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황, 교종

 

  프란치스코 교황이 출국했다. 평화와 화해를 위한 명동 성당 미사를 끝으로 4박5일 간의 방한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시종일관 약자와 낮은 곳에 대한 관심과 배려, 어린이와 상처 받은 이에 대한 사랑과 시선을 우선한 행보를 보이셨다. 순수와 위안과 평화를 전하고자 한 당신의 발걸음에 감동을 받은 이들도 많았고, 직간접으로 그 순간을 체험한 이들은 마음가짐을 다잡는 계기도 되었을 것이다.

 

 

  낮고 비루한 일상을 보듬는 그 마음결을 되새기자니 문득 ‘교황’이라는 말 자체가 당신의 행보와는 걸맞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너무 권위적이고 정치적인 용어 같다. 일반인의 생각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교황이란 말이 오랫동안 쓰여 입에 붙어 간간이 쓰긴 하지만 일부러 황제의 이미지를 떼어버리는 자극을 주기 위해 교종이라는 단어를 고집스럽게 쓴다.” 교황방한 준비위원장인 강우일 주교도 이처럼 ‘교황’이라는 명칭 대신 ‘교종(敎宗)’이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쓰고 있었다. 교황(敎皇)이라는 명칭에 담겨 있는 권위적이고 세속적인 의도를 경계하는 마음이 느껴져 공감이 간다.

 

 

  교황이라는 말에서 황제, 임금이라는 뉘앙스가 떠올려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낮고 평범한 것을 지향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복음 가르침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원래 교황(pope)이라는 말은 아버지를 뜻하는 라틴어 ‘파파스’(paps), ‘파파’(papa)에서 유래했다. 지역교회의 최고 지도자를 부르던 말이 아시아에 번역되면서 교종, 교황으로 정착되었다. 일본에 교황으로 번역되어 온 말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교과서에도 자연스레 교황이란 용어로 자리잡았다. 어색할 겨를도 없이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애초의 ‘pope’라는 말에는 ‘교황’이란 말이 풍기는 봉건적 군림의 의미가 있었을 리 없다. 교황이니 교종이니 하는 용어 자체가 사실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그 옛날 전제군주제 식의 무조건적 추앙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라는 진심이 아니다. 그건 낮은 행보를 하시는 당신의 뜻에도 반하는 행동일 것이다.

 

 

 

 

 

 

 

 

 

 

 

 

 

 

 

 

 

 

 

 

 2-1. 참으로 천행이다

 

  “죽은 적병의 시체들을 헤치고 함대는 북서진했다. 깃발을 내리고 돛을 접었다. 물살이 함대를 목포 앞 암태도까지 데려다 줄 것이었다. (···)허기진 사부들이 갑판에 주저앉아 마른 미역을 씹었다. 새떼들이 끝없이 배를 따라왔다. 다시 거꾸로 흐르는 북서 밀물 위에서 나는 몹시 피곤했다.”

 

 

 『칼의 노래』명량해전 마지막 부분 묘사 장면이다. 흥행가도를 달리는 동명의 영화 덕인지 요즘만큼 ‘명량’이란 말이 회자 된 적도 드물 것이다. 백의종군하게 된 이순신의 눈에 비친 순천·여수 앞바다 정경 묘사로부터 칼의 노래는 시작된다. 볼수록 전율이 돋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는 문장은 내가 만난 가장 강렬한 소설의 첫 구절이 되었다. 전반부에 비치된 명량해전에 대해 작가는 무려 4장에 걸쳐 그리고 있는데, 그 어디에도 소설적 과장이나 영화적 긴장감 같은 걸 빌려 담진 않았다. 오직 객관화된 인간 이순신의 내외적 발화가 있을 뿐이다. 담담하고 냉정한 그 방식 때문에 오히려 더 절절하다. 주관이 배제된 물리적 사실을 진술함으로써 실체에 가닿으려 한 방식은『난중일기』의 문체적 특성이기도 하다.

 

 

  “적선 30척을 쳐부수자 그들은 달아났다. 다시는 우리 수군에 가까이 오지 못하다. 그곳에 머물려고 했으나 물살이 무척 험하고 형세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건너편 포구로 새벽에 진을 옮겼다. 당사도로 진을 옮겨 밤을 지내다. 이것은 참으로 천행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난중일기의 명량 전투 당일 자 마지막 문장이다. ‘외롭고 위태로워’라는 말이 참으로 걸린다. 이어진 날들의 일기를 보면 진도에서 싸움을 끝낸 뒤 무안을 거쳐 영광과 변산을 지나 닷새 뒤에는 군산 선유도까지 북서진해 물러났음을 알 수 있다. 군량미 확보와 배 정비의 필요성 등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장군인들 외롭고 위태롭지 않았을 것인가.

 

 

  ‘참으로 천행이다’라는 그날의 저 마지막 문장은 우뚝한 장수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심회에 자주 젖었던 인간 이순신으로서의 참모습을 말하는 것 같아 백번 공감이 가는 것이었다.

 

 

 

  2-2. 명량해전 간단 공부

 

  개봉 영화 ‘명량’ 관람을 계기로 명량해전에 대한 간단 공부를 한다. 관련 다큐멘터리나 기록물이 다양하다. 밤새 영상물을 찾아보고 기록물을 검색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전쟁사가 이처럼 호기심과 흥미와 감동과 짠함 등을 동시다발로 줄 수 있다는 것이 묘하긴 하다.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이순신에게 남은 건 실의에 빠진 수군과 열세 척의 군함뿐이었다. 그에 비해 진군하는 왜군함은 무려 삼백여 척에 달했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무모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 전쟁을 필사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죽으려는 자는 살 것이고, 살려는 자는 죽을 것이라는 각오를 몸소 실천했다.

 

 

  명량해전이 승리할 수 있었던 실질적 이유가 몇 가지 있다. 그 첫 번째는 배의 구조이다. 조선의 주함 판옥선은 왜의 주함 안택선에 비해 튼튼했다. 만드는 방법과 구조의 견고성이 안택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회전력도 우수해 울돌목의 빠른 유수에도 적응할 수 있었다. 무기의 활용 면에서도 조선해군이 유리했다. 일본군의 주력 무기는 조총이었다. 살상 무기로서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녔으나 해전에서는 조선의 함포가 나았다. 천자총통을 비롯한 각종 화포는 원거리 사격이 가능한데다 화력이 우수했다. 튼실한 배와 위협적인 무기는 이순신 해군 전투력의 바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순신의 전략전술과 리더십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명량 일대의 해류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치고 빠지는 전법을 구사했다. 좁은 물목에 왜함대를 몰아넣어 옴짝달싹못하게 만들었다. 수중 철쇄를 해협 양쪽에 걸어 몰려드는 왜함을 뒤집어지게 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런 기록들은 전쟁이 끝난 한참 뒤의 것들이라 믿음을 주진 못한다. 굳이 쇄사슬 전법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이순신의 지략은 여러 기록들이 충분히 검증해주고 있다. 이순신 없는 명량의 승리를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해협의 언덕에서 장군과 수군들의 승리를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환호했던 당시 백성들의 마음이 기록으로나마 그들을 기리는 후대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3-1. 차이는 차별 아닌 구별

 

  “차이가 없으면 소통의 필요가 없다고 아렌트가 생각한 것은 옳았다. 차이가 없다면 말과 행위도 필요 없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만일 우리 모두 똑같다면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의『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앞 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홀로코스트 전범 중 한 명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취재기인 이 책은 얼핏 보기에 대중성과 흥미를 갖춘 것 같은데 쉽게 읽히지 않는다. 당시 유럽이 처한 정치적 환경과 아렌트가 추구하는 철학적 배경에 대한 독자로서의 지식 부족 탓도 있고, 내용 및 용어 등에서 매끄럽지 못한 번역에도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 그럼에도 밑줄 긋기 할 곳이 많은 건 전적으로 아렌트가 발하는 통찰 덕이다.

 

 

  크고 작은 갈등의 바닥엔 ‘차이를 인정하지 못함’이라는 인간의 기본 성질이 깔려 있다. 욕심은 갈등을 낳고, 갈등은 차이의 불인정에 기인한다. 한나 아렌트의 생각처럼 인간에게 ‘차이’라는 게 없으면 ‘소통’도 필요치 않다. 같은 생각 같은 모습, 즉 모든 인간이 내외적으로 획일화 되어 있다면 갈등도 소통도 애초에 없는 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갈등과 소통 이전에 모든 답이 똑같아 버리는 현실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따라서 갈등하는 인간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갈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소통이 문제이다. 잘 소통하려면 차이를 인정해야 하고, 차이를 인정하려면 ‘타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감각했던 아이히만의 가장 큰 문제는 ‘차이’에 대한 무지였다. 한나 아렌트의 표현에 의하면 악한 게 아니라 그저 ‘특별히 천박했던’ 아이히만은 사유도 의지도 판단도 할 수 없었다. 타자의 관점에 대한 학습에 노출될 기회가 없는 만큼 악의 평범함에 길들여졌다고 할 수 있다.

 

 

  차이란 차별이 아니라 구별을 의미한다. 너와 나를 차별해도 좋다가 아니라, 너와 내가 다름을 구별하고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타자의 관점을 훈련하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악의 평범성에 감염될 수 있다는 무서운 가르침!

 

 

 

  3-2. 악은 멀리 있지 않다

 

  악은 저 멀리 있지 않다. 악은 특별하지 않다. 악은 평범하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전언이다. 아렌트 여사의『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쉽게 읽힐 거란 내 예상은 빗나갔다.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 방청기로 알려져 있는 이 책은 단순한 기고문이 아니었다. 철학자의 글답게 시종일관 심오한 문투다. 호기심이나 흥미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내용이다 보니 대중성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몰입이 잘 되는데도 금세 읽을 수 없는 것은 공감이 가는 장면마다 생각이 가지치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 상황, 그 환경에서 아이히만과 다를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삼라만상 그 무엇을 내 잣대로 규정짓거나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내 안의 선이 그리 특별하지 않듯 내 안의 악 또한 그러하거늘 왜 우리는 타인의 악행에만 그토록 분개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이 책이 그토록 회자되는 건 단연 부제 때문이다. 대놓고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라고 잘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란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인간 보편성의 기저에는 악의 평범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한나 아렌트의 주장이다. 보통의 악, 평상의 악이라니 섬뜩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절대의 선, 객관의 선을 행사할 수 있는 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재판을 방청한 그녀의 눈에 비친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직책과 명령에 충실한 평범한 직장인이었을 뿐, 어디에도 광적 학살에 집착하는 악의에 찬 기질을 숨기고 있는 자는 아니었다. 그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건 ‘무능성’ 때문이었다고 아렌트는 짚어낸다. 판단의 무능성은 사고와 성찰이 부족할 때 생겨난다. 악의 평범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의 지속을 경계할 수 있는 사고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게 문제인 것이다. 철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악에 대한 보편적 통찰이 철학적 사유의 반성으로 확장되는 힘, 그것이 한나 아렌트의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겠다.

 

 

 

 

 

 

 

 

 

 

 

 

 

 

 

 

 

 

 

 

4. 인간의 광기

 

  포화 속 가자지구 사망자 수가 거의 이천 명에 이른단다. 전쟁을 멈추라는 세계 곳곳의 목소리가 간절할수록 양측의 전의는 맹렬하기만 하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서로 공격을 멈추지 않겠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스라엘은 안보가 확보돼야 군사작전을 멈출 것이라 말하고, 하마스 측은 가자지구 봉쇄를 풀지 않는 한 휴전은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죄 없는 민간인 피해자만 늘어나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상황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얽힌 요소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세 종교의 탄생지인 예루살렘은 인류의 광기 때문에 폭력과 전쟁의 주요 진원지가 되었다. 가톨릭 사제였던 제임스 캐럴의 신작『예루살렘 광기』는 이러한 종교의 허상과 인간의 광기에 대한 고백서이다.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하던 그는 신앙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환멸을 맛본다. 성지 안에 있는 복제화들과 ‘십자가의 길’로 상징되는 열네 곳이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 서사임을 알게 된다. 중세 후기 그리스정교회의 관광 독점을 막기 위한 프란체스코회의 조작임을 알고 회의를 느껴 사제직을 물러난다. 신앙을 들먹이며 예루살렘을 성지화한 것은 바로 인간들이며, 그곳만이 메시아의 재림과 계시가 보장된다고 병적으로 열광하고 집착한다는 것이 캐럴의 시각이다.

 

 

  종교적 열망은 배타적 적대감을 낳고,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그 신념은 무자비한 살육을 부추긴다. 그렇게 인간의 허상이 만들어낸 예루살렘이라는 환상은 역사 속에서 아수라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무서운 광기가 오늘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종교가 폭력 앞에 무기력한 장면 앞에서 인간의 근본이 선하다는 주장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살육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그 희생제의가 곧 종교라는 캐럴의 일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의 명분을 빌려 야만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광기와 이기심, 이것이 인류의 실체기이도 하다는 씁쓸한 진실!

 

 

 

  * 8월 한 달은 그나마 조용했다. 좀 읽고, 많이 쓰고 싶었지만 그리하지 못했다.

    상념은 부풀었으나 언어가 되지 못했고, 게으름은 나무늘보로 늘어지는데 시간은 야속하게도 급류처럼 흘렀다. 아까운 8월, 벌써 반 이상 보내버렸다. 한 것도 남은 것도 없다.  익어가는 저 열매처럼 되고 싶었으나 마음만 익었지, 몸과 행동은 익지 못했다. 오호통재, 오호 애재라, 아흐 다롱디리여ㅠㅠ  

 

 그나저나 저 열매 이름이 뭘까요?

 어느 착한 분이 저 과일을 후식으로 내놓고 맞혀 보랬는데 아무도 못 맞혔다는...

 자연보다 책을 우선하는 알라디너 여러분도 잘 모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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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4-08-1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과 배려, 소통과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떠나신 프란치스코교황님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간결하게 살아야 겠습니다.
향기나는 사람도 좋겠죠?
비 오는 화요일....의외로 고요합니다^^

다크아이즈 2014-08-19 10:17   좋아요 0 | URL
어제 진종일 비 내리더니 여긴 이제 그쳤어요.
가을 장마 전선이 북상 중인가 봐여ㅠ
지금은 커피 타임? 비 오는 날 커피 갈아 한 잔 하면 음메, 미치지요.
저도 커피 돌리러 갑니다~~
재미난 하루 보내시어요.

세실 2014-08-19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두나 살구는 아닌가봅니다.

다크아이즈 2014-08-21 09:15   좋아요 0 | URL
매실이랍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매실이 익으면 저렇게 되고, 먹을 수도 있어요.
많이 시고, 약간 달달했어요. 살구보다 약간 강렬한 맛...

초록색 매실만 있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는...'
여긴 또 비와요, 좋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8-1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어째 반가운 이웃의 글이 많이 올라왔네요. 팜므 님 반갑습니다. 확실히 이젠 가을이란 생각이 듭니다. 참 신기해요. 계절이 바뀌는 거 보면 참 신기합니다. 여름만 있다거나 겨울만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계절이 바뀌니 늘 하던 패션이 지겨워지는 순간 다른 코디를 할 수도 있고 말이죠. 여전히 1.2.3.4 형 포스트는 여전하시군요.

아이히만... 요 책 대단합니다. 왜 정치가들은 프레임 설정을 잘해야 한다고 하잫아요. 아렌트는 짧은 문장 하나로 전체를 보여줬습니다. 악의 평벙성 말이죠. 기회만 된다면 기냥 한길그레이트북 컬렉션으로 뽑아다가 고것들만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천도복숭아 아닙니까 ? 저 과일.. 답이 쉬울리는 없으니 아닌 거 같디만...

다크아이즈 2014-08-21 09:20   좋아요 0 | URL
한나 아렌트의 철학은 성찰 깊고 위대했으나
그녀의 문체나 구성은 지랄 같다. - 제 독서 후기입니다.
번역도 온통 비문투성이라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재판방청기를 고스란히 옮기면서 자신의 생각을 쉬운 문체로 정리하면 독자들이 파악하기 쉬웠을 것을, 너무 왔다갔다해서 정신이 혼미했어요.
철학자연한 그 문투는 또 뭐랍니까? 과연 저 번역서를 꼼꼼하게 음미하면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날도 우중충한데 그런 생각으로 우울해지지 뭡니까.
악의 평범성이란 화두를 건진 것만으로 만족해야지, 문투는 정말이지 요령부득이었지요.


과일은 매실~~

라로 2014-08-20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협박이 힘이 세긴 센가봐요~~~.ㅋ
늘 이렇게 자신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저는 진정 구순기시절 결핌의 영향이 맞는 것 같아요.ㅎㅎㅎㅎ
암튼 많이 배우고 가요,,,언니의 글쓰기를 배워서 영문페이퍼에 그대로 적용하여 멋드러지게 페이퍼를 써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mirabelle 이라는 과일 아니에요????( ")

다크아이즈 2014-08-21 09:25   좋아요 0 | URL
무미건조한 제 문체를 이쁘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ㅋ
상냥하고, 재간 있는 에피소드 성 강한 아롬님 글을 저는 더 좋아합니다.

미라벨이란 과일 검색해봤다는, 이미지도 안 떠요.
프랑스 쪽에서 많이 나는 자두과인 모양이에요.
미라벨 맛이 자두맛이려나?

설마 미라벨 같은 이쁜 과일 이름이 나오길 바란 것 아니었지요? ㅋ
매실 익은 거라기에 충격 먹었어요.

페크pek0501 2014-08-2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시는 동안(알라딘을...) 쉬시기만 한 게 아니라 요런 글을 쓰기 위해 사유의 시간을 가지셨나 봅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 자주 글을 올려 주시길... 많이 배우게요...

다크아이즈 2014-08-25 20:41   좋아요 0 | URL
사유하면 페크언냐죠~~
배움하면 또 페크 언냐고.
언니의 글 쓰는 방식을 무척 좋아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요.
이해하기 쉽게 잘 쓴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2015-01-26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5-01-26 2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장소님, 닉마저 매력적인 님을 알게 되어 감사 드립니다. 한 주 잘 시작하시고 많이 배울게요^^

[그장소] 2015-01-26 22:19   좋아요 0 | URL
으..감사해서 ^^ 어쩔 줄 모름.
저 역시. 다크아이즈 님께 많이
배울까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남은 오늘..잘 마무리 하시길...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