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틀 전 칼퇴근(이 아니고 한시간 먼저 퇴근)하는 첫번째 날.
결혼 후 신혼살림을 내가 사는 동네에 차려버린 마님의 후배커플과
두번째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주종은 물론 소주. 그리고 안주는 저번에 들렸다 한달에 두번 쉬는 날
딱 걸리는 바람에 좌절했던 돼지사냥이라는 연탄불로 돼지고기 구워주는 집..
대충 마님의 문자를 확인해 보니 그 커플이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한바탕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래저래 사람들 모아서 술 좀 먹자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였는데....
집에 들어와 편한 홈패션으로 옷을 갈아입고 약속시간에 맞춰 장소에
나갔더니 내가 제일 늦었었다. 그런데 왠지 이 두 양반의 모습이 영
서먹서먹한게 대판 싸운 티를 대놓고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였다.
돼지고기집으로 자리 옮기고 주거니 받거니 술과 고기를 주섬주섬 털어
넣는데 남자는 별반 티가 안나는데 마님의 후배인 여자쪽이 얼굴에
잔뜩 그늘이 드리워진채로 고기도 안먹고 술도 안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더라.
서먹서먹한 분위기 타파하자고 따라진 소주를 연거푸 원샷해버렸더니
어느세 5병을 넘어간다.(참고로 모인 4명 중 마님의 주량은 소주 한 방울
그쪽 커플은 제법 술을 한다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영 술을 안마신다.
고로 나만 마신 모양새..)
6병째를 시키면서 어찌 분위기 전환 좀 해보겠다고 대판 싸운 신혼부부
에게 술을 권했더니만, 뭔가를 각오한 듯 신혼부부측 마님의 후배가
연거푸 3잔의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쌓였던 감정을 폭발시켰다.
바로 남자쪽에서 똑같이 빈속에 소주를 들이키면서 맞받아치기 시작..
엉겁결에 속도 맞춘다고 나 역시 연거푸 소주 3잔..그러고 보니 소주는
이미 7병을 넘어가기 시작한다.
8병째부터 그들의 하소연과 질문공세 등등을 들으며 그냥 허허 하면서
그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는 거죠 하며 변죽을 맞춰주다 보니 어느덧
소주는 9병에 육박하게 되버렸다.
그러니까. 간만에 만나서 소주나 한 잔 하자는 오붓한 자리는 부부싸움
연장선상과 함께 반주 맞춰주면서 간만에 엄청난 과음을 하게된 자리로
돌변해버린 것...
그날 과음하면서 술집에서 언쟁이 오갔던 신혼부부는 다음날 깨끗하게
풀렸다고 하니 다행은 다행인데.. 그들 변죽 맞춰주다 버린 내 속은 누가
보상하냔 말이지..
이럴 땐 4주 후에 뵙겠다는 마지막 명대사를 날리시는 신구선생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다는..그래도 신구선생은 맨정신이잖어 난 그들
덕분에 그동안 못마신 술 몰아서 마셔버렸다니까.
오늘은 회식인데..그나마 회먹으러 간다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뱀꼬리 : 항정살은 제법 맛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