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0610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서평 별점 ; ★★☆
책의 제목으로 기대했던 책은 (아마 읽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의 내용을 기대했을지 모르겠다. 책의 대부분이 창조론에 대한 반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이 잘 알려진 내용이다.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나,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이유’의 철학적인 답변은 극히 적은 분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글은 관심을 끈다.
p87 이것은 아니러니하다. 특별한 창조에 대한 믿음은 신자들이 생물학적 적응도가 더 높은 삶을 살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의식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특별한 비결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우리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하지 않았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진보적인 어떤 문구는 자체적으로 모순을 안고 있다. 예를 들면 ‘관용은 불관용도 관용해야 하는가?’ 관용이 불관용을 관용하면 불관용이 점차 확장되어 사회전체로는 관용적인 사회가 아닌 불관용 사회가 된다. 관용이 불관용을 불관용한다면 관용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 진화론이 옳다면, 창조론에 대한 믿음은 생존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쟁에서 유리함으로 진화론에 비춰보면 소멸될 수 없다. (확률적으로 거의 0에 가까운 창조론 소멸이 이뤄진다고 해도 변이에 의해 창조론이 다시 창발될 것이다.)
이 책의 대표저자는 ‘리처드 도킨스’다. 이 책 다음으로 읽은 <풀하우스>의 스티븐 제이 굴드의 생각/사상과 대비된다. (<다윈의 식탁>를 통해서 이미 잘 알려진,)
질문 ; 진화에 있어 어떤 단 하나의 사건도 (생물학적 목적 ;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생존이 아닐까.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의 신학적 목적이 아니라도) 목적적이지 않았나?
이 질문에 따라 생명이나 지적생명체에 대한 출현의 확률이 매우 달라지게 된다. 보다 진보적이고 우연에 의존한 진화론인 굴드의 생각대로라면 그 확률이 매우 낮아, 창조론의 의심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밑줄 긋기
p81 그 이유는 명백하다. 물리적 세계에 있는 그 무엇도 의식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면, 의식은 물리적 세계의 원가로 존재할 수 없다./의식은 딱 그만큼-마음속에 있는 뭔가에 대한 경험-으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p121 물고기 지느러미가 발생할 때 활성화되는 유전자의 집합을 테트라포드의 팔다리가 발생할 때 활성화되는 유전자와 비교하면, 지느러미와 팔다리의 유전적 차이 목록을 작성할 수 있다. 이 비교는 우리에게 용의자, 즉 팔다리가 생갈 때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 스위치들을 알려준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로 보면 그 목록은 짧다.
p139 다윈의 자연선택은 몸을 만드는 암호문의 무작위적인 변이들의 무작위적이지 않은 생존이다.
p139 공학자들은 컴퓨터 모의실험에서 시스템을 최적화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다윈주의적 방법을 이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