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50428
<페미니즘의 도전> 밑줄긋기 (p8 ~ p37; 개정판 머리말과 초판 머리말에서)
이 책에 대한 반박이 너무 많아 끝까지 끌고 갈 자신이 없다. 아래글 중간에는 반박이라기보다 이해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부분에 관해서는 내가 오독 했을 수도 있다. 제대로 읽은 사람의 지도 편달을 부탁합니다. 비교적 수긍하면서 읽은 개정판 머리말과 초판 머리말에서 따온 ‘밑줄긋기’다. 당연히 본문의 반론은 더 많지만, 기본적인 시각은 동일하다.
* 밑줄긋기
p9 이에 반해 실제 거리와 이동 거리, 체감 거리가 모두 불일치하는 경우 객관적 거리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 세상 모든 것은 주관과 객관 사이에 있는 간주관적이나 사람은 대충갈기에 의해 주관적, 객관적, 간주관적으로 나눈다. 앞 문장은 거리에 관해 서로 다른 3가지 관점이 존재한다가 적당한 표현이다. 100% 객관적인 예에 무엇이 있는가?
p10 여성이나 여성주의에 무관심하면서도 ‘여성주의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면서 뭔가를 주문하고 지도하려는 여론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여성의 권익에만 ’머물지 말고‘ 사회 전반에 걸쳐 약자의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식의 언설이다. 어째든 이들의 요구(?)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틀린 말보다 더 심각하다. ; 바로 마립간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왜 심각한가?
p10 이 사례를 성별 범주와 구별되는 지역이라는 모순을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여성’의 목소리가 아니라 ‘제주도 사람’의 목소리로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모든 곳에 소속되어 있다. 이 경우 제주 도민의 입장이기도 하고 제주 여성의 입장이기도 하다. 제주 여성은 제주 도민이 아닌가? 제주라는 범주와 여성이라는 범주는 배타적이지도 독립적이지도 않다. ; 누가 제주 여성을 제주 도민이 아니라고 했나? 그런 말은 글쓴이가 한 것 아닌가? 나는 단락의 글이 ‘여성이나 여성주의에 무관심하면서도 ~ 심각하다’의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되는지 모르겠다. p27 다중적 주체인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여성’과 ‘제주’는 다른 측면이라서 따로 언급한 것이지 배타적이고 독립적이라서 따로 언급한 것이 아니다. 여성은 모든 곳에 소속되어 있다. 남성도 거의 모든 것에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여성은 일반 병사 모임에는 소속되어 있지 않다. 남성 역시 임산부라는 개념에는 소속되어 있지 않다.
p11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여성주의다. 여성주의는 양성 평등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이다. ;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이 존재한다면 그냥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이라고 부르면 된다. 왜 이 방법론에 여성주의가 붙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남성주의는 사회 정의를 생각할 지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인가? 이것이야 말로 편견이 아닌가? (여성과 남성은 부정이 곧 반대가 된다. 2015년 4월 27일자 페이퍼 ‘언어와 가치’ 참조)
p12 주지하다시피 지금 자본주의 사회는 부유한 계층 외에는 연장자 남성 중심이기는커녕, 그들을 존중하는 사회가 아니다. ; 전적으로 (유행하는 말로 ‘격하게’) 공감한다. 나는 머리말에 이런 있으면서 본문에 또 다른 내용의 글이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니면 제대로 쓴 글을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댓글의 지적이 없다면 이 책이 틀린 것으로 여기겠다.)
p12 피해 여성의 규모가 클 경우에만 ‘사회 문제’가 된다. ; 사회가 이렇게 작동하는 이유는 자본주의하에서 공리주의 작동 방식을 따랐기 때문이다. 공리주의가 ‘정의’와 같은 말은 아니다.
p12 젠더는 계급(class)처럼 사회와 인간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재료 중의 하나며 ; 가장 뭐뭐한 것의 하나는 국어 어법이 아니고 영어식 문장이다. (문체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문장의 문제점은 ‘가장’이라는 부사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두드러진다는 인상을 준다. 마치 군계일학처럼. 젠더는 인종, 민족, 국가, 돈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장 강력한가?
p13 모든 주류의 상징으로서 ‘남성’은 인식 주체에서 인식 대상으로 강등되고 ; 왜 인식의 대상이 되면 강등인가? 남성은 인식의 주체이자 대상인 객체가 될 수 있다. 여성은 인식의 주체이자 대상인 객체가 될 수 있다. 인간은 인식의 주체이자 대상인 객체가 될 수 있다.
p15 그런데도 과격한, 심지어 시기상조적 주장이라는 여론은 여성을 개인(인간)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 그 여론의 주체를 남성이라고 보는가? 왜 여성은 단일 범주로 보는 것을 비판하면서 남성을 단일 범주로 보는가? 그렇게 보지 않는 남성이 있다. 바로 나다. 내가 남성 아니라면, 제 3의 성인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남성이 아니라, 테스토스테론이 넘쳐 목소리가 큰 남성이다. 그리고 여론은 목소리 큰 사람들에 의해 선동될 뿐이다. <왜팔리는가>에 잘 설명되어 있다.
p15 앞으로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이 성차性差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 사회 현상 자체를 ; 글쓴이가 ‘여성의 권익에만 ’머물지 말고‘ 사회 전반에 걸쳐 약자의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에 어떤 이의 조언에 대해 비판한 글을 기억하자.
p17 “감사하는 능력”/p18 ‘지금, 여기의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양보의 결과다. ; 나는 2015년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 태어나지 않고, 한국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에 태어났어도 일제치하나 한국동란 중에 일생의 중요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을 감사한다. 나는 지붕이 있는 집에 끼니를 거르지 않음을 감사한다. 남자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한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할까?
p19 세 명의 여성에게 감사한다. ; 나는 네 명의 여성에게 감사한다. 어머니, 돌아가신 고모, 결혼해 준 안해, 그리고 딸.
p23 여성주의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 동감이다. 여성주의를 여성의 권익 신장으로 정의하든, 양성 평등으로 주장하든, 사회적 정의에 대한 성찰로 정의하든, 모든 것이 철학적 문제에 범주에 있기 때문이다.
p24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사고는 낡았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현실을 파악하기에도, 변화시키기에도 불가능한 체계 paradigm이다. ; 동감한다. 그러나 어려운 점은 대안을 제시하기 어렵다. 나는 여성주의도 불가능한 체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p24 끝은 새로운 시작이듯이 낮과 밤은 순환하고 연결되며 상호 의존하는 것인데도, 가부장제 사유체계는 그것을 대립으로 받아들인다. ; 맞는 말이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발견된 이후 뉴턴 역학은 틀렸다. 그러나 틀린 뉴턴 역학은 여전히 대충갈기의 범위에서 작동한다. 가부장제 사유체계도 마찬가지다.
p28 정체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 ; 역시 맞는 말이다. 주관이 배제된 100%의 객관은 없다. 맥락을 배제한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객관이 없다고 할 수 있나. 우리는 뉴턴 역학 대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사용하는가?
p31 대화의 시작에서 동일성을 가정하고 일반화하는 보편주의나 대화의 끝에서 지나치게 특수성을 강조하여 배제로 끝나는 상대주의가 아니라, 보편화하지 않는 특수를 지향한다. 차이를 보편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로부터 기존의 보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 글쓴이와 나와의 핵심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나는 보편주의와 상대주의를 통해 차이를 보편으로 환원하여 기존의 보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어느 알라디너는 내게 정형화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맞다.) 내 방법이 틀린 이유는 무엇인가?
p32 흑인 여성 운동가 ... 흑인 남성과는 여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고, 백인 여성과는 인종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다. ; 그래서 나는 보편주의와 상대주의를 이용한다. 그리고 양성 평등을 평등의 하위 부류로, 여성의 권익을 인간의 권익의 하위 부류로 놓는다.
p32 정체성은 임의적인 것이다. ;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에 잘 설명되어 있다.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p32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각자의 처지(차이)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연대이지, (남성 중심의) 단결이나 통합이 아니다. ; 남성과 소통을 포기하고 여성 중심의 단결과 통합이 옳은 방법이라면 ‘억압당하는 다수’라는 동영상은 나름 의미가 있다. 글쓴이의 주장대로 소통과 인간으로서 남성과 여성의 연대를 꿈꾼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p35 인류는 남녀 간의 성차, 차별, 폭력이 생물학적인 것인지 사회 문화적 결과인지, 물질적 토대가 결정적인지 언어에 의한 것인지를 놓고 오랫동안 논쟁해 왔지만, 내가 보기에 이러한 논란은 진부하다. ; 나 역시 진부하다고 생각한다. 물리학 현상을 뛰어넘는 생물학 현상은 관찰(증명)되지 않았다. (물론 공중 부양과 같은 예와 같이 주장하는 사람은 있다.) 수학적 이론을 벗어난 물리학적 현상도 관찰(증명)된 예가 없다. 마찬가지로 과학적 이론을 거스르는 인문학적 현상도 나는 아는 한 예가 없다. 아마 글쓴이의 결론은 나와 반대인 듯 싶다.
p35 페미니즘 사상의 발달은 이미 이러한 이분법을 뛰어넘고 ‘해결’했다. ; 뭐를 해결했는지 목적어가 없다. 앞의 문장을 뜻한다면 해결한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고 인지과학이 해결했다.
p36 거의 모든 인간의 고통은 ‘말’ 때문이다. 즉, 지배규범을 내면화할 때 발생한다. ; 이 문장이 진실이라면, 국가에서 할 일은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서 보이는 것들>이나 김난도 선생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무상으로 국민에게 공급해야 한다. 지금 국민은 고통스럽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