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친구

‘두 친구’와 ‘부부라는 이름의 강’ - 사랑을 시험하다2

 

언젠가 TV에서 만화 영화를 (이번에도 우연히!) 보았다. 만화 영화 끝부분만 보았지만,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장 가능성이 있는 동화 제목이 ‘두 친구’였다. 분량이 적어서 그런지 단행본 책으로는 없고 어린이 동화 묶음집에 한편으로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 페이퍼 링크를 위해 다시 검색하였으나 찾지 못했다.

 

재구성한 요약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청년(A)이 유죄 판결을 받아 사형집행이 결정되었다. 며칠 후 사형을 당하겠지만 죽기 전 소원이 하나 있는데, 다른 마을에 살고 계신 어머니를 뵙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집행관은 그 청년을 그냥 보낼 수가 없다. 그 길로 도망가 버리면 어쩔 것인가. 이때 해결책으로 청년의 친구(B)가 대신 감옥에 갇히고 사형 집행일까지 오지 않으면 대신 사형집행을 받는 조건으로 허락된다. 계획대로라면 집행일 이전 여유 있게 도착해야 했는데 어떤 이유로 해서 시간이 지체된다. (나는 여기서부터 시청하게 되었다.) 귀로를 서두르다 청년(A)은 탈진해 쓰러진다. 쓰러지면서 ‘이대로 내 대신 친구가 죽게 되는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대신 갇힌 친구(B)는 어머니를 만나러간 친구(A)가 배신하고 도망갔을 리 없다고 생각하나 ... 탈진해 쓰러져 정신을 잃었던 청년A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해가 지면서 사형이 집행되려던 순간, 어머니를 만나러 갔던 청년(A)는 돌아와 친구(B)의 사형 집행을 멈춘다.

 

사실 여기까지 이야기에서 감동은 없었다. 다들 예상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

 

돌아온 청년(A)을 원래대로 사형집행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 이 준비하는 동안 청년(A)은 친구(B)에게 따귀를 때려달라고 한다. 비록 한 순간이지만 배신을 할 생각을 했는데, 그냥 사형을 당한다면 한恨이 남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친구(B)는 청년(A)의 따귀를 때린다. 그리고 나서 친구(B)는 청년(A)에게 말한다. 나는 계속 네가 돌아올 것이라고, 배신은 있을 수 없다고, 단지 돌아올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으나 한순간 의심을 했으니 역시 네가 나를 때려야 너를 안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청년(A)는 자기 대신 죽을 고비를 넘긴 친구(B)를 때릴 수 없어 주저하나 결국 따귀를 때리고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청년(A)은 형 집행장으로 간다.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은 이 두 친구를 모두 살려줘야 한다고 소리친다.

 

이후 장면은 기억나질 않는다. 어쩌면 주민들의 함성 속에서 만화영화가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 가운데, 완벽에 가장 가까운 신뢰를 구축한 경우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을 시험하는 행동을 생각하기 힘들다. 양쪽이 배신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신뢰보다 이 이야기가 더 감동적인 것은 우리의 신뢰가 불완전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감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이런 신뢰조차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불신하며서 신뢰를 시험한다.

 

나의 문제 제기는 이것이다. 이 정도의 신뢰가 구축되지 않는 관계 ; 예를 들면 이몽룡이 춘향에게 수청들라하며 시험을 한 것과 같은 불완전한 신뢰/사랑(여기서 이몽룡은 춘향이를 사랑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관계가 있을 때, 이것을 (이분법적으로)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해야 할까 (스펙트럼으로) 그냥 불완전한 신뢰/사랑 관계라고 해야 할까. 다시 말하면 사랑을 시험할 생각이 든다면, 그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그 관계는 청산해야 하나?

 

사랑의 시험의 결과가 해피엔딩인 MBC 코미디 드라마를 소개한다. (어렴풋한 기억에 ‘웃으면 복이와요’의 ‘부부라는 이름의 강’편)

 

남편 구봉서, 아내 배연정이 주인공인데, 남편이 심하게 아내를 무시하고 타박한다. 어느 날 남편은 어떤 여자로부터 연정의 편지를 받는다. 그 후 보다 적극적인 제안을 받는다. 남편은 처음에 호기심, 그리고 당황, 우왕좌왕하다가 마지막에 남편은 그 여자에게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이 자리에 아내가 나타난다. 남편에게 유혹하려 했던 여자는 아내의 후배로 아내의 부탁을 받고 이와 같은 행동을 한 것이다. 아내는 사랑이 없다면, 이 무의미한 결혼 생활을 청산하려 했던 것이다.

 

이 줄거리에서는 사랑을 시험한다는 것의 부정적 의미가 거의 탈색脫色되었다. 코미디 드라마 형식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갑을관계에서 더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을에 위치에 있던 아내가 갑의 위치에 있던 남편을 시험한 것은 사람들에게 크게 부정적 인상을 주지 않은 것이다. (반면 춘향전에서 사랑을 시험한 사람은 갑의 위치는 이몽룡이다.) 만약 나의 판단이 맞는다면, ‘사랑의 시험’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 도구는 이성이 아니고 직관이다. 나는, 우리는 드러나지 않는 많은 사랑의 시험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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