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스로부터 보듬기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아가씨를 만났다. 이십대 여성 특유의 새치름함과 쑥스러움이 없어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엘리베이터 안 그 짧은 시간 동안 말동무가 될 정도로 털털하고 밝은 아가씨였다. 오늘도 문이 열리자마자 예의 환하고 씩씩한 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데이트 하러 가나 봐요.’라고 화답을 했더니 그녀의 반응이 이랬다. “아니에요. 이 몸에, 이 얼굴에 누가 데이트 신청이나 하겠어요? 살 빼고 더 예뻐진 다음에 생각해 볼 거예요.”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녀 스스로를 비하하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충분히 예뻤으며, 더 이상 뺄 살 같은 건 없었다. 참 밝고 유쾌한 아가씨다, 라고는 느꼈어도, 한 번도 그녀가 못생겼다거나 뚱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충격을 먹은 것은 그 아가씨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타자의 생각은 나와 같지 않다. 특히 자신만이 생각하는 약점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타자는 나와 생각이 같을 리 없다. 타자는 내가 집착하는 나의 약점 같은 데 관심이 없다. 내 약점은 내 필터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지 타자에게 건너가면 시쳇말로 ‘의미 없다’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타자는 나만큼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의 비난 서린 한 마디가 평소 자신이 생각한 약점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모든 타인이 나를 ‘못생겼다’고 생각하거나 ‘뚱뚱하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게 된다. 십 퍼센트의 타자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약점을 인정한다고 해서 모든 타자도 그럴 것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오해이다. 타자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약점에 대해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부터 긍정하도록. 나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타자의 시선도 곡해하게 된다. 호의적인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음껏 스스로를 옭아매고 불인정하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스스로 버리는 사람부터 버린다.

 

 

 

 

 

2.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라는 말이 어제오늘 검색어 상위에 오르내린다. 모 연극배우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 관련으로 단식 투쟁 중인 유족 김영오씨에 대한 악담을 퍼부었다. “그냥 단식하다 죽어라. 그게 네가 딸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전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런 말을 자신의 SNS에 남겼다. 배려 없고 무례하기 그지없는 이 충격적 발언의 조회 수 만큼 사람들은 일제히 ‘프로파간다’라는 뜻을 검색을 한 모양이다.

 

 

프로파간다는 원래 ‘선전, 홍보’의 의미를 지닌 말이다. 특정한 원칙이나 행위를 전파하기 위해 세우는 체계화된 계획이나 그 운동을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선동’이라는 부정의 뉘앙스가 남아있는 말이 되어버렸다. 선전이라는 중립의 의미가, 새빨간 거짓말인 선동의 의미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차 세계대전 때였다. 연합국이 영미 대중들을 향해 이 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이후 본뜻은 사라지고 사악한 의미만 남았다.

 

 

선전은 막강하고 대중은 어리석다. 아무리 현명한 민중도 보이지 않는 정부나 거대 손이 움직이는 선전 전략을 앞서기는 어렵다. 대중을 위한 선전에 잠식당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일수록 드러나지 않은 선전 기획팀에 휘둘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정치적 코드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전문 선동가들 앞에서 우리는 내남없이 우중(愚衆)이 되기 쉽다. 전형적인 선동적 프로파간다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파간다의 원래 뜻만 되살릴 수 있다면 그것의 효용도 나쁘지는 않다. ‘선동’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걷어낸 자리에 정치, 경제,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불러와 다채롭고 창의적인 화법을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선전이나 홍보라는 말 자체가 어느 특정 집단, 특히 덜 가진 자보다는 더 가진 자, 약한 자보다는 강한 자의 논리와 맞물린다. “거짓도 천 번 말하면 진실이 된다”고 했던 괴벨스의 말도 결국 힘이 전제되었을 때나 통용된다.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몰리는 약자에게는 선동의 입김을 느끼기 전에 연민의 입술이 먼저 나가는 건 어쩔 수 없다.

 

 

 

 

 

3. 경원하면서 사랑하기의 고통

 

작가 곁에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항상 많았지만 그들을 좋아한 적은 없다.” 이런 말로 대변되는 작가적 투망에 잡힐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머싯 몸의 저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근원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러 좋아하려고 노력할 필요까지는 없다, 라고.

 

 

서머싯 몸은 인간 내장에 돋은, 까칠한 돌기까지도 잡아낼 정도로 통찰 깊은 작가이다. 인간 관찰에 대한 그의 문장들을 읽다 보면 나쁜 짓하다 들킨 아이처럼 뜨끔해지곤 한다.

 

 

그가 작가로서 우뚝한 순간은 음악으로 치자면 감성 발린 발라드를 부를 때가 아니라 격정적인 몸짓까지 노래하는 락 음악을 보여줄 때이다.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올라버린『인간의 굴레에서』에서를 살핀다. 인간을 노래하는 그의 발성법은 뼛구멍에 난 터럭까지 감지하고 표현하는 것을 택한다. 인간의 불가피한 이기심을 변론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 “타인에게 이기적이 아니기를 요구하는데 그건 당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더러 자신의 욕망을 희생하라고 하는 모순된 주장이다.”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으려면 내 욕망과 같은 타자의 욕망을 인정하라는 것, 그것이 곧 자비라는 것, 저마다 추구하는 삶은 따지고 보면 ‘자기 자신의 쾌락’이라는 것. 맨 살에 바른 파스가 뼛속을 관통할 때의 시원한 쾌감 같은 이 기분. 다만 그 통찰이 시원함 자체에만 머물지 않고, 마디마디 서늘한 후통증을 동반한다는 것. 매운 맛을 두려워하면서도 매운 떡볶이를 찾는 소비자처럼 그의 문장들에 중독된다.

 

 

인간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서머싯 몸은 친구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에두르지 않고 직설 화법을 구사하는 그가 미덥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인간 자체에 대한 애정 없이는 그토록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전우주적 이해의 접선을 시도하는 그의 말 안에서 우리는 따끔거리고, 찢어지며, 화끈거린다. 경멸하고 경원시하면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의 고통, 그것에 대해 그보다 더 잘 말하는 작가도 없다.

 

 

 

 

 

 

 

 

 

 

 

 

 

 

 

 

 

 

4. 완벽주의는 완벽하지 않아

 

조상들이 말했다. 아는 길도 물어 가고, 얕은 내도 깊게 건너라고. 흔히 완벽주의자들이라고 자청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말한다. 뭐든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실행하지 않는다고. 정말 그럴까. 그런 사람들은 끝내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잘 돼 가냐고 물으면 그들 대답은 한결같이 꼿꼿하다. 여전히 ‘완벽하게 준비하는 중’이다. 아는 길도 물어 가고, 얕은 내도 깊게 건너는 일에 열을 내고 있을 뿐이다.

 

 

위의 예는 스스로를 두고 한 말이다. 절대 완벽주의자가 못 되는 나는 스스로를 위로할 필요가 있을 때 그렇게 위로한다. 실천력이 따라주지 않을 때 우리가 둘러대는 핑계가 바로 ‘완벽주의론’이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곧장 시작하지 못하는 것은 혹시 불어난 몸피가 살이 아니라 붓기일 수도 있으니 병원부터 가야할 핑계가 남았고, 쓰다 만 단편을 완결 짓지 못하는 것은 아직 내 문체가 원하는 만큼 완성도가 높지 못하니 될 때까지 다른 작품을 더 읽고 준비해야할 이유가 기다리고 있다. 진실로 진실이 아닌 핑계를 갖다 붙인다. 게을러서 실행 못하는 것을 마치 완벽주의자여서 그런 것처럼 포장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미흡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이 반이다’ 라는 속담이 서두의 두 속담보다 훨씬 실용적이다. 아는 길은 곧장 가면 되고, 얕은 내는 가벼이 건너도 무관하다. 아는 길에 괜히 허비할 시간은 행동으로 옮기는 데 쓰고, 얕은 내를 건너는데 소비한 과도한 에너지는 심오한 창의력에 할당하면 된다. 이 세상에 완벽함은 없다. 완벽을 추구한다고 해서 완벽해지지도 않는다. 미완이고 어설프지만 일단 시도하는 게 완벽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백만 배는 낫다.

 

 

모든 완성은 불완전에서 출발한다. 완벽하게 준비한 사람이 끝낸 일보다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도한 사람이 끝낸 일이 더 많다. 완벽한 사람은 시작한 일 자체가 드무니 성공할 확률도 낮을 수밖에 없다. 완벽주의연함은 완벽에 이르는 가장 나쁜 포장술이다.

 

 

 

 

 

 

 

 

 

 

 

 

 

 

 

 

 

 

5. 취향일 뿐

 

체리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다. 체리가 드문드문 시장에 나오던 초창기에는 그것이 맛나다는 것조차 즐길 겨를이 없었다. 비싼 수입 과일이라는 현실적 판단이, 맛있다는 진심의 욕망을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흔히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라고 포기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과일 가게에 가면 산더미처럼 쌓인 체리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비싸기는 하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대중적 과일이 되어 있었다.

 

 

남유럽 여행에서 충격 먹은 것 중의 하나. 달리는 차창 밖으로 아름드리 체리나무 행렬이 이어졌다. 내게 로망이기만 했던 과일이 이토록 흔한 것이었다니! 제 철이라 그런지 값도 무척 쌌다. 체리 한 번 다시 실컷 먹어보기 위해 다시 여행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반면에 나는 토마토는 거의 좋아하지 않는다. 단맛에 길들여진데다 미감마저 약해 내 입맛에는 토마토가 영 밍밍하고 싱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찰토마토니 대추방울토마토니 등 온갖 세련된 맛의 품종이 쏟아져 나와도 내게 토마토는 다 같은 토마토일 뿐이다. 나를 뺀 나머지 식구들은 토마토를 좋아한다. 몸에 좋다니 자주 사서 갈아먹고 볶아먹고 하면 될 것을 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토마토에는 손길이 가질 않게 된다. 토마토나 식구들 입장에서는 토마토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해주지 않는 내가 야속할 수도 있겠다.

 

 

체리든 토마토든 과일 자체의 본질이나 가치는 바뀌지 않는다. 체리는 체리 그대로, 토마토는 토마토 그대로 존재한다. 체리를 선호하거나 토마토를 우선하는 것은 선택자의 마음일 뿐이다. 내가 특정 과일을 선호한다고 해서 다른 과일의 본질이나 가치가 뒤로 밀리는 건 아니다. 그건 취향의 문제이지 당위의 문제가 아니다. 체리는 체리대로 토마토는 토마토대로 존재 이유가 있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품은 향기가 다를 뿐이지 그 향 자체가 옳고 그름을 말하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품은 향기와 맛은 다르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본질과 가치가 변하는 건 아니다. 개성이라 불리는 그것들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4-08-26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 님 글은 빠르게 읽히는 장점이 있씁니다. 군더더기가 없으니 쏙쏙 머리에 들어오거든요. 빠르게 잘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김영오 씨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음식 사진 잔뜩 올리고 조롱한다고 하네요. 참... 이게 할 짓인가.. 그런 생각이드네요. 정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속으로만 욕하면 되지, 아니 굳이 43일 굶어서 걱정인 사람에게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하여튼 답답한 시대입니다.

라로 2014-08-27 01:05   좋아요 0 | URL
곰발님~~~~한글 맞춤법 어떻게 공부했어요????응??

곰곰생각하는발 2014-08-27 12:57   좋아요 0 | URL
한글 맞춤법이라... 공부 안 한 것 같습니다. 제가 맞춤법이 좀 삐짜'로 배워서 잘 틀립니다..ㅎㅎㅎㅎㅎ. 그냥 책 많이 읽어서 그냥 무의식적으로 배운 것 같기는 하네요....

다크아이즈 2014-09-03 10:18   좋아요 0 | URL
딴 건 모르겠고, 곰발님 맞춤법 틀린 것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하십시요' 시리즈 ㅋ '하십시오' 로 고쳐달란 말이예요~~~휘리릭

프레이야 2014-08-26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든 다 드러내지 못하는 속사정이 어찌 없을까요. 김영오씨 경우도 그럴 거라는
심증이 갑니다. 너무 쉽게 조롱하고 너무 쉽게 찬양하는 세태라니..
그 연극배우는 누구인가요? 궁금합니다.

저도 체리 좋아해요. 과일도 체질에 맞는 게 있다네요. 토마토가 건강식품 중 하나라지만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라고 해요. 입에서 당기는 게 몸에 다 맞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이제 정말 건강 생각해야 할 때인데 여의치 않아요. 습관이란 녀석이..


다크아이즈 2014-09-03 10:19   좋아요 0 | URL
체리는 이제 안 나와요. 내년 초여름을 기다려야 한다는
그러니 더 먹고 싶어요.

오늘은 제주 어디를 밟으실까나? 용감해서 부러운 우리 프레님~~

세실 2014-08-26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야언니 그는 뮤지컬 배우 이산이랍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원색적인 비난은 별로죠.
김영오씨의 사생활까지 들추어내는것도.....근데 김영오씨는 이혼하고 양육비도 못줬다던데....안준거랑 못준거랑은 큰 차이가 있겠지요? 서로를 정확히 알기까지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
저도 체리는 비싸서 안사먹었는데 요즘 저렴한 가격 덕분에 보림 챙겨주면서 먹고 있어요. 새콤, 달콤한 맛이 좋아요~~~~

다크아이즈 2014-09-03 10:21   좋아요 0 | URL
전 만날 섣부른 판단으로 그르치곤 해요. 그것이 인생ㅋ
내년에 체리 먹는 수다 모임 열어야 겠어요.
또 비와요. 여긴. 거기는요?
보림이 수시 때문에 신경 많이 쓰이지요?
잘 될 거예요. 원하는 곳 간다, 보림이 파이팅~~

라로 2014-08-2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말 나의 약점은 내가 예민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네요.
그래서 그 부분을 남이 건들었다 싶으면 상처 받은 것처럼 느껴져서 아프고...

암튼 이상한 사람들 많아요,,,누구 말대로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도 많다,,,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상처가 될 듯.

체리 여기는 별로 안 비싼 편인데 하와이가 엄청 비싼가봐요.
지난 달 하와이에서 형님네 가족이 와서는 체리를 얼마나 사 먹던지!!
덕분에 저도 많이 먹긴 했는데,,,좀 놀랐다는;;;;
이게 다 희소성의 법칙이 아닐런지요????ㅎㅎㅎ거의 모든 코미디가 그렇게 만들어 지는 것 같아요,,,,

다크아이즈 2014-09-03 10:24   좋아요 0 | URL
학씨리, 그래요. 제가 예민해서 모든 게 일어나더라구요.
저도 예민하게 굴어서 만날 일을 그르쳐요.
방법은 예민함 자체는 버릴 수가 없고, 그것을 누르는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더라구요. 누구나 예민할 수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느냐 안 내느냐는 마음 공부의 차이 같기도 하더라구요. 이래 말해도 저도 잘 안 돼요.
오늘도 알라딘하는 오피스 걸인지 점검하러 갈게요. ㅋ

[그장소] 2015-01-26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