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이 거리에 넘쳐나는 시즌이다.
연말에 왜그리 술들을 퍼먹냐는 질문에 가장 그럴싸한 대답은
1년동안 받은 상처와 후회들을 마셔서 잊기 위함이다라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잊기위함을 넘어서 손가락으로 누르면 온 몸에 나있는
구멍에서 알콜이 찍~ 나올 정도로 퍼마시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어제 했던 송년회 역시 이동했던 장소에선 아주 쉽게 이런 사람들을
많이도 만나게 되었다. 마시다 마시다 그 취기가 결국 주변사람들에게
까지 피해를 주는 상황말이다.

1차
식사를 겸한 배나무골 오리구이집.
예약을 좀 늦게 했더니 조용한 방은 동이 나버렸고 테이블이 여러개
있는 좌식 큰방으로 배정받았다. 옹색하게나마 병풍으로 각 테이블을
분리한 형태를 띄고 있다.

예약시간 맞춰 갔더니만 이미 다른 손님 한패거리가 먼저 부어라 마셔라
중이였고 그 바로 옆자리가 우리 사무실 송년회 자리로 배정되었다.
그 큰 방에 두번째로 입장한 손님인 셈.

이미 소장마마는 그간의 모임으로 알콜이 목젖까지 차버려 더는 술을
못드시는 상황. 실땅님도 거의 마찬가지.. 그밖에 인물들은 끽해야 소주
한 잔에서 두 잔이 끝인 인물들... 술을 마실리가 없는 분위기....
그리고 술이 들어간다 한들 주사없이 조용조용 먹는 스타일들이라서
별반 후유증이 없었지만, 문제는 먼저 자리를 차지한 첫번째 손님패거리들..

술 마시면 유난히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들 동호회에서 왔는지 그 큰 음식점이
쩌렁쩌렁 울린다. 거기다가 구사하는 언어는 미국으로 말하면 뉴욕 뒷골목
할렘가 흑인들이 구사하는 수준이며, 유머랍시고 떠드는 농담거리들은 죄다
갑오경장때 폐기처분되었을 소재거리들 뿐이다.

아마도 이러한 소란은 차근차근 그 방을 차지하기 시작했던 다른 손님들에게도
거슬렀는지, 그들이 퇴장할 땐 약속이라도 하듯 모두 밥수저 내려놓고 째려보며
혹은 멀뚱멀뚱 그들을 구경하는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아마 다들 나같은 생각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놈이 목소리가 제일 컸더라."

무공이 고강했다면 아마 탄지신공으로 뒷통수를 노려 젓가락을 날렸을지도 모르겠다.

2차
고것도 먹은 술-오리집에서 직접 담근 약술이 있다. 한약냄새 진동하고 두 잔 마시면
온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료로 무한리필이 가능하다-이라고
소장마마는 노래방 가자고 조른다. 비교적 규모가 큰 노래방에 갔더니만 진귀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한쪽 벽면을 완벽하게 차지한 개인 키핑 마이크들. 바(bar)에서 마시던
양주 키핑하는 장식장과 똑같다. 차이점은 양주가 아닌 이름이 새겨진 마이크가 진열되어
있다는 것.

3차
이번 송년회의 하일라이트이다.
뭔가 아쉬운 직원들은 소장마마 일동 노장파들이 집으로 고고 하는 사이 노래방 바로
위에 있는 스카이라운지로 향하게 되었다. 워낙에 술 못먹는 족속들만 남은지라 칵테일
한 잔하자고 올라갔으나 이미 칵테일 타임은 마감. 그렇다고 양주는 시키나 마나고 와인으로
급변경 후 2층에 자릴 잡았다. 주문을 하고 기다릴려니 스카이라운지 카운터가 있는
1층에서 제법 소란스런 소리가 올라온다. 취기가 오른 늙수그래 장년 하나가 바텐더, 서빙하는
직원은 죄다 아리따운 미녀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이 가게에서 시비가 붙은 것이다.
(아리따운 미녀들은 제대로 다 옷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이상한 곳
아닙니다.) 바텐더와 옥신각신 목소리가 하도 커서 대략 들어 본 내용은 서빙보는 여직원이
자길 무시했다나. (아저씨 지금 아저씨의 모습을 보시면 왠만한 사람은 무시했을 꺼에요.
그러니까 좋은 술 드셨으면 조용히 꺼져주세요.) 이러한 소란은 사실 곧이어 일어날 시비의
빙산의 일각이요 메인이벤트 앞의 오프닝 이벤트이며, 유명밴드 앞에 오프닝을 열어주는
실력은 있으나 지명도가 낮은 밴드공연에 불과했다. 우리가 위치한 자리 바로 옆 손님들
무리에서 앙칼진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뭐.? 그래 나 외롭다 외롭다고..근데 니깐게 나한테 그딴식으로 말해. 뭐..?? 어쩌고 저째..
너 다시 말해봐...에이 십장생 빌어먹을 후레이크야"

흥분한 여성은 가게가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원인제공한 남자는 입을 다물고
일행인 다른 남자 하나는 여자를 말리기에 급급하다. 곧이어 싸대기 3연타를 날리는 소리가
장렬하게 가게 안을 뒤흔들고 곧이어 상 엎어버리는 소리.(완벽한 4단 콤보 되시겠다.)

" 너...나 우습게 보지마...그 따위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라면 나 볼 생각하지마...
이 십전대보탕같은 놈아..."

그리곤 여자는 발소리도 우렁차게 가게를 빠져나갔다. 얼덜결에 싸대기 맞은 남자는 이미
배 떠난 후 성질내고 여전히 말리던 제 3의 인물은 사태수습에 열을 올린다. 5분도 안돼
쪽팔렸는지 재빨리 자리를 피하는 상황 발생. 덕분에 우린 2층에 홀로 남아 아주 조용하게
와인을 홀짝거릴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서빙해온 아리따운 언니에겐 "우린 조용히 마실께요"
란 애교가 통했는지 서비스로 안주를 하나 더 주신다.


올해가 얼마 안남았지만, 이놈의 연말 분위기때문인지 길거리엔 제법 흐트러지고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주말엔 영하로 떨어진다는데 너무 무리들 하지 마시고 일찌감치들
가정에 귀화하는 건 어떠실런지? 괜히 길거리 배회하다 시비 붙고 싸대기 맞아봐..기분 더럽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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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사람 2007-12-2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다... 이 글 읽고 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얏호! =3=3=3

웽스북스 2007-12-29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연말엔 특히나 택시잡는게 매우 고역이에요 흑
근데 키핑 마이크 진짜 특이하다
노래방 1년에 한두번 갈까말까인데다가 갔던 노래방 다시 갈 일은 정말 없는데

2007-12-29 0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9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07-12-29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마다 연말 모습들이 '어째 저러냐..' 하면서도 해마다 변하지 않고 무한반복되는거 보면 참 어쩔까 싶다니까요. 그런건 알면서도 그러는거 아니에요? 몹쓸 고질병이지요..
개인 키핑 마이크.. 정말 생각도 못했던 장식이네요 +_+

미즈행복 2007-12-29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놀고 싶다~

sooninara 2007-12-2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네아줌마들하고 노니 이런 구경 할 일이 없네요^^
글로만 읽어도 시츄에이션이 딱 떠 오르는게..3류 드라마에서 많이 본 장면들..ㅎㅎ
그래도 아리따운 아가씨의 무료안주라니..기분 좋으셨겠네요.

sooninara 2007-12-2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번에 친목계에서 주말저녁에 나가서 밥먹는 모임에 불참했었는데..
후기를 들어보니 밥 먹고 술 한잔하러 간 호프집에서 고딩인지 20대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 둘이서 싸우다가 한명이 소주병 깨서 다른여자 머리를 때렸다네요.
119에 실렸갔다고..갑자기 위의 상황과 겹쳐지네요.

깐따삐야 2007-12-2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 싫다 증말. 연말은 가족과 함께 맨정신으로들 보내주셨음 좋겠어요.

Mephistopheles 2007-12-29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박님 // 그렇다고 제가 이 페이퍼에 뽕을 섞었다거나 혹은 본드를 바르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믿어주십시요.
웬디양님 // 그 노래방이 인테리어 회사에서 체인점식으로 운영한다고 하더군요. 1월달에 천안에 우리나라에서 (아마 세계최고) 제일 큰 노래방을 연답니다. 제일 좋은 실은 안에 미니정원부터 샤워시설(?)까지 있다고 하더군요.
무스탕님 // 그게 우리나라 성인들이 술 말고는 놀거리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조금씩 바뀐다고 하니 2018년쯤에는 많이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즈행복님 // 노시면 되죠 뭐 까짓것..(뒷감당은 못합니다만..호호)
수니나라님 // 아쉽습니다 그때 참가하셨으면 덩말덩말 현실감있는 무역활극을 보시는 거였는데 말이에용..^^ 그나저나 맞은 아가씨 머리에 땜통생기겠군요..
깐따삐야님 // 그게 말입니다. 놀거리가 없어서인가 봐요. 연말이라서 더 그런지 길거리에 아주 취객들이 넘쳐나더군요. 마치 좀비패거리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