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S대와 매우 가깝게 위치한 학교였다. 더불어 고등학교를 다녔던 시기가 정치적으로 꽤나 암울한 시기였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대학생들의 데모가 끊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 이유로 우린 한여름에 창문을 열고 수업을 할 수 없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고 격한 기침을 할 바에 차라리 한증막을 택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 짜증이 나도 보통 짜증이 아니었다. 이유와 발단이 어찌되었던 최루탄이 사용될 지경까지 진행하는 과격한 데모방식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머리가 커가면서 대학생들의 데모라는 것에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운동권 중심세력에 있던 친구 녀석 덕분에 무엇 때문에 학생들이 데모를 하며 그들이 그 당시 말하던 주체사상과 혁명과업 등등 날 서린 시뻘건 문구들을 친하던 그 친구를 통해 전해 듣게 되었다. 어쩌다 만나는 자리에 그 녀석은 술 한모금과 더불어 시국을 삼켰고 그때 당시 정부와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살벌한 비판을 내뱉곤 했다.
세월이 흘렀다. 그 녀석도 늙고 나도 늙어가고 있다. 이제는 그때 그 날이 시퍼렇게 서린 그를 찾아보기 힘들다. 속칭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새끼 둘을 거느리고 알콩달콩 어렵지만 중소기업에서 한 자리 차지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다. 단지 변하지 않은 건 그가 생각하는 시국의 문제점과 대한민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에 대해 기본적인 입장만큼은 결코 변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가 나를 비롯한 타인에게 보여주는 표현의 방식만큼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젊은 시절 시퍼렇다 못해 위태로울 지경으로 까지 보여 졌던 그의 날 선 비판은 이제 많이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수년간을 지켜본 친구의 입장에서 어느 날 술자리에서 난 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거 아냐. 똑같은 말인데 그때보다 지금의 너의 말이 나에겐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사실을.."
친구는 실실 웃으며 넙죽 대꾸한다.
"식당개 3년이면 라면 끓인다더라. 투쟁과 분투 속에서 난 어쩌면 보다 대중적인 방법을 택하는 걸지도 모르는 거야. 임마. 그런데 내 이런 모습이 어떤 사람에겐 변절자로 보이고 비겁한 기회주의자로 보인다고 하더라. 허허.."
그 말 듣고 또 다시 난 대꾸한다.
"변절자와 비겁이라. 글쎄 내가 다윈의 종의 기원까지 들먹거리고 싶진 않은데 세월과 시대가 급박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명체는 도태되기 마련이라더라. 이건 생명체만으로 국한시켜선 안 된다고 본다. 형체가 없는 무형일지라도 사람들의 정신이나 사고방식, 가치관 역시 기본의 틀은 유지하되 겉껍데기는 환경에 맞게 유동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러지 못하면 도태 돼 버리거든...제 아무리 고고하고 고매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도 단명하면 어느 누구의 기억에도 존재하지 않잖아. 오래 끝까지 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보고 싶은데 말이다."
별 말 없이 실실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치며 소 주 한잔 하자고 잔을 든다. 더불어 마셔준다. 그날 그 녀석과 마신 소주는 꽤나 달았던 기억이 난다. 별 화려하지도 기름지지도 않은 안주쪼가리들이 즐비한 허름한 술상임에도...
표현의 방식이 보다 다양해지고 세분화되어가고 있는 요즘, 세련되어지고 보다 설득력 있는 표현방식은 책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입장의 누군가를 설득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책 몇 권 읽고 강연을 듣는다고 이런 방법을 능수능란하게 써먹기에 인간은 그리 우월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끊임없이 시도해보고 실험해보고 적용해보는 것이 해답이라고 보고 싶다.
날 선 비판, 독설, 비아냥거림은 대중적 지지는커녕 이미 사장되어진 구시대의 시행착오라는 사실과 단지 또 다른 표현의 부수적인 양념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평생을 가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도태되고 변질되기 싫다면 시대에 맞는 표현방법을 연마하는 것만이 생존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