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열기 속으로 - In the Heat of the Nigh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버지의 친구 분은 옛날에 서울 한 복판을 지나가는 매우 짙은 피부색을 가진 흑인과 마주쳤다고 한다. 그냥 입버릇처럼 그 친구 분의 입에선 혼자말로 ‘아 그 깜둥이 정말 시커머네..’란 말을 무심코 흘리셨다. 그러자 지나가던 그 피부색이 유난히 짙은 흑인은 능숙한 한국말로 ‘ 깜둥이니까 당연히 시커멓지..’ 란 대꾸를 했더란다. 너무나 당황한 그 분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의 과정을 거쳤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깜둥이..아니 흑인과 친한 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웃지 못 할 해프닝의 깊숙한 내면엔 나와 다른 모습을 한 타인에 대한 일종의 극단적 감정이 내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월감 혹은 열등감의 표현으로 그게 실수이건, 아님 사심을 가득 담은 진심이라도 이런 감정을 마주치면 불편함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 역사가 이런 사실을 당연히 불편하게 느꼈었는가? 란 물음표를 달게 되면 결코 그렇지 않다가 맞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인종 차별의 모습은 너무나도 많이 접하고 있으니까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로.  



밤의 열기 속으로 (In The Heat Of the Night, 1967)

감독 : 노만 주이슨
주연 : 시드니 포이티어,  로드 스타이거



오늘 본 영화 역시 이런 불편한 진실을 사심 가득히 내포하고 있다. 그것도 표면적으로 조금 완화된 요즘이 아니 인종차별이 노골적으로 자행되었던 1960년대 그것도 미국의 남부 미시시피의 어느 촌 동네를 배경으로 말이다.

흑인 형사 버질은 영화에서 일진이 사나워도 보통 사나웠던 게 아니다. 단지 휴가를 얻어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과정 중 새벽에 갈아타야 하는 정거장이 있는 동네에서 하필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외지인이 범인일 꺼라 확신하는 이 지역의 완고하고 보수적인 백인 보안관 빌의 용의선상에 1순위로 올라버렸으니까.

빌과의 첫 만남 역시 예사롭지 않다. 지갑에 두둔한 돈을 보며 범인이라 단정 짓는 그의 모습이야 몰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의 신분이 밝혀진 이후에도 도시에서 자기보다 많은 돈을 받으며 형사를 하고 있는 모습에 심한 반발심을 갖는 건 무식하다고 인정해도 도가 지나칠 정도다.

이렇게 버질과 빌은 시종일관 아옹다옹하며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수순을 밟게 된다. 물론 모든 과정의 해결은 버질의 머리에서 비롯된다. 이런 두 사람의 흑과 백의 갈등과 반목이 고조되며 변화는 빌의 모습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버질을 본 순간 보이 혹은 니그로로 지칭했던 칭호는 점점 버질이라는 그의 고유이름을 부르며 빌의 변화된 모습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더불어 똑똑한 흑인이 마을을 휘 젖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백인우월주의자의 테러로부터 버질을 보호한다.

이렇게 영화는 하나의 살인사건이 주는 스릴러와 더불어 흑백간의 인종갈등까지 섬세하게 표현해주는 모습을 보이며 근사하게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다. 더불어 퀸시 존스의 음악과 레이 찰스의 음색은 부록으로 치기엔 존재감이 느껴진다. 다시 말해 두 명의 명배우와 명감독이 보여주는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

이 영화처럼 명배우 2명+명감독 1의 조합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너지 효과는 대단하지만 실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자존심이 드높은 배우 둘은 현장에서 충돌과 엇박자를 보여주며 스텝들 피곤하게 하고 감독은 감독대로 배우 컨트롤에 애를 먹이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영화는 삼천포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결론은 생각했던 시너지 효과는커녕 욕이란 욕은 죄다 퍼 먹고 아마 그 감독 혹은 그 배우들의 명성에 오점을 제대로 남기는 경우로 발전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우린 이런 상황을 많이도 접하게 된다. 거대한 제작비에 비싼 배우를 기용했지만 평도 좋지 않고 흥행도 말아먹는 영화들. 극장 값 아깝고 난 이 영화 보면서 팝콘 먹은 것 밖에 기억이 안나 라는 감상이 나오는 영화들. 그런데 시간을 좀 많이 뒤로 돌리면 이런 과거의 영화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EBS를 통해 만나 ‘밤의 열기 속으로’는 1960년대 영화라는 시대적 분류가 무색할 만큼 근래 영화들의 모든 것을 압도한다. 구관이 명관이란 걸 확실하게 보여준 이 영화는 아마 내 다음 세대에도 분명 누군가에게 보여 지게 될 작품 중에 하나일 것이다. 



P.S.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당연히 이 영화는 굉장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지금보다 더욱 보수적인 아카데미도 인정할 정도로 이 영화의 완성도는 제법 높았나 보다. 하지만 남우주연상의 경우 흑인형사 버질을 열연한 시드니 포이티어가 보안관 빌을 연기한 로드 스타이거 보다 돋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우주연상의 영광은 로드 스타이거에게 돌아가는 아이러니를 남기게 되었다. 영화는 영화, 현실은 현실인 셈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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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6-14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좋았습니다. 시드니 포이티에라는 배우를 처음으로 주목하게 된 영화였죠.
그리고 흑인 배우에 대한 제 편견도 불식시킨 영화로 기억합니다. 멋졌죠..

Mephistopheles 2010-06-15 01:05   좋아요 0 | URL
언제나 마음은 태양, 초대받지 않은 손님. 그리고 밤의 열기 속으로. 시드니 포이티어의 대표작인 이 세 편의 영화가 같은 해인 1967년에 만들어 진 것도 참 인상적입니다.

플레져 2010-06-1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 영화 보고 감탄했어요. 시드니 포이티에의 젊은 모습은 꽤! 멋지더라구요 ㅎㅎ

Mephistopheles 2010-06-15 01:13   좋아요 0 | URL
언제나 마음은 태양, 초대받지 않은 손님도 꼭 보도록 하세요. 아마 이 배우의 모든 매력이 다 나올 꺼라고 보여집니다. 재미있는 건...이런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흑인배우의 탄생 후 1970년대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이라는 남성상을 강조하는 영화들이 출연하는 재미있는 현상도 있습니다.

카스피 2010-06-14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원작인 추리 소설도 상당히 훌륭한 작품이죠.하지만 국내에선 그닥 잘 알려지지 않았지요^^

Mephistopheles 2010-06-15 01:20   좋아요 0 | URL
존 볼의 원작소설이라는 정보는 찾았는데 애석하게도 국내 정신 출간된 적은 없나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