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60126
<숨통이 트인다> 구매
- ‘녹색 당신의 한 수’가 ‘녹색당 신의 한 수’되기를 기대하며
페미니즘에 관한 독후감을 올리던 중 알라디너 한 분이 이런 내용 말씀을 하였다. “마립간 님은 페미니스트의 책을 비판(반박)하려 읽나 봐요.” 이 분의 이야기는 절반의 진실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의 책을 비판적으로 읽는다. 그러나 나는 (거의) 모든 책을 비판적으로 읽는다. 이것이 나머지 절반의 진실이다. 나의 독후감에 비판적 내용이 없다면, 내 능력이 비판할 수 있는 것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의 목사님의 설교도 비판적으로 듣는다. 특히 과학 관련 말씀은 오류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의문 나는 점은 메모해 두었다가 나중에 확인한다.
나는 수학책과 물리학 책도 비판하는데, 이는 오히려 내가 비판하는 내용이 수학, 물리학이 아니라 철학의 분야 속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수학과 물리학도 가장 기본적 토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온도계의 철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순수한 객관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알고 느끼는 바에 대해 객관이 없다고 할 수 없기에 최소한의 경험적 가정은 인정하고 시작한다. 나는 이를 직관이라고 한다.
나는 사회과학에서도 같은 논리를 적용했다. 나 역시 사회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필요하고 최소한의 가정은 받아들인다. ‘녹색당’ 역시 비판의 눈으로 보면 토대가 불확실하다. 그러나 직관에 의지해서 (나는 ‘충분히’ 넘쳐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녹색당의 지향점에 동의하고 시작한다.
누군가는 페미니즘으로, 또는 적녹보라 (노동-환경-성평등) 패러다임으로, 또는 적녹보라 패러다임이지만 보라에서 시작하려는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나는 적녹보라의 패러다임의 시작을 녹綠으로 시작한다.
나의 로망 roman인( 또는 로망이었던) 녹색당, 이번 선거에서 선전하여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