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지겨우시겠지만-황우석 논쟁을 보며

 

 

 

 

황우석 박사의 윤리문제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딴지로부터 받고나서 전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써야 하냐"고 물었을만큼 아무 생각이 없었던게죠. 주위 사람에게도 물어봤지만 이거다 할만한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제 삶의 경험에서 나온 얘기들을 '대충' 썼다가 욕을 무지하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괜히 썼다고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욕을 먹는 과정에서 제가 배운 게 많기 때문입니다. 일상적인 비윤리에 찌든 저에게 다른 분들의 글은 저로 하여금 많은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믿었습니다. 피디수첩이 그러는 게 황박사의 업적을 훼손하려는 게 아니라, 어느 분의 말씀처럼 ‘짐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고요. 하지만 피디수첩 측이 “황박사를 죽이러 왔다.”고 말했다는 증언을 듣고나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습니다. “황박사의 업적을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이라면서 수없이 댓글을 달던 이들이 황박사의 진위논쟁이 엠비씨의 후퇴로 귀결되는 이 시점에서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처참한 패배” “참담합니다.” “좌절감을 느낀다.”

피디수첩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이 말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이들이 바라는 건 그러니까 황박사의 업적이 거짓으로 판명되어 그가 영원히 과학계에서 퇴출되는 것이었나 봅니다.


황박사는 윤리 문제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피디수첩 또한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황박사의 윤리문제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격분했던 분들은 피디수첩이 취재과정에서 ‘검찰수사’ 운운하며 협박을 일삼았다는 보도에 아무런 분노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황박사가 뭔가 대단한 걸 숨기고 있고, 높은 분의 압력으로 인해 6일치 방송이 불발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피디수첩이 제보자라고 주장했던 연구원은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이것 역시 압력에 의한 번복이라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피디수첩의 의도대로 그분들은 황박사가 2차 검증에 응하지 않는 것을 “뭔가 구린 구석이 있어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1차 검증에도 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료의 대부분을 ‘판독 불가능’으로 만든 건 KBS 보도대로 ‘엠비씨 측의 시료처리 미숙’일 수도 있지만, 그분들은 그런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2차 검증에 응하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자, 2차 검증 역시 ‘판독불능’이 나온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분들은 아마도, “3차 검증에 임하라”며 황박사를 협박하겠지요. 그래서 전 황박사 측이 2차 검증을 거부한 걸 이해합니다. 1차 검증 결과를 보고 나서 더 이상 응할 가치가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한 개가 불일치라고 했던 피디수첩의 기자회견과 달리 국과수는 “그런 말을 피디수첩에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요. 피디수첩 측은 거기에 대한 녹취자료를 갖고 있지 않은 걸까요?


우리나라 언론에 문제가 많다는 건 모두 아실 겁니다. 이번에 생로병사를 같이 찍으면서 그들의 오만과 무성의,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쥐뿔도 없다는 걸 다시한번 느낍니다. 저 자신도 경험했지만 언론인들은 특정 사실을 전제해 놓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취재원의 발언을 왜곡합니다. 전 엠비씨라고 다르리라 생각지 않으며, 그건 엠비씨가 사과문을 낸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왜 피디수첩의 PD들에게는 엄청난 신뢰를 보내는 것일까요. 그들 역시 크게 보아 언론인인데 말입니다. 제가 진심으로 말씀드리건데, 언론계에 비해 아직 과학계는 조금 낫습니다.


지금은 독재 시대가 아닙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서 보듯 대통령의 아들도 보란듯이 구속되는 시대입니다. 종교계와 삼성을 제외하면 이 땅에 성역이라고는 없어 보입니다. 대통령과 과학자 중 누가 더 센 존재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고, 어쩌면 황박사가 훨씬 더 세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을지 모릅니다. 저 역시 황박사의 업적이 견제받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견제는 황박사로 인해 연구비 고갈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다른 과학자들, 그리고 황박사의 업적을 질투하는 다른 나라의 과학자들에 의해서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과학계만큼 견제와 비판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또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황박사의 업적은 그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온 산물이며, 당장 실용화될 것은 아니라해도 제가 그 업적을 인정하는 이유는 거기 있습니다. 피디수첩 6일치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피디수첩의 수준으로 보건대 황박사의 업적이 가짜라는 걸 입증할 결정적인 뭔가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런 게 있다면 현재의 여론이 안좋다해도 방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전에 과학자들을 모아놓고 시사회를 한 다음, “괜찮냐”고 물어보는 과정이 필요하겠지요.


윤리논쟁이 우리나라 과학계에 만연된 비윤리를 없애는 데 일조한 반면, 진위 여부에 관한 논란은 도대체 어떤 이득을 가져다 줬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어떤 과학자 분은 “거지같은 나라, 나라면 뜬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세계적 업적을 남긴 과학자를 헐뜯고 끌어내리기 위해 안달하는 지금의 풍토라면 연구비도 적고 여건도 열악한 우리나라에서 굳이 연구를 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싶습니다. 피디수첩으로 인해 착잡한 열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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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6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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