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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직설적인 묘사로 가득한 이 책은 이미 영화 때문에 어마어마한 유명세를 치르고 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국내에서도 제법 많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듯 여기저기 리뷰가 속속 출몰하고 있다. 책은 이런 유명세에 비해 지극히 간단하다. 어느 헐리웃 영화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불법적인 거래의 용도로 쓰이는 현금 가득 담간 돈 가방을 가지고 엎치락뒤치락 쫒고 쫒기는 추격전을 묵묵하게 그려내고 있다. 단지 장르가 코미디나 해피엔딩 같은 가볍고 경쾌한 행보대신 무겁고 묵직하며 뼈와 살이 지글지글 타고 있는 스릴러의 장르를 달리고 있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 또한 짧고 간결하게 어떠한 미사어구 없이 직설적인 내뱉음의 연속이다. 서로 길게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상대방과의 형식적인 대화마냥 A가 툭 뱉어낸 말을 B는 귀에 간신이 걸친 후 또다시 툭 맞받아치는 대화방식으로 읽고 있자면 모래가루가 입안에서 서걱서걱 씹히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런 흔한 구성과 무미건조한 대화로 일관되는 어쩌면 3류 스릴러가 될 뻔한 이 소설은 한바탕 살육전의 와중에서 간신히 숨어있는 주인공인 노인 벨 보안관의 독백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냥저냥 나이를 먹어버린 영감탱이가 담배를 물고 막걸리를 마셔가며 자신의 젊은 시절의 그 푸릇푸릇한 청춘을 회상하는 것이 아닌 그가 속한 사회와 인간들과의 관계의 변화에 대해 자조 섞인 독백으로 읊어 내고 있다.
인심이 야박해졌다거나 각박해졌다는 완곡한 표현대신 인격이라는 요소를 가진 인간들이 밀림의 정글마냥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에 길들여진 야수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비판하고 고뇌한다. 그것도 야수처럼 먹고 살기 위한 생존의 본능이 아닌 자그마한 자기 이득과 손가락 한마디의 손해도 감수하지 못하는 이기심과 욕심으로 같은 종의 인간을 살육하며 인간성 또한 도륙하는 모습을 묵묵하게 되뇐다. 마치 자신이 지나쳐 왔던 인간 살육의 역사적 장이였던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하곤 상대도 안 된다는 표현으로 말이다.
현실을 돌아보면, 책 속의 배경 텍사스 인근 사막에선 어쩌면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를 세기말적인 인간성 상실의 현장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변이되어 지금 내 코앞에서도 수차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를 것이다. 난 그때 벨처럼 독백이나 흘리며 회상에 젖어야 할까. 아님 모스 같이 허영을 쫒아야 할까. 그도 저도 아니면 시거와 같은 냉혈한이 되어야 할까. 무엇을 선택하던 나오는 한숨과 뻐근함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우리들 주변의 변화 또한 책 속의 내용과 비슷하게 점차적으로 변이되고 있으니까. 암울했던 과거시대로 회귀하는 모양새를 갖추고서..
노인을 위한 나라 뿐만이 아닌 인간자체를 위한 나라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