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40409

 

<피로사회> 서평 별점 ; ★★★★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성과사회에서 도핑사회로. 성과사회는 활동적인 삶이지만 사색적 삶을 잃는다.

 

도핑사회는 성능 없는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 나는 성능과 성과의 이런 불균형에 세 가지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불균형의 압력의 반작용으로 균형점으로 회귀’, ‘불균형이 지속되는 균형점(자화自和, 불균형의 균형)’, ‘불균형의 진행 후에 파국’으로 세 가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우울이라는 감정도 불균형의 표현형이며 그 자체의 효용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대는 천재 영웅들이 사색적 삶으로 활약했던 17세기, 18세기다. 나의 개인적 성향 역시 사색의 과잉과 활동의 부족이 있으며, 현대 사회와 맞지 않으며 (이에 대해 열등감과 죄책감이 있다.) 과거의 사색적 삶의 시대를 동경한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비판으로 지나친 사색적 삶을 탁상공론이라고 했다. 또 다시 결론은 중용, 균형으로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사색을 통해 떠다는 것, 눈에 띄지 않는 것,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 등과 긴 것 느린 것들의 비밀에 접할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 비밀에 접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끝내지 않고) 현대적 의미에 성과를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한 것인지. 이런 잣대로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강신주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가 가능하지 의문이 생긴다.

 

(얇은 책은 내용이 농축되어 책값을 핑계로 막상 무작정 거부하기도 힘들다.)

 

* 밑줄 긋기

p12 이들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이 아니라 긍정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p13 이 새로운 구도는 이질성Andersheit과 타자성Fremdheit의 소멸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한다.

p34 사색적 삶은 아름다운 것과 완전한 것이 변하지 않고 무상하지도 않으며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다는 존재 경험과 결부되어 있었다. 그러한 삶의 기본 정조는 사물들이 그렇게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어떤 조작 가능성이나 과정성에서도 벗어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경이감이다. 근대의 데카르트주의는 이러한 경이감을 회의로 대체한다. 그러나 사색의 능력이 반드시 영원한 존재에만 묶여 있는 것은 아니다. 떠다니는 것, 잘 눈에 띄지 않는 것,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이야말로 오직 깊은 사색적 주의 앞에서만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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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1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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