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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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죽란시사 (新 竹欄詩社)

 

나이와 우정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 소통이 되고, 공감하기 쉬우며, 연대하기 좋은 성향끼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연꽃 피고 비오는 날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모임 이름도 고상하여라. 죽란회. 다산 선생이 주도한 친교 모임인 죽란시사를 빌린 것이다.

 

 

정조 때 젊은 학자시절 정약용은 ‘죽란시사’(竹欄詩社)란 사교 클럽을 만들었다. 술 마시고, 시 지으며, 꽃 감상하는 풍류 모임이었다. 딱딱한 학술 단체가 아니라 음풍농월하는 친목 서클답게 모임이름이 시적이다. 죽란은 다산 집 뜰의 화단 난간을 이르는 말이다. 지나다니는 하인들의 옷깃에 꽃이 다칠세라 대나무 난간을 꽃밭에 설치했는데 그것을 모임 이름으로 삼았다.

 

 

십여 명이 넘는 당대의 엘리트 회원들은 정기·비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는데 그 규약 또한 참으로 독창적이고 시적이다. 살구꽃 처음 피면 모이고, 첫 복숭아꽃 피면 모이고, 참외 익으면 모이고, 서쪽 못에 연꽃 피면 모이고……. 물론 비정기적 모임도 있었다. 아들 낳거나, 승진하거나, 자제가 과거 급제할 경우였다. 올곧고 치열하게 살았던 다산의 생애에 죽란시사 같은 젊은 날의 삽화가 있었다는 건 큰 위안이었을 게다.

 

 

다산 선생의 낭만성을 높이 산 지인의 주도로 모임을 가진 지 제법 되었다. 앞선 성현들이 네 살 차 전후의 동년배 모임이었다면 뒤따르는 이들의 나이엔 경계가 없다. 뜰 갖지 않았으니 꽃 망칠까 드리울 대나무 울도 없다. 죽란 없는 죽란회는 죽란시사의 얼을 좇을 뿐이다. 연꽃 흐드러지고 비 스치는 날, 술과 시 대신 커피와 수다가 있었지만 자연 더불어 교감하는 그 정신만은 오롯이 닮고 싶은 것이다.

 

 

다산 선생의 규약에 나오는 다음 정기모임은 국화꽃 필 무렵이다. 마음 앞서 기다려지는 건 달력을 대신한 선생의 낭만적 화법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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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8-29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죽란시사라... ㅎㅎ

다크아이즈 2012-08-30 07:48   좋아요 0 | URL
샘님 다산 흉내 내 죽란회 결성한 지 제법 되었는데 이거 은근 재밌어요. 배롱꽃 보러 가고, 아카시 따러 가고, 숨은 문화재 찾아 가고(그래 봤자 제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 ㅋ) 샘님도 책만 파지 마시고 꽃 보러 댕겨요. 저 말고 신죽란시사 결성해서요~~

글샘 2012-08-30 08:14   좋아요 0 | URL
제가 책만 파는 걸로 보이시죠? ㅎㅎ
전 죽란시사 같은 거 만들 무리는 없고, 아내랑 꽃보러 또는 맛있는 음식 먹으러 툭하면 전국 투어 하러 다닙니다. ^^

다크아이즈 2012-08-30 08:48   좋아요 0 | URL
헉, 글샘님 염장 지대로시다~ 전,실은 남편과 노는 게 별 재미없어서(제대로 안 놀아줘서) 친구 따라 강남 다니는 스따열~이거든요. 남편보다 친구가 더 재미 나는데 이거 문제 많은 거 맞지요? 왠지 불쌍 모드ㅠ

순오기 2012-08-30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렀어요, 잘 지내시죠?
엊그제 8월 24일 비오는 금요일에 백련사에서 만덕산 오솔길을 걸어 다산초당에 가면서 죽란시사가 오늘처럼 비오는 날 모였겠다 생각했어요. 다산은 풍류를 아는 멋쟁이였나 봐요.^^

2012-08-30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2-08-30 07: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연꽃 필 때 정기 모임이니 비가 왔으면 금상첨화였겠지요. 근데 카톡도 전화기도 없던 시절 그분들 연락은 어찌 하셨을꼬? 서쪽 연못에 연꽃 피는 날이 한 두날 이간디? 아마 죽란 설치의 원인 제공자들이었던 하인들이 사방팔방 뛰어 다니면서 연락책을 했겠지요. 상상할수록 재밌네요.

2012-08-31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02 0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