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행 왕복 비행기표가 얼마나 될까.?
40만원입니다. 라면 믿을까 모르겠지만..이건 엄연한 사실...
미국이라는 땅덩어리를 두번을 왔다리 갔다리 했었던 적이 있었다.
첫번째는 공짜로 갔었고,(공짜라고 해봤자 누나와 매형이 지불)
두번째는 35만원에 다녀왔었다.이것도 요즘 올라서 40만원이라고 한다.
IMF가 터지고 직장에서 짤린 나의 두번째 외유.
난 이렇게 35만원에 미국을 왕복을 했었다. 홀트라는 해외 입양아 기구를 통해
에스코트라는 자격으로 비행기를 탔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플로리다
올랜도..그러나 내가 에스코트를 해야 하는 입양아의 최종 목적지는 들어본 적
도 없는 미국의 소도시 디 모인.
출국날 아침 일찍 합정동에 있는 홀트본사에 달려가서 내가 에스코트를 할
입양아를 배정받았다. 5명의 입양아에 3명의 에스코트..4명은 돌도 안넘긴
핏덩이였고 그나마 한 아이만이 돌을 넘긴 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4명보다 몸집도 비교적 큰 상태였으므로, 아무래도 이 아이의 에스코트를
맡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어졌다. 어쩌면 오랜기간 다시 못 돌아올
태어나기만 한 고향을 떠난다는 것을 눈치를 챘을까 출발 전 부터 이 아이는 울
기 시작했고 그 누구의 달램에도 수긍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보채고 울고의 연속
이였었다. 신기하게도 내 품에 안기자 마자 생글거리면서 조용해지는 상황이 발생
하였고, 결국 난 이 아이의 전속 에스코트가 되버렸다.
김포공항 출발..시에틀 도착..미네아폴리스로 다시 출발..거기서 조그마한 소형
여객기를 타고 도착한 디모인... 그 아이와 난 비행기 안에서 혹은 곧 이 아이의
삶의 터전이 될 이땅의 공항에서 24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날 짜증
나게 했고, 때로는 날 웃게 만들어 주었던 이 아이와의 이별은 순식간에 와버렸다.
디모인 공항에 현지시각으로 밤 9시가 다 되어 도착한 나는 파김치가 되었고 현지
의 홀트 직원의 안내로 공항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이 아이의 양부모에게 아이를
무사히 전해주면, 나의 임무는 끝...이라고 생각했었다....홀가분 할꺼라고 생각했
는데..사람의 정이란게...참....
막상 대기실에서 아이를 마중나온 눈이 파란 양부모를 만나 이 아이를 건네주는데
그게 왜 그렇게 싫었는지.. 그나마 첫인상이 좋은 이 아이의 양부모들의 모습에 조금은
위안을 얻었지만, 만 하루를 고생고생하면서 들은 정을 뜯어내는 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였다. 아이를 건네주고..내품을 떠난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결코 뒤돌아
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난 공항 밖을 빠져나가 배정된 모텔로 가급적 빨리 움직
이려고 했었다.
그때 누군지 뒤에서 나를 잡는 사람이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가 될 피부색도 틀리고
눈색깔도 틀린 미국여자가 날 붙잡고 반 이상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뭐라뭐라
떠드는 것이다. 그리고는 불쑥 선물상자 하나를 건네주면서 밝게 웃으면서 나를 포옹해
주었다.
이미 비행기는 끊어진 늦은 시간에 도착했었기에 난 공항 부근의 모텔에 짐을 풀었고
안되는 영어로 카운터에 부탁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피자를 시켜 먹었다. 페파로니만
잔뜩 올라간 짜디 짠 피자를 씹으면서 왜 그렇게 목이 메이고 막혔는지... 딸려온 콜라를
아무리 들이켜도 꽉 막힌 속은 뚫릴 기미가 안보였었다. 아마도 피자 때문만은 아니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20대 중반 나의 두번째 외유는 돈을 아낀다는 취지와 목적으로 어쩌면 편법적인 방법으로
미국을 건너갔으나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경험이 아니였나 싶다. 아마도 신문을 통해 본
오늘이 입양의 날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난 애써 그때의 짦은 만남과 이별을 다시 상기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름대로 나에겐 크나 큰 슬픔이였으니까...
그 아이...잘 자라고 있겠지...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