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0827
<바른 마음> 서평 별점 ; ★★★★★
나의 서재에 최근 방문하셨던 분들은 예상을 하셨겠지만, 이 책의 별점 평점은 5개다. <도덕의 정치>나 <빈 서판>,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와 일부 내용이 겹침에도 도덕적 기반을 충분히,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p230 우리가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마음이 어떤 식으로 작동해야 하는가보다는 마음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이다.
나의 이 책에 대한 좋은 평가가 가능했던 이유는 글쓴이의 연구방향이 ‘도덕의 기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무엇을 도덕으로 생각하느냐로 접근했던 것이 주효했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접근이다.)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 <모럴 아포리아> 등을 통해서 도덕의 기반이 허약함을, 심하게 이야기하면 도덕의 기반이 없음을 느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도덕이나 윤리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도덕의 실체는 없을지 모르지만 도덕은 실재한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 내가 느꼈던 부족함을 메워주었다.
p517 도덕적 자본은 도덕 공동체를 지탱시켜주는 자원으로 정의할 수 있다./도덕적 자본이란 어떤 공동체가 가진 가치, 미덕, 규범, 관습, 정체성, 제도, 첨단 기술, 그리고 이와 맞물린 진화한 심리 기제의 정도를 말한다. 이 둘은 도덕적 체계로서 함께 작용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규제하며, 나아가 협동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좌우 가치관 논쟁에 대한 설명도 훌륭하다. 글쓴이는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자신이 지지했던 좌파의 약점에 충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 스스로는 ‘우파, 보수주의’라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으니 이번 글에서 생략한다.) 하지만 왜 나는 일반적으로 (수구주의가 아닌) 우파, 보수주의라 불리는 사람들과도 ‘우리’라는 소속감이나 연대감을 느끼지 못할까? 나는 배려-피해, 자유-압제, 공평성-부정,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 6가지 기반을 모두 사용한다. 그러나 나는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의 기반의 감정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의 ‘우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고 황홀경의 역치도 높았다고 해석한다. 나는 권위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권위 있는 사람을 찾기도 하지만, 내 마음 속에 우러나와 권위를 인정할 만한 사람을 사귀지 못했다. 권위를 인정할 만한 대상을 찾지 못하니 충성심을 추구하지만 충성심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고귀함도 마찬가지다. 나는 종교를 떠날 생각이 없으나 내 눈에는 종교를 통해 고귀함을 느끼기보다 추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군집 스위치가 잘 켜지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 반공 강연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강연에 몰입하고 있는데, 나는 강연내용을 분석하면서 강연에 빠지는 친구들을 관찰하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통해서 나의 가치관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