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성폭행 사건 뉴스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아동성폭행 범죄도 증가일로에 있단다. 이번엔 나주에서 7세 어린이가 이불 째 보쌈 당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온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린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법적, 사회적 안전망이 강화되는가 싶었는데 별 소용이 없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강압적인 신체접촉이나 성적학대 등을 소아성폭행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제껏 보도된 대부분의 사실처럼 가해자와 피해자는 안면이 있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다. 또한 가해자가 정신질환이나 범법자 등 특수 상황에 처한 경우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평범한 사람일 경우도 많다.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한 마디로 이웃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에도 소아성애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어린 롤리타와 성인 험버트는 각각 유혹하는 적극적 피해자와 유혹당하는 수동적 가해자로 설명될 수 있다. 정황상 상호 교감이 전제된 롤리타의 언행에 비해 일반적으로 성폭행 피해자는 자기 의사에 반해 오롯이 육체적, 심리적 무참함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나보코프가 어린 소녀를 등장 시켜 하고 싶었던 말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색이었지 성폭행범을 위한 변명서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20세기가 인정하는 문학작품의 목록에 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소설 롤리타로 인해 생긴 ‘롤리타 콤플렉스’는 오욕에 찌든 남성들의 순수에 대한 열망이자 환타지를 대변한다. 예술의 범주 안에서 허용되는 인간을 탐구하는 자유로운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양심이란 게 있어 스스로 인간 행동 양식을 제어한다. 언제나 그것을 벗어날 때가 문제다. 인면수심의 욕망을 분출하는 대상으로 어린 영혼이 감당해야할 고통은 너무 크다. 열등감의 발로가 현실에서 잘못 변용될 때의 나쁜 예를 지켜보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쓰기의 전략 - Reading & Writing
정희모.이재성 지음 / 들녘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람은 잔잔했고 비는 부슬거렸다. 기상청의 예보가 아니라면 태풍 언저리에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거센 바람의 주요 길목들은 상처가 깊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 강풍의 결이 살짝 비껴갔다. 가을 맞기에 좋을 적당한 비바람만 안겨 주고 있었다. 약속을 지키기엔 더할 나위 없는 날씨였다.

 

 

  그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다. 몇날며칠 고심해서 썼을 그녀 글의 첫 독자가 되는 게 오늘 내가 할 일이다. 그녀가 베푸는 밝고 다사로운 에너지를 생각하면 그 글의 독자가 되어달라는 그녀의 청은 천 번이라도 내겐 행운으로 여겨질 뿐이다. 혀에 감기는 커피번은 부드러웠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시고 싶었던 캐러멜마키야토는 달콤했다. 비오는 날엔 대화든 미감이든 부드럽고 달콤한 게 제격이다.

 

 

  그녀의 글은 창을 타고 내리는 빗물처럼 시원했고, 숙성된 반죽처럼 차졌다. 젊은 날 우정의 삽화 몇 장과 역사적 현장성을 조합한 노고의 결정체였다. 한 땀 한 땀 기억의 조각보를 글맛이란 바느질로 기워내고 있었다. 쉼 없는 행보를 하는 그녀의 열정이 존경스럽다고 내가 말했다. 세상은 거저 얻는 게 없다고 그녀가 답했다. 바람 불고 낙엽 떨어지는구나, 단순히 이런 느낌만 있으면 늙은 거래요. 그 사람의 물리적 나이가 아무리 젊어도 그건 늙은 거래요. 바람이 부는구나 저 바람 갈라야지. 낙엽 지는구나 저 낙엽 낚아야지. 적어도 이런 감흥이 남아있다면 그건 젊은 거래요. 아무리 나이 들어도 그건 젊게 사는 거래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매사에 마음이 젊으니 저리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맘 품새를 가졌나 싶다. 그녀의 기가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모든 주변인은 멘토가 될 만하다. 바람 불고 비 스칠 때 그런 사람과의 커피 타임은 짜릿하기만 하다. 부족한 기를 나누는 그 오롯한 맛.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씨와 태풍 마법의 시간여행 지식탐험 9
메리 폽 어즈번 지음, 장석훈 옮김 / 비룡소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도서관 어린이 독서교실에서였다. 한 녀석이 손바닥에 볼펜으로 쓴 `ㅂ, ㄹ, ㅂ` 세 글자 초성을 몰래 보여준다. `초성 게임`에 쓸 자음을 준비해온 것이다. 초성 게임이란 각 낱글자의 자음 초성 정보만으로 출제자가 의도한 낱말을 유추해서 맞히는 게임이다. 수업 막바지는 언제나 이 게임을 하는데 서로 답을 맞히려는 아이들은 저마다 `브라보`라거나 `보리밥`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녀석이 무슨 단어를 말하려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태풍, 이라고 녀석이 힌트를 주었을 때도 제대로 눈치 채지 못했다.

저학년인 아이가 일주일 내도록 고심해 태풍 이름 `볼라벤`을 초성 게임으로 준비해 왔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아직 볼라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이라 사람들 관심 밖일 때였다. 하지만 아이는 초성 게임 하나를 위해 눈과 귀를 온통 뉴스에다 고정시켰던 것이다. 말하자면 게임에 대비해 자신만의 준비를 철저히 한 셈이다. 그날 아무도 답을 맞히지 못했으므로 풍선껌 상품은 녀석 차지였다.

초강력 태풍 볼라벤이 북상 중이다. 한반도를 향해 북진 중인데 강풍반경이 500km에 달한단다. 보도 매체들마다 앞 다퉈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서남쪽 지방에선 피해가 속출하고 휴교령도 내려졌다. 몇 년 전 전 국토를 휩쓸었던 `매미`보다 위력이 세다는데, 동해안 쪽은 살짝 비껴가려는지 아직은 잠잠하다. 수치화된 정보보다 심각하지 않으니 호들갑 떤다고 넘겨짚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자연 재해 대비 앞에서는 차라리 호들갑이 괜찮다. 준비하지 않고 당하는 것보다 부산떨다 다행인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태풍 볼라벤, 동심을 들뜨게 한 단어 정도로만 만족하고, 현상에서는 적당한 비바람으로 그 소임을 다하기만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 죽란시사 (新 竹欄詩社)

 

나이와 우정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 소통이 되고, 공감하기 쉬우며, 연대하기 좋은 성향끼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연꽃 피고 비오는 날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모임 이름도 고상하여라. 죽란회. 다산 선생이 주도한 친교 모임인 죽란시사를 빌린 것이다.

 

 

정조 때 젊은 학자시절 정약용은 ‘죽란시사’(竹欄詩社)란 사교 클럽을 만들었다. 술 마시고, 시 지으며, 꽃 감상하는 풍류 모임이었다. 딱딱한 학술 단체가 아니라 음풍농월하는 친목 서클답게 모임이름이 시적이다. 죽란은 다산 집 뜰의 화단 난간을 이르는 말이다. 지나다니는 하인들의 옷깃에 꽃이 다칠세라 대나무 난간을 꽃밭에 설치했는데 그것을 모임 이름으로 삼았다.

 

 

십여 명이 넘는 당대의 엘리트 회원들은 정기·비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는데 그 규약 또한 참으로 독창적이고 시적이다. 살구꽃 처음 피면 모이고, 첫 복숭아꽃 피면 모이고, 참외 익으면 모이고, 서쪽 못에 연꽃 피면 모이고……. 물론 비정기적 모임도 있었다. 아들 낳거나, 승진하거나, 자제가 과거 급제할 경우였다. 올곧고 치열하게 살았던 다산의 생애에 죽란시사 같은 젊은 날의 삽화가 있었다는 건 큰 위안이었을 게다.

 

 

다산 선생의 낭만성을 높이 산 지인의 주도로 모임을 가진 지 제법 되었다. 앞선 성현들이 네 살 차 전후의 동년배 모임이었다면 뒤따르는 이들의 나이엔 경계가 없다. 뜰 갖지 않았으니 꽃 망칠까 드리울 대나무 울도 없다. 죽란 없는 죽란회는 죽란시사의 얼을 좇을 뿐이다. 연꽃 흐드러지고 비 스치는 날, 술과 시 대신 커피와 수다가 있었지만 자연 더불어 교감하는 그 정신만은 오롯이 닮고 싶은 것이다.

 

 

다산 선생의 규약에 나오는 다음 정기모임은 국화꽃 필 무렵이다. 마음 앞서 기다려지는 건 달력을 대신한 선생의 낭만적 화법 때문인지도 모른다.

 

 

 

 

**리뷰 상품은 이 글과 큰 관계가 없습니다.

   해당 책 검색하기 힘들어 최근에 산 이 책으로 대신합니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12-08-29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죽란시사라... ㅎㅎ

다크아이즈 2012-08-30 07:48   좋아요 0 | URL
샘님 다산 흉내 내 죽란회 결성한 지 제법 되었는데 이거 은근 재밌어요. 배롱꽃 보러 가고, 아카시 따러 가고, 숨은 문화재 찾아 가고(그래 봤자 제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ㅋ) 샘님도 책만 파지 마시고 꽃 보러 댕겨요. 저 말고 신죽란시사 결성해서요~~

글샘 2012-08-30 08:14   좋아요 0 | URL
제가 책만 파는 걸로 보이시죠? ㅎㅎ
전 죽란시사 같은 거 만들 무리는 없고, 아내랑 꽃보러 또는 맛있는 음식 먹으러 툭하면 전국 투어 하러 다닙니다. ^^

다크아이즈 2012-08-30 08:48   좋아요 0 | URL
헉, 글샘님 염장 지대로시다~ 전,실은 남편과 노는 게 별 재미없어서(제대로 안 놀아줘서) 친구 따라 강남 다니는 스따열~이거든요. 남편보다 친구가 더 재미 나는데 이거 문제 많은 거 맞지요? 왠지 불쌍 모드ㅠ

순오기 2012-08-30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렀어요, 잘 지내시죠?
엊그제 8월 24일 비오는 금요일에 백련사에서 만덕산 오솔길을 걸어 다산초당에 가면서 죽란시사가 오늘처럼 비오는 날 모였겠다 생각했어요. 다산은 풍류를 아는 멋쟁이였나 봐요.^^

2012-08-30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2-08-30 07: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연꽃 필 때 정기 모임이니 비가 왔으면 금상첨화였겠지요. 근데 카톡도 전화기도 없던 시절 그분들 연락은 어찌 하셨을꼬? 서쪽 연못에 연꽃 피는 날이 한 두날 이간디? 아마 죽란 설치의 원인 제공자들이었던 하인들이 사방팔방 뛰어 다니면서 연락책을 했겠지요. 상상할수록 재밌네요.

2012-08-31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2 0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메라 루시다 - 열화당미술선서 56
롤랑 바르트 지음, 조광희 외 옮김 / 열화당 / 1998년 6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네 식구 모였다. 아들 기숙사가 있는 학교 근처에서 소박한 외식을 한다. 여권 사진이 필요하다는 아들을 따라 사진관에 들른다. 간 김에 가족 이미지 컷도 덤으로 찍기로 한다. 롤랑 바르트의 사진에 관한 노트 덕분이다. 『카메라 루시다』는 사진 읽기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시선이 담긴 책이다. 그 중 ‘스투디움’과 ‘푼크툼’에 대한 잔상이 떠나질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의 사진 한 컷은 객관적이면서도 개별적인 경험의 산물이다. 특정 사진에 대해 떠오르는 공통된 심상, 작가의 의도 등을 스투디움이라 한다면 구경꾼 개별자의 폐부를 찔러대는 정서적 감흥을 푼크툼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객관적이고, 평면적이고, 대중적이며, 이해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입체적이며, 개별적이며, 은밀해도 좋은 것이다.

 

 

단순히 보여 지는 것 이상인 푼크툼은 심연의 창고에서 꺼내는 숨은그림찾기와 같다. 옛날 사진 한 장을 꺼냈을 때 오롯한 나만의 내면 풍경이 떠오르는 상태가 푼크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금파리로 팔뚝을 문질렀을 때 생기는 상처 같은 기억들. 서늘하고 아름다운 그 푼크툼의 세계를 떠올리기 위해 우리는 한 컷의 사진을 간직한다.

 

 

목덜미에 내려앉던 도시 뒷골목의 후텁지근함, 숯불 연기가 눈을 찔러대던 삼겹살집, 밤이슬 피해 나온 지렁이를 밟아 미안해하던 멈칫거림. 헤어지기 아쉬워 깍지 낀 손을 죄던 힘, 아득한 계단 위로 일렁이며 멀어져가던 실루엣, 그 적막한 밤을 깨워주던 날짐승의 울음소리. 오늘 찍은 한 컷 사진 속에서 이 정서들은 나만의 푼크툼이 되어 떠오르게 될 것이다. 찰나가 포착한 숨은 풍경을 찾기 위해 지금도 누군가는 셔터를 누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