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전략 - Reading & Writing
정희모.이재성 지음 / 들녘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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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은 잔잔했고 비는 부슬거렸다. 기상청의 예보가 아니라면 태풍 언저리에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거센 바람의 주요 길목들은 상처가 깊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 강풍의 결이 살짝 비껴갔다. 가을 맞기에 좋을 적당한 비바람만 안겨 주고 있었다. 약속을 지키기엔 더할 나위 없는 날씨였다.

 

 

  그녀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다. 몇날며칠 고심해서 썼을 그녀 글의 첫 독자가 되는 게 오늘 내가 할 일이다. 그녀가 베푸는 밝고 다사로운 에너지를 생각하면 그 글의 독자가 되어달라는 그녀의 청은 천 번이라도 내겐 행운으로 여겨질 뿐이다. 혀에 감기는 커피번은 부드러웠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시고 싶었던 캐러멜마키야토는 달콤했다. 비오는 날엔 대화든 미감이든 부드럽고 달콤한 게 제격이다.

 

 

  그녀의 글은 창을 타고 내리는 빗물처럼 시원했고, 숙성된 반죽처럼 차졌다. 젊은 날 우정의 삽화 몇 장과 역사적 현장성을 조합한 노고의 결정체였다. 한 땀 한 땀 기억의 조각보를 글맛이란 바느질로 기워내고 있었다. 쉼 없는 행보를 하는 그녀의 열정이 존경스럽다고 내가 말했다. 세상은 거저 얻는 게 없다고 그녀가 답했다. 바람 불고 낙엽 떨어지는구나, 단순히 이런 느낌만 있으면 늙은 거래요. 그 사람의 물리적 나이가 아무리 젊어도 그건 늙은 거래요. 바람이 부는구나 저 바람 갈라야지. 낙엽 지는구나 저 낙엽 낚아야지. 적어도 이런 감흥이 남아있다면 그건 젊은 거래요. 아무리 나이 들어도 그건 젊게 사는 거래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매사에 마음이 젊으니 저리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맘 품새를 가졌나 싶다. 그녀의 기가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모든 주변인은 멘토가 될 만하다. 바람 불고 비 스칠 때 그런 사람과의 커피 타임은 짜릿하기만 하다. 부족한 기를 나누는 그 오롯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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