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記錄 150211
<순수이성비판>
- 초월성
잘 모르면 기본으로 돌아간다. 그 기본은 어원語原이 될 수도 있고, 정의가 될 수도 있다.
초월 超越 ; (1) 어떠한 한계나 표준을 뛰어넘음. (2) <철학> 경험이나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 그 바깥 또는 그 위에 위치하는 일. 스콜라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에 들지 않는 존재, 신(神), 선(善)이라는 개념의 본연의 자세를 가리킨다. 칸트 철학에서는 초감성적인 것이 우리들의 경험에서 독립하는 일을 가리키며, 실존 철학에서는 무자각적인 일상적 존재의 입장에서 철학적 자각의 입장으로 넘어서 나아가는 일을 뜻한다. [네이버 국어사전]
내가 초월이란 말을 사용할 때는 ‘(1)’의 개념이 일반적이며, (2)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초월이라는 말을 자제하고 보편성이라는 말을 선호하여 사용한다. 황인종은 백인종, 흑인종과 다르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보편성을 공유한다. 사람과 강아지는 다르다. 그러나 젖먹이동물로 보편성을 공유한다. 원과 쌍곡선은 다르다. 그러나 원뿔 곡선으로서 보편성을 갖는다. 초점과 준선으로 표현되고, x와 y에 관한 이차방정식으로서 보편성을 갖는다.
나의 최근의 호기심은 수학-물리(-생명)-정신의 3(4)가지 트랙 track이 어떻게 연관성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호기심은 과거의 호기심의 변주다. 내가 인식한 것을 남도 동일하게 인식하는가, 동일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증명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나는 빨간색을 보았다. 이것은 옆 사람이 빨간색을 본 것과 동일한가? 현대 철학에서는 이것이 동일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없다고 한다.
p47 이 작업을 칸트는 “초월적 분석학”이라고 일컫는데, 그것은 일반 논리학과 구별되는 “초월 논리학”의 일부로서, 전통적 형식 논리학의 의미 기준에서 보면 차라리 “형이상학”이라 해야 할 것이다.
p47 왜냐하면 그런 개념들이 “임의적이거나 우연에”의해 모아진 것인 한, 그것들은 확실한 신빙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일정 부분 확실한 신빙성이 없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우연에 의한 결과에 의존하기도 한다.
p50 ‘초월적 연역’이라 함은 “어떻게 선험적 개념이 대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말한다.
내가 사용하는 정형에는 ‘주관, 간주관, 객관’이 있는데, 이 분류는 대략적인 스펙트럼을 갖는다. 순수한 주관이나 객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인 의미의 ‘객관’이 어떻게 형성되느냐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칸트는 그 과정을 ‘초월(적 연역)’로 정의한 것 같다.
p53 순수 지성개념들은 범주로서 순수 직관을 매개로, 경험적으로 직관되는 사물들에 대한 인식, 곧 경험적 인식을 제공한다.
어느 종교인은 현대인은 과학을 신의 자리에 놓았다고 하였다. 이 비판은 최소한 내게는 적용된다. 그러나 나에게는 종교인의 설교보다 과학이 훨씬 설득적이다. 나의 신 God께서는 나에게 ‘지은 바대로 살어라’라고 하셨으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내 지인은 과학 외적인 논쟁과 상상에 대해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또 다른 호기심은 과학으로 불가능한 것이 어떻게 상상이 가능하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수학-물리(-생명)-정신의 기묘한 관계를 의미할 것이다.
p53 “우리의 감성적 직관 너머까지의 확장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그것에 대하여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우리가 전혀 판단할 수 없는 그런 대상에 대한 공허한 개념들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