 읽는 sf 소설이 아닌 언어로 읽는 sf 소설이 될 수 있는 책이다.

<124쪽, 위대한 밥도둑 중>

밥도둑은 찬사예요. 위원장님, 들어보세요. 한국인에게 식사를 한다는 건 밥을 먹는다는 거예요. 한국어로는 진짜로 밥을 먹는다고 말해요. 파스타를 먹었어도 밥을 먹었다고 한다고요. 요리마다 이름이 붙어 있지만, 그건 사실상 밥을 무엇과 같이 먹는지를 표시하는 거예요. 누가 된장찌개를 먹었다고 하면 밥을 된장찌개라는 이름의 스튜와 함께 먹었다는 말이죠. 동시에 먹는 게 아니라면, 다른 음식을 먹고 남은 소스에 밥을 볶아 먹기라도 한다고요. 국물이 있는 음식이면 그 국물에 밥을 말아 먹고, 그러기 어려우면 밥을 푹 끓여서 죽이라도 만들어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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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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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 sf소설집이다. 이경 작가는 육아를 경험하며 필요했을 법한 도움을 글로 풀어냈다. <한밤 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와 있는 내내 말이 통하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은 심정을 젖병소독기의 홀로그램을 빌려와 이야기 했다. 어느 날 집 거실에 나타난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레전드 오브 타잔의 주인공, 스웨덴 출신 배우)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다. 다행히 그는 홀로그램이고 전기세 폭탄을 막기 위해 아기가 젖병을 사용하는 시간마다 나타나 사라진다. 엄마는 그 시간동안 왜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인지 모를 홀로그램과 대화하며 아기 외에 집중할 시간을 가진다.

다음 이야기인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는 아기와 초보 엄마의 이동 사투극이다. 갑자기 아기가 아파 병원을 가야 한다거나, 코로나19로 가정 보육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직장 엄마의 이동. 친정은 멀고 내일 아침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갑자기 가정 보육 통지서를 받은 초보 엄마는 당황 한다. 아기를 어디에 맡길 것인지. 밤에 기차를 타고 왕복으로 친정을 다녀온다니 아찔하다. 친정이 남해, 화자는 서울. 이럴 때 도움의 손길을 내보이는 이동수단 회사. 어플을 열고 이동수단을 신청한다. 차는 집보다도 더 쾌적하고 아늑하다. 아기의 모든 상황에 동요없이 대응할 수 있는 직원도 있다. 화자는 직원의 외모가 외할머니와 닮았다고 여길만큼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아기도 울지 않고 잘 잔다.

이동하는 몇 시간만이라도 엄마는 한시름 놓는다. 이 얼마나 적재적소에 필요한 도움의 손길인가. 이것이 육아 백업일테다.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에서 소재를 얻었음으로 보이는 이야기이기에 읽는 독자도 편안함을 느끼고 인공지능에 대한 거부감도 한편 내려 놓게 된다.

우리의 멀지 않은 미래 모습으로 여겨지니까.
지금의 청소년들 세대가 어른이 되어 겪을지도 모르는 생활 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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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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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이 하나의 시로 시작하는 느낌의 문장 결이 고왔다.

10쪽
한줄로 서서 흔들리는 다리를 건넜다.
다리 아래로 호수가 있었고, 다리 건너에는 사과주를 만드는 농장이 있었다.
우리는 먹고 마셨다.
니가 옆에 와 앉았을 때 나는 혀가 풀렸다.

반은 어둡고 반은 밝은 달이 남쪽 하늘에 뜰 때,
짧은 바늘이 6에 갈 때,

나는 답장을 써본 적이 있다.
보내본 적도 있다.

기다린 적은 없다.
.
.
=> 여러 군데에서 시처럼 문장과 행갈이를 하며 시의 모습을 한 부분들이 있다. 그외에도 좋다는 감정으로 읽어지는 문장이 더러 있다.

71쪽
되돌아오지 않는 시간에 고여 있는 장소들을 나는 여전히 매일 지나다녔다.
.
.
-
=> 커져버린 아이들이 찾지 않는 장소를 지날 때마다 스치는 어릴 때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에 대한 서술을 ‘되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고여 있는 장소들’이라고 했다.

*=> 되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고여 있는 장소들은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님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일 때 일상 모습이다. 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풍경, 코로나19로 답답했던 마음을 토로했던 모습, 별 것 아닌 것에 짜증을 품었던 모습들이 이 책에서 보여준다.

배경이 최근이라 소설이라기 보다 에세이라고 여겨질만큼 생활밀착 이야기다.

두 명의 주인공중 나리는 캔들공방 사장님이고, 다른 주인공은 학원차량을 운행하는 인기많은 여성 기사님이다.

58쪽
클래스 연기 공지를 한 뒤부터 나는 초 하나하나를 공들여 완성하는 데에 기력을 집중했다. 공방은 내 개인 작업실과도 같아져서,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색감의 캔들을 뽑아내겠다는 의욕에 사로잡혀 조색 테스트로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다. 판매 공지도 수시로 올렸다.
‘주문 문의는 디엠이나 프로필링크 타고 카카오톡 오픈채팅으로 해주세요.’
‘나리공방 캔들은 스마트스토어에서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스토어찜 하시면 천원 할인쿠폰을 드려요!’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실내에 놓아둘 수 있는 소품을 이전보다 더 많이 찾았다.
.
.
=>솔직하게 말하면 지은이이자 소설가가 캔들자격증을 가지고 있거나 공방을 운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캔들공방을 애용하셨거나. 세세하게 잘 안다고 느꼈다.

너무나 생활밀착형이기에 나리처럼 나도 검색해봤다.
📌102쪽
공방 창문을 열고 중앙공원 쪽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나는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테이블로 걸어갔다.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비탈사과’와 ‘민들레’를 같이 검색하기 시작했다. 테이블 앞에 선 채로 검색하고 또 검색하다가 이런 해시태그와 함께 올라와 있는 사진들을 보았다.
#비탈사과밭민들레 #비탈사과민들레밭 #여안야외촬영명소
.
.
=> 소설은 소설일뿐 현실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겼다.
세 개 다 검색결과없음이다.

=> 구체적인 연도-2020, 집단-신천지 단어가 나오는 소설

=> 답답했던 시절을 지금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단절할 뻔 한 사이를 공동체라는 모습으로 고여있지 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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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삶
마르타 바탈랴 지음, 김정아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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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 등원시키고 주위 엄마들과 차 한잔 하고 집에 들어와 집안일, 가족 맞이하기, 저녁에 소파에서 티비 시청하다 잠자리, 다시 아침 눈뜨면 반복이라 나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연 소개가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책 주인공 에우리지도 그랬지 않았을까?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특정 시대ㆍ특정 국가ㆍ도시에 사는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고독을 느끼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206쪽
‘탁탁탁‘은 그즈음에 나던 소리였다. 처음에는 리듬이 많이 느렸다. ‘탁‘ 소리가 났다가 한참 뒤에 또 ‘탁‘이 하나 더 이어지는 식이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일정하고 균일하게 ‘탁탁탁탁탁탁‘ 하는 소리가 한 덩어 리로 났다. 오후 내내 이어지곤 하던 그 소리는 어찌나 강렬했는지 소음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글 쓰는 일 외에도 손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했다. 2층 화장실에 숨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피우는 일이 그것이었다. 그 나이대에 흡연을 시작한 일은 그녀에게 대단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담배 한 개비 한 개비가 그녀에게는 그동안 증거를 남기지 않고 속으로 삭이던 자유의 의침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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