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60714
≪소모되는 남자≫
나는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다른 분들의 독후감을 읽는다. ≪소모되는 남자≫를 여성이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을 가질까 궁금했다. 나의 서평을 올린 후에 어떤 문장을 읽었다.
문화가 남자를 착취한 것을 받아들여도 그 문화는 남자가 만든 것이 아닌가.
이 문장에서 또 다시 일반화와 개별화의 논의점이 있지만, 암묵적인 제한조건을, 수식어를 인정하기로 하자.
≪사랑은 사치일까?≫ (원제 ; Communion : The Female Search for Love)의 문장이 떠올랐다. p 정서적으로 여성에게 의존하여 얻는 기쁨과 별개로 남성들은 정서적 영역을 평가절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론 사랑의 가치절하를 의미했다.
그리고 나는 아래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문명에 의존하여 얻는 편리와 기쁨을 별개로 여성들은 문명-문화적인 영역을 평가절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론 정서적 외적 분야의 가치절하를 의미했다’ 어제 다시 그와 비슷한 문장을 읽게 되었다. ‘남자 군대 보낸 게 여잡니까’
남자를 군대에 보낸 것이 ‘여자’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사회가 보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분의 ≪소모되는 남자≫의 독후감을 읽고 작성해 놓은 내 글의 일부를 알라딘에 올리지 않았는데, 아래 (요약한) 내용이다.
배 ship를 만든 것이 여자인가? 문명을 남자가 만들었으니, 답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해운회사는 여자가 만들었나. 교육제도는 여자가 만들었나. 수학여행은 여자가 만들었나. 아마 모두 남자가 만들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남자의 문명사회이므로.
배가 침몰해서 300명 넘게 사망했다. 위 논리라면 이 사고로 사망한 수많은 남자의 죽음에 대해 여성이 슬퍼할 필요가 없다. 남자가 만든 문명에서 남자가 희생된 것이 아닌가? 구의역에서 한 남자 노동자가 죽었다. 이 남성에게 구의역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라고 여성이 시켰나?
그러나 여성들이 지하철은 타고 다닌다.
페미니스트인 카밀 파글리아 Camille Paglia는 여성이 문명을 주도했다면 우리는 아직 오두막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