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학때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던 동기녀석 하나는 무(모)한 도전을 시도한다. 한 달동안 하루도 안빠지고 매일 매일 술을 마시는 것. 양배추 인형처럼 생긴 녀석이였는데, 이 얼토당토하지 않는 도전을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기에 그냥 농담이려니 했으나 그와 함께 일주일 동안 술잔을 비우며 이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달을 꼬박 채워 언제나 소주로 뱃속을 채운 그 녀석에겐 그 당시 어떤 고민이 있었을까..
2.
20대 참으로 많은 술을 마셨다. 남들처럼 고민이 있어서 혹은 술이 너무너무 좋아서가 아닌 그냥 사람과 술잔을 기울이며 수다를 떨고 교감을 갖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퇴근 후 저녁 7시부터 신천에서 마시기 시작한 술은 다음날 아침 7시 신촌에서 끝을 맺은 적은 여러차례였다. 알딸딸하게 취한 적은 있었으나 그리 마시고도 단 한번도 필림이 끊긴 적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그냥 지우고 싶은 과거의 한 토막의 고통으로 나발을 불었던 소주병엔 어김없이 필름이 두어차례 끊겼던 기억이 난다.
3.
30대가 되니 마시는 술이 더 이상 수분+알콜이라는 물질적인 것으로 표현이 불가능해진다.
누구와 마시던 내가 마시던 술 한 잔엔 그 사람의 고민이 들어있고, 그 사람의 분노가 들어있곤 한다. 어쩌면 마주보고 있는 타인 역시 나의 고민 한잔, 또는 나의 고통 한 잔을 들이키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 병에서 갈라진 한 잔의 술은 서로의 삶을 진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같은 술이라도 쓰기도 하며 달기도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