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해 - The Yellow Se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돈 삼천만원이면 사람 목숨 하나 금방 사라진다. 불법 체류 중국인에게 청부를 하는 거지. 그들은 그 돈이면 부자가 될 수 있거든. 그렇게 사람 죽이고 본토로 넘어가면 범인을 잡을 수가 없어. 거의 완전범죄야.”
짐작 살벌한 농담이려니 하다가도 이런 말을 꺼낸 사람이 어두운 직업계통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면 그냥 하는 농담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우연하게 들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최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영화로 말이다.
이 영화는 2시간이 넘는 동안 두 남자의 궤적을 쫒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극과 극의 상황 속에 먹이사슬로 따지면 제일 아래 있음직한 사내와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을 남자는 일종의 계약을 맺는다.
부채탕감을 보장받고 사람 하나를 죽이라는 계약.
궁지에 몰려 나락의 끝자락에 몰렸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계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이 껄끄럽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얽히고설키기 시작하며 황토물이 누렇게 끼었을 황해는 핏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미 이들(하정우, 김윤석, 감독 :나홍진)은 전작에서 맞춘 호흡을 보다 완성도 높게 다듬고 예리하게 날을 세워 황해를 통해 또 다른 핏빛 묵시록을 보여준다. 전작인 추적자와 마찬가지로 주인공들의 일생은 비루하고 처절하다. 거기다 이번엔 소속감 부재까지 얹어버린다.
조선족인 구남(하정우)은 어디에도 소속감을 가질 수가 없어 보인다. 마작 판에서 조선족이란 놀림에 발끈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허공에다 내뻗는 헛된 주먹질 같이 보인다. 한국에선 동정과 더불어 경멸의 시선을 함께 받는다. 이런 어둡고 탁한 배경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가족애는 애당초 파묻혀버리고 만다.
육식동물 같은 면사장(김윤식) 역시 조선족이다. 구남과는 달리 폭력으로 이뤄낸 성과물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 역시 황해를 건너며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수월하게 취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물질의 탐닉이 사냥개에 쫒기는 토끼라고 여겼던 구남의 끈적끈적함에 조금씩 수렁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단순하게 사람 목숨 하나 끊고 오는 여정에 검은 조직의 알력과 치정과 불륜까지 부대끼기 시작하며 황해라는 영화는 수많은 곁가지를 하나의 줄기로 다시 묶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더불어 영화 속 면사장이 휘두르는 날 선 손도끼로 장작을 패듯 줄기를 싹둑 잘라내 하얗게 태워버리는 허무한 결말로 끝맺는다.
황해는 군더더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적인 구도, 시적인 대사 같은 건 존재자체가 무의미하다. 사건의 진행과정도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꽤 빠르게 진행된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품고 있을 복잡한 관계 역시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직관적 표현이 난무하는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뒷맛이 계속 남게 된다. 해감이 덜 된 조개를 씹고 자글거리는 모래가 입에 거슬리는 느낌이 오래가듯 이 영화 역시 그 질긴 퍼석거림이 꽤 오랫동안 남는다.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잔인하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영화는 결코 아니지만, 세상사는 이치가 바른생활 도덕책 같진 않기에 이런 비릿한 영화도 완성도에 따라선 대접받아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그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몰입하게 만들만큼 영화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연기는 수준급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