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 Merry Christma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지구상 어딘가 아직도 총알이 날아다니고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의 생명은 하나하나 이 땅을 떠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진 않았지만, 더불어 경험해보고 싶지도 않은 전쟁이라는 환경은 경험해본 사람들은 공통적인 단어를 제시하며 표현한다.

지옥.

사람이 사람이 아닌 공간. 정육점에 매달린 고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육체가 산산이 부서지는 공간. 더불어 살아 있어도 영혼마저 파괴되는 공간. 그들은 그렇게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최상급의 학살현장을 지옥과 비유하곤 한다.  

 

영화의 배경인 1914년. 유럽은 이런 지옥이었나 보다. 통칭 제 1차 세계 대전이라고 명명한 이 공간 속 프랑스 북부 지역에선 독일군과 프랑스, 스코틀랜드 연합군이 대치상황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양상이 참호전 이었던 만큼 영화 속 군인들 역시 깊숙한 참호 속에 은신하며 밀고 당기는 지루하고 소모적인 공방전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시계바늘은 돌아간다. 이들이 전선에서 맞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변화가 시작된다. 적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걸 맞는 평화적 방법이 모색된다. 단 하루라는 시한을 걸어 놓은 채로...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존재한다. 바로 어제까지 서로에게 총질을 해대던 인간들이 단지 크리스마스라는 이유 때문에 단 하루의 휴전을 채결하고 총이 아닌 술잔과 음식을 서로 주고받으며 인간적인 정을 나누는 장면은 지옥이라고 표현되는 전쟁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모습을 보여준다. 휴전이 끝난 후 이런 어색함은 최고조를 달린다. 서로에게 포격 시간을 알리고 그 시간만큼 자신들의 참호에 잠시 피신해 있으라는 조언이 오가고 고맙다.를 연발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아무리 영화라지만 지나친 설정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든다.

결국 전쟁 중 이들이 벌인 평화적인 행동은 상부에 적발된 후 각자 다른 전선으로 강제적으로 전출되며 이 짧은 평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더불어 영화의 마지막 시커먼 화면에 남겨진 하얀 글씨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진정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 당시 전쟁 속에서 국적을 떠나 형제애를 나눴던 모든 군인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결국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지나친 묘사가 있을 지라도 그 당시 전선에 배치된 일부 병사들은 크리스마스 날 국적을 떠나 서로를 보듬고 위로해주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실화는 꽤 진한 여운을 남기게 해주었다.

영화를 본 후 뜬금없이 우리나라 소설 중 ‘단독강화’가 떠오른다. 국군병사 ‘양’ 과 인민군 병사 ‘장’의 잠깐의 휴식과 평화. 하지만 소설의 결말은 비극적이었던 기억. 더불어 떠오르는 ‘JSA공동경비구역' 의 허무하며 비극적인 결말.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이 기적 같은 휴머니즘과 우리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 같다.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가 주장하는 ’주적‘과 대치상태이며 전쟁을 잠깐 쉬고 있는 시기니까. 더불어 위정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왠지 화해와 평화와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고 있다. 이 영화 같은 기적을 바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요즘 이 땅의 현실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10-12-27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영화 감동적이죠. 더군다나 실화라니.

Mephistopheles 2010-12-27 10:01   좋아요 1 | URL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전쟁터에 내팽겨쳐도 로맨스와 휴머니즘이 남아있었나 봅니다. 더불어 적에 대한 예절까지...^^

마녀고양이 2010-12-27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화해와 평화는 점점 멀어지는 듯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죽어라 싸우다 크리스마스 하루 화해한게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요?
다음 날이면 또 죽어라 싸울텐데요. ㅠ

Mephistopheles 2010-12-27 10:00   좋아요 1 | URL
영화는 그 짧은 휴전의 과정을 거친 후 전쟁을 하지 않아요. 다음날엔 무인지대 혹은 자신들의 참호에 방치되어진 전우들의 시신을 서로 챙겨주고 장례를 치뤄줘요. 그 다음날엔 독일군이 연합군에게 10분 후 그쪽 진지에 포격을 가할 예정이니 이리 와서 피하시라고 하고 그 반대 상황 연출되고. 마녀고양이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 짧은 휴전 후 그들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하지 않아요..^^
하지만...지금은...아니겠죠..휴전이 뭡니까 그냥 서로 죽어라 싸우겠죠.

노이에자이트 2010-12-27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몇 년 전 책으로 읽었는데 이렇게 평화를 바라는데도 나와 아무 원한이 없는 이를 적이란 이유 하나로 죽여야 하는 전쟁이란 정말...기독교 문화권에서 크리스마스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영화에도 병사들이 어울려 축구경기하는 장면이 나오나요?
2차대전 중 독일군과 미군이 같은 집에서 갑자기 마주치는데 크리스마스 때라 서로 저녁을 함께 한다는 일화가 한때 리더스다이제스트를 통해 널리 퍼졌죠.

Mephistopheles 2010-12-27 17:57   좋아요 1 | URL
볼도 차고 서로 술먹으며 수다 떨고 자신의 아내 사진을 자랑하며 즐겁게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2차 세계 대전에서도 크리스마스 날 독일군과 마주친 미군이 이런 비슷한 평화로운 시기를 가졌던 기록도 존재하더군요. 그리고 비슷한 영화 '세인트 엔 솔져' 도 있습니다. 영화적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전쟁 속에 평화를 갈구하는 병사들을 보여주는 주제만큼은 잘 살렸습니다.

카스피 2010-12-27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실화는 꽤 유명하죠.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사랑의 학교란 책에서 언듯 본 기억이 나네요^^

Mephistopheles 2010-12-28 10:53   좋아요 1 | URL
제 기억이 맞다면 꽤 두꺼웠던 사랑의 학교의 에피소드 중 하나였을 껍니다. 근데 그게 1차 세계 대전 때 이야기인지 2차 세계대전 때 이야기인지 확실하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