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60913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p89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자 자살. 유서가 되어 버린 그의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배고파 못 살았고라는 문장이 있었다. ... 처음에는 생리적으로 느끼는 배고픔인지 정서적 고통에 대한 상징적 의미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왜냐면 차마위장에 음식물이 들어가지 않은, 배고픔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TV 뉴스는 1980년 중반이었다. 30대 초반의 남자가 굶어 죽었다. 300만원(으로 기억되는) 빚이 있었다. 그러나 빚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남긴 유산은 리어카와 그에 딸린 물건, 옷 몇 가지였다. 뉴스는 아주 짧게 방영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지인들 중에 이 뉴스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당시에 1960년의 절대 빈곤에서 1970년의 그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더불어 1980년 대는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국가에서 자평하던 시기였다. 지금의 GDP (또는 GNP)는 그 당시와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높아졌지만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새롭지 않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 당시 에티오피아 Ethiopia에서의 이야기였다면, 우리나라의 한국동란 때의 이야기였다면,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누가복음 12: 26~30)

 

그 당시에 나의 판단은 1980년대 중반의 우리나라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좀 더 부유한 나라가 되어도 굶어 죽는 사람은 여전히 있을 것이라는 것과 성경 독해를 굳이 교회나 목사님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