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60801
≪새로 태어난 여성≫ 서평 별점 ; ★★★ 도서관 대출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엘렌 식수 Helene Cixous라는 이 책의 글쓴이에 대한 소개 때문이다. 이 책은 여성적 글쓰기 대표 사례로 소개되었다. 여성적 글쓰기가 뭘까?
<까마귀-고슴도치 입말 사전>
1) 철학적 유희 ; 의문의 제기
2) 수학적 유희 ; 답의 완결성
3) 물리학적 유희 ; 답의 완결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의 새로운 진리
4) 문학적 유희 ; 애매모호
5) 예술적 유희 ; 표현의 다양성
(위 단어에 대한 해설은 아래 페이퍼에)
* 아이와 수학의 조합
http://blog.aladin.co.kr/maripkahn/4658857
수학에는 완결성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이 공식적인 수학 용어인지, 정의되지 않은 사회 언어인지 모르겠다.
덧셈, 뺄셈, 곱솀, 나눗셈에 관해, 유리수는 (거의) 완결성을 보인다. (0으로 나누는 것을 제외해야 한다.) 다차 다항 방정식의 근은 복소수에서 완결성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분법 ‘레비스트로스’와 ‘사르트르’ ; 나의 삼분법 ‘플라톤-노자주의’,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 ‘디오게네스-양주주의’를 벗어나는 글쓰기, 이 들의 완결성의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글쓰기가 과연 존재할까?
** 정보의 소실消失
언어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는 언어와 대비하여 보다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 플라톤(-노자)주의다. 이에 대비되는 것이 언어의 한계를 지적한 사람들인데, 디오게네스와 양주는 저작물이 없다. 그러나 양 극단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경≫에서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라 하였다. 힌두교나 불교의 경전은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류시화 씨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지구별 여행자≫도 그런 에피소드를 모아 놓았다.
* 볼수록 신기한 착시현상
https://www.youtube.com/watch?v=Q-izKOA_CLc
위 동영상은 Youtube에서 ‘착시현상’이란 검색을 통해 찾은 것인데, 이와 같은 착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3차원( 정보)을 2차원( 정보)으로 기록하면서 일부 정보를 잃어버려 나타나는 것이다. 언어, 글쓰기 역시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 여성적 글쓰기란 무엇일까? 만약 는 ‘여성적 글쓰기’를 “여성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야 한다.”라고 정의한다면, 엘렌 식수 Hélène Cixous와 다른 여성 페미니스트 (예를 들면, 정희진 씨나 리베카 솔닛, 스테퍼니 스탈 등)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최초? 아니면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에?
핵심을 잡아내지 못한 느낌. 눈동냥위해서 알라딘 서재에서 찾아봤으나 독후감 한 편도 없다.
이 책은 밑줄긋기를 포스팅하지 않고 시 詩 한편을 소개한다.
* 백옥섬 白玉蟾 지음
내키지 않으면 노자도 읽지 않는다,
도 道는 책 속에 있지 않으므로.
내키지 않으면 장구 章句도 보지 않는다,
장구는 도보다 깊지 않으므로.
도의 묘한 진리는 허 虛에 있고,
징 澄에 있고, 냉 冷에 있다.
그러나 나는 종일 어리석은지라,
또 어디서 허를 구하랴.
내키지 않으면 시서 詩書도 펴지 않는다,
펼치면 시신 詩神이 떠나므로.
내키지 않으면 칠현금도 뜯지 않는다,
노래는 현 위에서 죽으므로,
내키지 않으면 술도 마시지 않는다,
강호 江湖가 절로 술잔 밖에 있으므로.
내키지 않으면 장기도 두지 않는다,
승패는 행마 行馬 밖에 있으므로.
내키지 않으면 산천 山川도 보지 않는다,
풍경의 정취는 마음 속에 있으므로.
내키지 않으면 풍월 風月도 대하지 않는다,
선경 仙境이 스스로 마음속에 있으므로.
내키지 않으면 속세와도 연을 끊는다,
갈건 葛巾과 모든 것이 내 마음에 있으므로.
내키지 않으면 춘추 春秋도 알 바 아니다,
천지운행이 마음 속에 있으므로.
소나무는 마르고 바위는 썩으리라.
그러나 나는 나, 영원한 나로다.
이 집을 불러 마땅하리,
'나재당 懶齋堂'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