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50427

 

<페미니즘의 도전> 서평 별점 ; ★★★★, 도서관 대출

 

나의 서재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대화를 하고 있다. (이 정도 댓글을 주고받는 것은 논쟁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2003년의 글을 설명하고 있지만 같은 말을 반복만 한다면 발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객관성을 보충하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스스로도 궁금했다. 나의 생각은 10년 전과 달라졌을까.

 

p8부터 시작된 개정증보판 머리말을 읽는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끄덕였다. 그리고 구판 머리말을 끝나는 p37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막상 본문을 읽기 시작하면서, 동의하는 부분, 그리고 반론을 가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2003년에 나는 안티페미니스트다라는 글을 쓸 때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경험이 얼마나 일반화 할 수 있는가는 의문있었다. 이 책의 글쓴이는 여성학 연구자다. 강연도 많이 다니는 것 같다. 이 책은 2005년 초판 발행 이후 14쇄가 출판되었고, 2013년 개정판이 나왔다. 2003년 내가 경험하고 쓴 글이, 이 책에 대한 반론과 같다면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갖고 그만큼 일반화도 가능하다고 본다.

 

p116 ‘양성 평등이나 여성의 사회 진출은 내가 피하는 말들 중 하나다.

 

이 책의 글쓴이는 책의 앞부분에서 양성 평등을 언급하나, 줄 곧 여성주의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p116에서 '양성 평등'이라는 용어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성주의를 양성 평등으로 단어를 바꿔 읽으면 자연스럽게 읽힐 때도 있고 부자연스럽게 읽힐 때도 있다. 다시 말하면 나도, 정희진 씨도 여성주의양성 평등을 다른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성주의양성 평등은 많은 부분을 교집합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성 평등에 포함되지 않는 여성주의가 존재하고, 여성주의에 포함되지 않는 양성 평등이 존재한다. 이 두 용어는 동치도 아니며 어느 한 개가 다른 한 개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서로에게 공유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나의 반박이 있고, 이 책을 읽어보면, (물론 내 글을 읽지 않았겠지만,) 나의 의견에 대해 정희진 씨는 반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안티페미니스트이며, 양성 평등자 Gender equalist이다. 내가 사용한 안티페미니스트라는 용어는 feminism -> feminist -> antifeminist로 생긴 말이 아니라, feminist -> antifeminist로 생긴 말로 다른 글에서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feminism에 대한 antifeminism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Gender equalist는 내가 지금 만든 말인데, 이미 인터넷 검색에도 나오는 말이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anti-라는 접두사에 혐오라는 감정은 없다.)

 

‘Anti-’라는 접두어에 혐오라는 감정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말을 순화시키면 나는 ‘(양성) 평등을 여성주의보다 앞세운다. 그리고 여성주의 개념에는 틀린 것이 있다. (만약 틀리지 않았다면, 틀렸다고 지적하는 내가 틀린 것이다. 이후 글에서 이야기하게 될 여성주의 오류는 책 <페미니즘의 도전>에 근거한다.) ‘이런 여성주의 개념을 바탕으로 어떤 실천이 이뤄진다는 것은 여성의 권익 증가와 그럼으로써 양성 평등에 기여하는 결과가 미미할 것이다.’라는 것이 나의 예측이다.

 

(내용이 많아 독후감을 나눠서 올린다. 이 책, 좋은 책이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남녀 불문하고 일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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