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1124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서평 별점 ; ★★★

 

플라톤-노자, 아리스토텔레스-장자, 디오게네스-양주, 이 삼각편대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대외적으로 이야기할 때, 나는 개신교 신자라고 한다. 반면 밖에서 나를 볼 때는 나신교(나를 믿는 종교) 신자라고 한다.

 

개신교에서는 성부(여호화), 성자(예수), 성령 삼위일체를 이야기한다. 나는 성부님의 모습에서 플라톤-노자, 성자님의 모습에서 아리스토텔레스-장자, 성령님의 모습에서 디오게네스-양주의 철학을 읽는다. 성부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정의를 위해 불의와 싸워라. 성자님은 ‘상황에 처해 있는 약자에 대해 배려를 하여라’라고 말씀하신다. 성령님은 이기심, 집착과 같은 타락한 본능에서 초연하라고 하신다.

 

어느 기독교인을 가장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왜곡 적용한다. 상황에 처해 있는 나의 이익을 위해 민감하다. (자신의 이익에 대한 배려) 나와 다른 것을 불의로 정의하고, 싸움을 통해 나의 정의를 세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 자신의 행위에 대해 무책임하다. (책임에 대한 초연)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반종교적 인물이다. 많은 종교 중에서 기독교에 대해 특히 적대적이었다. 그는 (성령님의 말씀 따라) 자신의 죽음에 초연했다. (성부님의 말씀 따라) 불의한 종교와 싸웠다. 그리고 (성자님의 말씀 따라)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아이러니인가? 하필 왜 이름이 크리스토퍼Christopher인가 자꾸 Christ offer로 보이지 않는가.

 

* 성부, 성자님과 달리 성경에 나오지 않는 성령님의 고유명사가 궁금했었다. 위키백과에는 히브리어 “루아하 코데쉬 רוח הקודש”, 그리스어 “프뉴마 πνεῦμα”, 라틴어 “스피리투스 상투스 Spiritus Sanctus”로 나와 있는데, 프뉴마와 스피리투스 상투스는 보통 명사의 고유 명사화다. 히브리어 뜻은 모르겠다. 성경에는 “엘로힘 אֱלוֹהִים”이라는 성부의 이름이 나오는데, 장엄복수인 이 명칭은 성부님보다 성령님에게 더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생각했다.

 

또한 나는 도킨스 Dawkins에서 진중권의 모습을 느끼고, 히친스 Hitchens의 모습에서 김규항의 모습이 느껴진다.

 

* 밑줄 긋기

p23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악명 높은 단계이론, 즉 사람이 부정, 분노, 타협, 우울 단계를 거친 뒤 결국 ‘수용’ 단계에 이르러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이론은 아직까지 내 경우와 그리 들어맞지 않았다.

p43 파스칼의 에세이에 담간 논리가 독창적인지는 몰라도 , 이 논리의 바탕에는 신이 냉소적이고 인간은 비열할 정도로 기회주의적이라는 가정이 있다.

p87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내가 죽지 않는 한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뿐”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arker.”

p119 자기연민이나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게 철저히 주의해야 한다.

p125 솔 벨로: 죽은 우리가 거울로 뭔가를 보기 위해 거울 뒤에 발라야 하는 어두운 물질과 같다.

p130 이런 것이 불멸의 대가다. 누구도 완전하지 않다.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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