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날 우릴 성가시게 하는 존재들이 있다. 여러 가지 있겠지만 어김없이 사람 주변을 맴도는 파리, 모기. 이건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아마도 공통적인 현상일 것이다. 인간들은 이런 존재들에게 일종의 자기보호본능을 발휘한다. 끔찍한 바이러스와 질병을 옮긴다는 미명하에 뿌리고 태워 이들을 멀리 쫒아낸다. 옛날 하늘거리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파리채는 이제 약한 전류가 흐르는 미니멈 사이즈 배드민턴 채 비슷한 구조로 업그레이드되어 접촉 즉시 “빠지직”이란 효과음과 더불어 그들에게 이 세상과의 작별을 고하게 한다.
그렇게 파리, 모기는 인간에 비해 열등한 존재임과 동시에 한여름을 보내는 동안 척살 혹은 접근 불가의 존재들로 각인되어있다.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까. 만약 인간이 이런 파리, 모기의 위치로 전락한다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는 무척 흥미롭다. 머리가 잘려도 활동을 한다는 바퀴벌레의 강력한 생명력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진 않아 보인다. 인류라는 종보다 상위 개념의 종의 출현, 더불어 인류를 피식자의 범위로 떨어트린 강력한 헌터의 성격을 가진 종의 탄생. 이 만화 진격의 거인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른다. 더불어 일본만화 특유의 화려한 액션과 퍼포먼스는 기본.또한 과거 상위개념의 자존심일지도 모를 50M 높이의 방벽 속에서 현실에 안주하는 나약한 모습과 더불어 절대방어 개념의 유실로 인해 발생하는 처참한 패닉까지 꽃미남, 꽃미녀가 만발하지 않아도 내용 자체만으로는 어느 만화 못지않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과거 “기생수”를 통해 이런 세계관은 한번쯤 접해본 경험이 있다면 “진격의 거인”은 기생수와는 조금은 차별성을 두어야 할 것 같다. 기생수가 정도의 타협점을 남겨둔 진행을 보여준다면 이 만화는 그에 비해 에누리 없는 전개를 보여준다. 주인공 인류들의 반동세력인 거인들에게 지적능력은 제로, 생식기관과 소화기관은 전무하며 단지 약육강식에 의한 먹이의 개념보단 살육의 개념을 강조하는 설정도 참신하다. 아메바 같은 무한재생도 재미있는 설정이다.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 “미스트”에서 우린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내부붕괴의 과정으로 자멸하는지 이미 경험했었다. 이 만화 역시 그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단지 무대의 배경이 쇼핑스토어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방벽으로 둘러싸인 인간들의 영토라는 크기의 개념만 다를 뿐이다.
성공한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는 일본의 구조상 역시나 이 만화 역시 애니화가 결정됐다고 한다. 신경만 써준다면 근래 보기 드문 역작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