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와 다르다. 생김새뿐이겠는가. 똑같은 명제나 사물을 보는 관점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같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나의 염색체와 모든 세포 구조를 붕어빵처럼 찍어냈다면 모를까. 세상엔 결코 나와 같은 남은 존재할 수 없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나와 다른 남은 쉽게 파악이 가능하다.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몸의 한 부분이 불편한 사람, 혹은 정신의 어느 한 부분이 불편한 사람. 이러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우린 함께 품고 가야 한다. 그게 사람이고 인류고 만물의 영장인 것이다. 내가 얼마 전 모님의 서재에 남긴 댓글에 단서를 붙였던 유튜브 동영상이 하나 있었다. 그 동영상의 내용은 우리가 부르짖는 선진국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척도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보기도 한다. 보편적 평균치로 그 나라의 국민이 나와 다른 남을 어떻게 생각하며 대하는지 그리고 조금 더 확대해 배려라는 이 말로는 쉽지만 행동하기 어려운 단어를 어떻게 실천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의외로 발달된 시민의식의 덕분인지 이렇게 외부적인 차이점의 간극은 점차 좁혀지는 것 같다. 외모나 피부색, 혹은 언어의 차이점은 오랜 시간을 거친 인류의 시행착오의 덕분인지 조금씩 발전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반대로 내부적 차이점의 간극은 의외로 쉽게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
나와 생각이 다른 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우리가 읽었던 수많은 책에서 많이도 접해봤던 사항일 것이다. 타인의 생각을 두 귀나 혹은 두 눈으로 파악하고 그 부분에 대해 내 의견과의 조율과 차이점을 머릿속에서 판단한 후, 입을 통해 상대방에게 나의 의견을 전달한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며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함께 설득의 표현을 심어 보내는 건 조금은 고급기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상황은 책에 기술된 내용처럼 녹록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일단 타인의 의견은 틀리고 잘못된 것이라는 관점을 박아버린 후, 타협이나 설득의 의미보단 굴복이나 무시의 방법을 획책하곤 한다. 표현기교로 비아냥거림과 냉소는 자연스럽게 첨부되곤 한다.
우리가 TV를 통해 마주치는 토론프로그램에서 이런 모습들은 자주 목격되곤 한다. 내부적인 나와 다른 남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굳이 100분의 시간이 아니더라도 내뱉는 단어 하나만 보더라도 그 간극이 쉽게 좁혀지진 않아 보인다. 머리를 맞대고 최대의 결과 치를 끌어내기 위한 토론이나 논쟁의 모습보단 칼이나 창을 들고 상대의 생명을 노리는 아레나의 검투사들을 보는 느낌이다.
저명하고 고매하신 분들이 TV라는 대중매체에서도 이 모양인데 그에 비해 스팩적으로 딸리는 보통사람들은 어떠한가. “카오스”그 자체가 돼 버린다. 개인으로 시작해 집단과 단체의 패싸움으로 번지는 것 역시 순식간이다. 이쯤 되면 남의 생각이나 의견 따윈 안중에도 없다. 상대의 논점의 핵심보단 허점을 찾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꼬리를 잡아 물어뜯어야만 한다. 하나가 처참하게 박살이 나 회복불능의 상태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송곳니를 박아야 하고 발톱을 세워야 하는 제로섬 게임의 연속이다. 내가 이겼다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지만 그 승리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다. (졸라 허무하지 않은가)
역시나 두루두루 이런저런 모습을 목격하며 얻어 낸 결론하나는 책 많이 읽는다고 꼭 현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시야가 넓어지는 것 또한 아니라는 사실이다. 단지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가 돌격 소총이라는 기본무장에 로켓 란처와 수류탄, 유탄발사기 등등의 살상용 무기의 아이템이 하나씩 늘어나는 의미일 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