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기사 중

 신입 여사원들 "성희롱·차별 여전하더라"

 귀엽다며 볼 꼬집는 이사, 참다못해 항의하자 "우리 애기 화났구나, 3천만원 줄까?"


 상큼한 총각 사원도 아닌 그의 느물느물한 표정이라니. “춤 못 추는데요” 하고 사양하자 과장 눈이 휘둥그레졌다. “효리 세대가 춤을 못 춰? 그래서 경쟁에서 살아 남겠어? 여긴 캠퍼스가 아니야. 정글이라고!”


 블루스 거절당한 上司 “효리세대가 춤 못추면 경쟁에서 살아남겠어?”

 넉 달 전 전자회사에 들어간 김영란(가명·24)씨 역시 “세상의 쓴 맛을 이제야 알았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집에서도 아버지 담배 심부름 해본 적 없는 자신이 허구한 날 커피를 타서 나르기 때문이다. 함께 입사한 남자 동기가 부서에 둘이나 되는데도 40대 후반의 부장은 언제고 영란씨만 찾는다. “무슨 다방 종업원 부르듯 ‘영란아~’ 이렇게 불러요. 이게 회사예요?”


 한두 달 전만 해도 ‘여자’라는 콤플렉스 따위는 없다고 믿었다. “성 차별? 오히려 개인 차(差) 아닌가요?” 하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젠 알겠다. 직장생활 하고 결혼해 애 낳고 살아보면 저절로 페미니스트가 된다던 여자 선배들 푸념을!

 대기업 E사에 다니는 김유라(가명·24)씨는 보고서에 수치를 잘못 적는 바람에 수모를 당했다. 서류를 던져버린 것까지는 좋았다. 곧이어 남자 대리 입에서 터져 나온 말. “이런 식으로 일할 거면 빨리 시집이나 가라.” 딱히 반박할 수 없는 성희롱 때문에도 화장실에서 펑펑 눈물을 쏟는다. 외국계 기업 인사부에서 일하는 오세희(가명·24)씨는 목둘레가 조금 깊게 파인 옷을 입고 출근했다가 차장에게 면박을 당했다. “남자들이 신경 쓰여 일을 하겠냐?”


 보고서 던지다 못해 “이런 식으로 할거면 빨리 시집이나 가라”

 지난 한 해 여성부 남녀차별 개선위원회에 접수된 성희롱 사건은 112건〈왼쪽 아래 도표 참조〉. 피해자의 70%가 20대 고학력 여성이다. 당당하기로 소문난 신세대들이 왜 남자 상사들 앞에선 속수무책일까.


 남자도 괴롭다 “성차별·성희롱 여사원 못잖아”


유부녀 상사 “귀여워라… 젊어서 좋겠다” 궁둥이 툭툭 쳐 “야근은 남자가” 궂은 일 도맡기도


 올 초 홍보대행사 P사에 입사한 김영호(가명·26)씨는 직속 팀장의 엄청난 환영사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넉넉한 몸집의 30대 후반 유부녀 대리가 반색하며 뱉은 말. “드디어 남자 후배가 들어왔네. 아이고 귀여워라. 오늘부터 무릎에 앉혀 놓고 일할 건데 괜찮지?” 다행히 석 달 동안 대리 무릎 위에 올라간 적은 없지만, 복사나 박스 나르기 같은 잡무부터 회식자리에서의 원맨쇼까지 김씨는 도맡아 한다. 8대2 비율로 여직원이 많은 회사에서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입사 넉 달 만에 여자 부장을 모시게 된 공기업 사원 정성철(가명·33)씨는 요즘 저녁 시간이 재미없어졌다. 최소 1주일에 한 번은 퇴근길에 술잔을 기울여주던 전임 남자부장은, 시도 때도 없이 호통을 쳤지만 가슴이 통했던 상사였다. 지금은 여자 부장이 간식으로 즐기는 아이스크림이 유일한 낙(樂)이다. 정씨는 또 전에 없던 ‘환경미화’로 바쁘다. 신임 부장은 틈만 나면 “벽에 풍경 사진이라도 걸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새로 들여놓는 책장은 책상과 같은 차분한 톤이면 어떨까” 하고 지시를 해서 난처해 죽을 지경이다. 직장에서 성차별로 괴로움을 겪는 것은 남자 새내기들도 마찬가지다. 벤처기업, 홍보대행사 등 여자 상사들이 많은 회사의 신입사원들은 “남자들이 겪는 차별적 발언, 성희롱성 행위에도 여성단체가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고 호소한다. 여자들의 사회 진출이 늘고 ‘여걸(女傑)’ 스타일의 선배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호소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입사 6개월째인 광고회사 직원 이성훈(가명·25)씨는 나이 많은 여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반드시 한 발짝씩 거리를 두는 버릇이 생겼다. “입사 초기에 모셨던 여자 부장님이 저랑 다른 남자 직원들 궁둥이를 툭툭 치곤 했어요. ‘젊어서, 단단해 좋겠다.’면서. 피하는 게 상책이란 생각에 꾹 참아왔는데, 그 모멸감 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모성 보호’를 내걸고 남자 후배들만 부려먹는 여자 상사를 규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보통신업체에 다니는 최기철(가명·27)씨는 ‘애 엄마’가 태반인 현 부서를 탈출할 궁리에 여념이 없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다 좋다 이겁니다. 그만큼 남자직원들에게 업무가 떠넘겨지면 최소한 미안한 기색이라도 있어야지요.” 심지어 자기 집에서 애, 남편 때문에 생긴 짜증을 직장 부하들에게 푸는 건 정말 참을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중앙부처 공무원 전용석(가명·27)씨는 여자 상사야말로 양성(兩性) 평등의식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했다. “다들 꺼리는 업무는 ‘남자인 네가 하라’는 식이죠.” 대기업체 직원 이상민(가명·28)씨도 같은 소리다. “직업상 야근이 많은 편인데, 우리 여자 상사는 야근도 안 하고 회식 자리에도 거의 안 나타납니다. 여성이라서 힘들 수도 있겠지만, 간부라면 직장 팀워크에도 신경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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