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5분정도 내려오면 제법 부티나는 단독주택들이 존재한다. 그나마도 거의 다 부셔버리고 다세대 혹은 다가구로 지어버린 것이 거의지만, 유독 한집만이 아직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들어가 본적은 없지만 밖에서 보는 그 집의 풍경을 설명하자면 자동차가 두대는 들어가는 주차장의 커다란 철문이 전면에 나와있고 그 정문에서 대지안에 지어졌을 주택의 모습이 약간 멀리 보이는 걸로 보아 정원도 꽤 크게 자리잡은 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집의 가장 핵심 포인트는 최고층부에 우뚝 솟아 있는 팔각정 모양의 지붕이다.
내가 저 팔각정 지붕을 처음 본것이 벌써 초등학교 때였으니까 참 오랜세월을 유지하고 지켜내고 있는 건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저 집의 소유주를 얘기하자면 조금은 빈정이 상하고 불편해지는 심기를 느껴진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과 저 집앞을 지나칠 때마다 너무나 궁금했었다. 저집에는 과연 누가 사는 것일까 어린아이의 눈에도 저 팔각정은 분명 일반주택들과는 커다란 차별성과 함께 무언가 강한 느낌을 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통해 들은 그당시 그 저택의 소유주는 "스타"의 집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 스타란 연예인이 아닌 군인을 말하는 것임을 밝힌다.
그때가 70년대였으니까 그당시 권력의 핵심이 어디에서 나오고 어디로 움직인다는 그런 세부사항은 그 당시 내나이가 너무 어려서 알리가 없었겠지만 어느정도 머리가 큰 다음 팔각정 집을 지나칠 때마다 알수없는 심한 거부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었다. 단지 집주인이 군장성이였을 뿐인데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90년대말에 이집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한다. 더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새로 들어온 집주인은 전직대통령 중 임기가 끝난 후 가장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K대통령(칼국수 좋아하는 양반 아니다.)의 최측근이였던 H라는 정치인이라는 사실이다.
H라는 정치인은 지나치게 이동네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지역색을 바탕으로 별다른 활동없이 자신이 추앙하는 정치인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기에 바뻤던 이 양반은 후보로 등록하면 언제나 동네에서는 뽑히는 국회의원중에 하나였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번이지 어느 순간 지역구에 대한 활동이 지나치게 미비한 것이 노출되고 부각되어 결국 이동네 선거구에서 참패를 한 후 구로구쪽으로 새 둥지를 틀었던 인물이였다.
정권이 바뀌고 그동안 허울좋은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불사르던 H에게도 칼자루가 쥐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칼날앞에서 저항하며 민주화를 외치던 양반은 칼자루를 잡자마자 기가막힌 변신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본모습이였을지도 모른다.
꽁무니를 따라다닌 보람으로 H는 꽤 높은 위치의 국가직책을 맡게 되었고 그때 당시 여봐란 듯이 이 팔각정 집을 구입해버렸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고 권력의 위치가 바뀌면서 팔각정 저택 역시 권력을 잡고 있는 주인으로 갈아치워 버렸다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보곤 했었다. 물론 그럴리야 없겠지만 말이다.
어쩌다 출근길에 그집앞을 지나가에 되면 언제나 보게 되는 장면은 떡대가 좋은 남자 두어명이 차고에서 번쩍번쩍 광이나는 검은색 대형차를 닦고 또 닦는 모습이다.(그집은 이미 주차장에 차가 두대가 들어가 있고 밖에 한대가 더 나와 있다.)
슬쩍 보고 외면해버리지만 나는 이미 속에서 뭔가가 부글거리면서 메쓱거려지는 듯한 불쾌하면서 은근히 강렬한 느낌이 조금씩 뇌로 올라가는 감각을 접하게 된다. 화려한 외양을 갖춘 저택 하나가 오늘도 위풍당당하게 여덟개 모서리의 자태를 뽐내면서 그 위치에 군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