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50615
<사단칠정 자세히 읽기> 서평 별점 ; ★★★★, 도서관 대출
‘Ⅰ. 해설로 읽는 사단칠정’에 군더더기 없이 사단칠정론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밑줄 긋기는 1장에서만
p87 퇴계학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선한 정감과 일반 정감을 선함과 선하지 않음이라는 구도로서 대립적 해석을 하고, 이것은 둘째 이치와 기의 관계 역시 대립적 구도로 설정하면서 ‘이치와 기는 섞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여기에 따라 셋째, 이치가 기를 적극적으로 제어하고 통제하는 능동성을 가진 존재로 이해한다./p98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을 극단적으로 밀고 간 결과다.
p91 이이는 ... 이치가 기를 주재하고 기는 그러한 이치를 싣고 운행하는 존재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이치는 기가 아니면 자신을 싣고 운행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기는 이치가 아니면 어떠한 기준에 따라 운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 리통기국론理通氣局論,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
* 밑줄 긋기
p20 하지만 ‘학문의 대상’이 반드시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에만 머물러야 하는지는 한국에서 한국철학을 하는 필자에게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p21 선한 정감 四端과 일반 정감 七情
p21 사단칠정 논쟁의 목적은 개인적이고 즉흥적인 개인의 정감을 수양을 통해 이타利他적인 정감을 만들어가는 데 있다. ... 사단칠정 논쟁의 형식은 ‘이성적’이지만, 그 주제는 ‘정감’이다. 정감은 사람 행동의 직접적인 이유이며, 따라서 수양의 대상이기도 하다.
p23 많은 사람이 그 마음에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을 키워가고 타인의 불행이나 기쁨과 같은 정감에 예민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참으로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사회로 한 단계 더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p31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사람의 정감은 곧잘 부정적인 시선에서 비껴나지 못했다. 정감과 관련된 우울증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하고 분노와 증오는 종종 폭력을 수반한다. 순간적인 성적 욕망으로 인해 .../p32 그러나 전쟁과 폭력을 없애기 위해 정감을 포기했던 사회는 사랑이나 즐거움, 행복과 같은 따뜻한 정감도 잃어버렸다.
p39 사람의 행동은 특별한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경우 말고는 대부분 그 날 그 날, 혹은 그때 그때의 정감에 따른다./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도덕적 행위들도 이성적 판단보다는 도덕적 정감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p40 그런데 문제는 정감이 지닌 이중적 가능성에 있다. ... 정감은 일반적으로 개인적 속성에 속하고, 선이나 악과 같은 단일한 속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p42 공적公的 정감 ... p43 즉 사단四端/p43 사적私的 정감
p46 예禮라는 강제화된 행동 및 문화 규범의 내면에 인仁함을 배치하면서 탄생한다. ; 다른 분의 설명은 예는 질서
p47 유학은 ‘현실적으로 악한 사회’와 ‘도덕적인 이상 사회’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고민에 빠진다.
p48 ‘하늘로부터 받은 것’ ; 순환논리의 모순이다.
p52 맹자가 중시했던 것은 이러한 정감이 ‘선천적’이며, 따라서 ‘누구나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p54 맹자는 이러한 이유에 대해 사람이 가진 선한 감정이 마음 전체에 가득 차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역시 순환논리의 모순이다.
p56 그것이 비록 사람만이 가진 특징으로 정리되고 있지만, 어쨌든 이를 통해 보편적 정감의 실정 가능성을 보여준다./선한 감정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정감을 객관화해가려는 노력이 이론적 결과물로 드러난 것이다. ; 보편적, 객관적으로 단정되지 않는다.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보편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는 뜻이다.
p59 선한 정감이 영역만큼은 우주 보편의 이치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객관화될 수 있으므로, 이를 통해 통일된 행동 양식을 만들려 했다.
p60 보편과 특수, 70억 인구가 같고도 다른 이유/사실 보편이나 형이상학 등과 같은 개념어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특수한 사실들과 동떨어져 있다./p62 그러면 이 같은 70억 전체의 각기 다른 특수를 묶어서 하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보편적 특징은 무엇일까?
p62 보편과 특수는 결코 떨어져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하게 동일한 형태로 섞여 있지도 않다./p65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모든 형체나 변화, 운동 등은 ‘변하게 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질서’와 그에 따른 변화가 합쳐진 것이다.
p68 그렇다면 사람에게 주어진 사람의 이치는 무엇일까? 주희는 ; 사람에 불성이 있다고 했던 불교를 차용하고, 맹자를 따라 선한 본성이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p70 ‘모든 사람’에게 강제화시키는 이론으로서는 취약성을 노정하고 있다.
p71 여전히 문제인 것은 선한 정감이 아닌 일반 정감이다. 일반 정감 역시 원론적으로는 본성이 정감의 형태로 그대로 드러난 것이므로 그 자체는 본성을 실현하는 정감이다. 그러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은 선한 정감이므로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든 설정해야 하는데, 주자학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p73 <천명도설>에서 선한 정감인 사단四端을 이치理가 발현한 것으로, 일반 정감인 칠정七情은 기가 발현한 것으로 정리하자
p75 사람이 선한 정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객관화하기 위한 이론화의 과정에서 그것을 절대적 선함인 이치의 영역으로 보려 했던 이황의 입장과, 본성이 정감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그 정감의 일부인 선한 감정으로 보려던 기대승의 입장이 부딪친 것이다.
p78 선한 본성으로서의 이치가 선한 정감과 관계하고, 다양한 속성으로의 기가 일반 정감과 관계하기 위해서는 이치가 선택적으로 제어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다시 말해 이치도 능동적인 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데, 주자학 입자에서는 능동적 속성은 기의 영역이다. ; 이황은 주자의 의견과 다른 주장을 했지만 사문난적으로 몰리지 않았다.
p79 그러면 이황은 기대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입장을 견지할까? 그것은 선한 감정의 근거를 명시적으로 확보함으로써 ; 플라톤-노자주의의 지향점이기도 하지만, 완성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항상 약점을 만들게 된다./정감으로 드러난 후 그것이 각각의 상화에 맞도록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율곡학파와는 ; 아리스토텔레스-장자주의 관점이 옳을 수 있다. 그러나 기회주의적인 이기주의자나 악덕에도 같은 논리를 제공해 준다. 율곡학파의 후계자가 서인이 되고, 세도정치를 하지 않았나.
p80 기대승 ; 일반 정감 역시 ‘본성’에 의해 발현된 정감이라는 주장은 여기에서 나온다.
p81 정감을 잘 다스려서 선한 정감으로 만들면 그것이 선한 정감이지, 태생부터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정감이 사람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 호락논쟁과도 일맥상통하고 ‘데카르트의 주장한 이원론’의 모순을 떠올리게 한다.
p81 비록 ‘이치와 기가 하나처럼 섞여 있지 않다’고 인정하지만, 그가 중시한 것은 이치와 기는 결코 떨어져 있지 않은 존재라는 점이다. ; 나는 이기일원론을 지지한다.
p85 ‘나는 수영을 배운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 이론은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는 것들이 대단히 많다. ; 이런 풍토는 수학을 순수학문을 위축시킨다.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도 수학을 수단을 생각했다. 공부는 합격을 위한 수단을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공부 자체를 즐길 수 있는가?
p85 흔히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 이 말은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p86 퇴계 ; 경敬 공부는 자신이 품부받은 본성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사적 정감에 의해 방해받지 않도록 자기의 일반 감정을 제어하도록 하는 공부이다.
p87 고봉 ;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 공부인 성성 공부는 바로 자신의 생각을 경전이나 시비지심 등을 통해 점검하여, 그것이 옳게 드러났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살피는 것이다. ; 공교롭게 다른 이유에 의해 남명은 공부 방법으로서 독경讀經을 중시 여기게 된다.
p87 퇴계학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선한 정감과 일반 정감을 선함과 선하지 않음이라는 구도로서 대립적 해석을 하고, 이것은 둘째 이치와 기의 관계 역시 대립적 구도로 설정하면서 ‘이치와 기는 섞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여기에 따라 셋째, 이치가 기를 적극적으로 제어하고 통제하는 능동성을 가진 존재로 이해한다.
p91 이이는 ... 이치가 기를 주재하고 기는 그러한 이치를 싣고 운행하는 존재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이치는 기가 아니면 자신을 싣고 운행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기는 이치가 아니면 어떠한 기준에 따라 운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p95 맹자와 순자의 입장까지 모두 집대성한 주자학은 맹자의 입장을 중심철학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현실적인 악의 가능성에 대해 순자의 입장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