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메라 루시다 - 열화당미술선서 56
롤랑 바르트 지음, 조광희 외 옮김 / 열화당 / 1998년 6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네 식구 모였다. 아들 기숙사가 있는 학교 근처에서 소박한 외식을 한다. 여권 사진이 필요하다는 아들을 따라 사진관에 들른다. 간 김에 가족 이미지 컷도 덤으로 찍기로 한다. 롤랑 바르트의 사진에 관한 노트 덕분이다. 『카메라 루시다』는 사진 읽기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시선이 담긴 책이다. 그 중 ‘스투디움’과 ‘푼크툼’에 대한 잔상이 떠나질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의 사진 한 컷은 객관적이면서도 개별적인 경험의 산물이다. 특정 사진에 대해 떠오르는 공통된 심상, 작가의 의도 등을 스투디움이라 한다면 구경꾼 개별자의 폐부를 찔러대는 정서적 감흥을 푼크툼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객관적이고, 평면적이고, 대중적이며, 이해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입체적이며, 개별적이며, 은밀해도 좋은 것이다.
단순히 보여 지는 것 이상인 푼크툼은 심연의 창고에서 꺼내는 숨은그림찾기와 같다. 옛날 사진 한 장을 꺼냈을 때 오롯한 나만의 내면 풍경이 떠오르는 상태가 푼크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금파리로 팔뚝을 문질렀을 때 생기는 상처 같은 기억들. 서늘하고 아름다운 그 푼크툼의 세계를 떠올리기 위해 우리는 한 컷의 사진을 간직한다.
목덜미에 내려앉던 도시 뒷골목의 후텁지근함, 숯불 연기가 눈을 찔러대던 삼겹살집, 밤이슬 피해 나온 지렁이를 밟아 미안해하던 멈칫거림. 헤어지기 아쉬워 깍지 낀 손을 죄던 힘, 아득한 계단 위로 일렁이며 멀어져가던 실루엣, 그 적막한 밤을 깨워주던 날짐승의 울음소리. 오늘 찍은 한 컷 사진 속에서 이 정서들은 나만의 푼크툼이 되어 떠오르게 될 것이다. 찰나가 포착한 숨은 풍경을 찾기 위해 지금도 누군가는 셔터를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