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0514

 

<교수대 위의 까치> 서평 별점 ; ★★★☆

도상학에 관한 책은 <천.천.히 그림 읽기>에서 처음 접했다. 내 스타일에 맞는 책이다. 이때 내 스타일이란 겉으로 잘 들어나지 않는 것을 지식을 통해 이면을 보는 것을 말한다. 이 책 역시 도상학 책으로, 읽는 내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고 읽었다. (하지만 진중권 선생님의 독창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내 경우 도상학 책을 흔히 접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출판과 관련한 기사를 읽다가 눈에 띄어 읽었다. 좋은 책이라고 해서 잘 출판되는 것은 아니다. 잘 팔릴 책이 잘 출판된다. 미국의 경우 어마어마하게 팔린 <괴짜 경제학>도 처음에 출판사를 찾느라고 애를 먹었다고 한다. 편집자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책 내용은 좋은데, 책이 잘 팔릴까요?”

 

그림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림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철학적 내용이 언급된다. 철학적 조명을 받은 그림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것(예를 들면 과학 ; 사실 수학, 사회과학, 정치 거의 모든 분야)에 철학을 조명했을 때의 결과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보다 총괄적인 전체적인 조명을 하면서 짜임새 있는 글은 <미학 오디세이>였고, 이 책은 <미학 오디세이>의 전체 요리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미학오디세이 완간은 2004년이고 이 책은 2009년 출판이네. 개정판 출간인 것 같다.)

 

* 밑줄 긋기

p15 아주 거칠게 분류하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크게 네 가지 수준이 있는 듯하다. 관객은 작품으로부터 정서적emotional 감동을 받거나, 지각적perceptional 쾌감을 얻거나, 지성적intellectual 자극을 받거나, 그리 흔하지 않지만 가끔 영성의spiritual 울림을 얻기도 한다.

p133 부재하는 아동기

p144 재현의 재현

p148 바로크 시대는 세계가 헛된 가상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그런 세계 감정의 예술적 표현이 바로 ‘바니타스vanitas’ 장르이다./원본은 사라지고 복제가 자립성을 띠는 것은 17세기 바로크 세계 감정의 표상이다.

p152 자기상 지각/첫째는 자기 몸에서 빠져나와 3차원 공간 속에서 자기 몸을 보는 체험 OBE out-of-body experience, 둘째는 자기 몸 안에 있으면서 자기 몸의 바깥에서 자신의 분신을 보는 체험 AH autoscopic hallucination, 그리고 셋째는 눈앞에 자기의 분신을 보나, 그것을 보는 자신이 제 몸 안에 있는지 또는 밖에 있는 분간하지 못하는 체험 HAS Heautoscopic 이다.

p170 그때 묘사된 정물은 더 이상 ‘그림’이 아나라, ‘그림 속의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관람자의 지각 또한 ‘대상적’ 수준에서 ‘메타적’ 수준으로 올라간다.

p174 자연을 탐구하는 것은 전근대적premodem 회화이며, 현대적인 회화라면 모름지기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반성적reflective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회화가 현대성을 가지려면, 3차원 공간의 환영을 포기하고 평면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2차원 평면임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p195 파노프스키는 예술 작품에서 내용과 형식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p196 알레고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관념을 눈에 보이는 가식적 형상으로 표현한다./반면 근대의 엠블렘은 거꾸로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명맥한 것을 불명료하게 만들어놓는다. 어떤 의미에서 엠블렘은 수수께끼를 닮았다.

p199 미술사학자 오토 페히트 Otto Ernst Paecht에 따르면, 도상학자들의 고질병은 모든 그림의 바탕에는 원본이 되는 문학적 텍스트가 있다고 가정하는데 있다. 그들은 “조형예술은 그 어느 것도 스스로 창안할 수 없고, 그저 다른 정신적 영역에서 이미 창안된 것을 도해할 뿐이라고 선험적으로 확신한다.”는 것이다.

p211 ‘도대체 제재가 있기는 한 걸까?’

p217 이는 원래 작품에 제제가 존재했는데 조르조네가 그것을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도록 애매하게 만들어놨다는 뜻이다. 이런 것을 ‘반제제 anti-subject’라고 부르기로 하자. 반면 월터 페이터는 조르조네 화파의 작품에는 종종 ‘분절된 이야기’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조르조네가 처음부터 작품의 제제를 아예 설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른 ‘비제제 not-subject’라고 부르자.

p263 ‘검은 회화’의 구상이 속물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할 때, 깨지는 것은 작품을 감싸는 신비한 분위기다. ... 그런 종류의 아우라는 작품 차체보다는 거기에 투영된 전기와 관련이 있다./작가의 전기가 내뿜는 아우리는 실은 작품의 가치와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다.

p263 신비평의 이론에서 말하듯이, 일단 작가의 품을 떠나면 작품은 자립적인 삶을 사는 법. 작품은 작품 자체로 이해가 되어야지, 작품 앞에 작가의 유령이 어른거리면 외려 작품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p263 고야가 위대한 것은 작품에 자신의 전기를 표현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보다 앞서 현대의 세계 감정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을 꼭 고야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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