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書日記 130827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 서평 별점 ; ★★★

 내 성격은 명확한 것을 좋아한다. 흑백 논리로 명확히 갈라지는 것. 옳으면 옳고, 틀리면 틀리고.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수학과 물리학과 같은 명확함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므로 나는 어리석다. 그리고 수학과 물리학도 명학하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

 

육아의 경우, 관심과 자율 중 어느 것이 옳을까? 둘 모두 맞다. 지나친 간섭과 방임 중 어느 것이 옳을까? 둘 모두 틀리다. 관심과 지나친 간섭의 경계나 자율과 방임의 경계는? 나의 답은 ‘아이마다 다르다’이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아이들이 말대꾸를 하지 않는다’라는 제목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나는 딸아이가 말대꾸를 했으면 좋겠고, 말대꾸하는 아이가 좋다.

 

우리 딸아이의 경우 적극적으로 말대꾸를 하려고 가르치되 예의를 지키라고 한다. 내가 3년 동안 유치원을 다니면서 딸에게 배워야 할 것은 3가지, 요구 사항은 다음과 같다. 생활 습관, 예절, 공중도덕.

 

p 64 가장 실질적인 해법은 처음부터 아이와 올바른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 밑줄긋기

p 33 그렇다면 프랑스 취재원들이 알려준 아이디어가 모두 성공적이었을까? 물론 아니다./p 252프랑스식 육아법이 능사는 아니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p 72 명확한 규칙을 정하고 절대 물러서서는 안 된다. 아이의 눈물 앞에서 냉정을 유지하라. 아이에게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아이가 부모의 욕구를 존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p 93 체계가 절제력을 길러준다.

p 94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데 주저하지 마라 ; 오른쪽 신발을 오른발에 신으라고 한다 해서 결코 아이의 창의성이 위축되지 않는다.

p 100 가정의 중심은 어른 ; 내 생각은 가족 모두 그리고 옳는 것. p 205 아이들이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생활의 초점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온 가족에게 맞춰졌다.

p 118 비슷한 개념을 표현하고자 할 때 프랑스인들은 ‘육아’ 대신 ‘교육’을 선호하다.

p 134 일상이 여유로워지니 우리 식구 모두 그만큼 더 행복해졌다.

p 216 제 1과제, 뭔가 재미있는 애깃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미 진행중인 대화에 관련해서 딱히 할 말이 없다면, 그 입 다물라! 제 2과제, 남의 이야기를 듣는 능력을 키우라! 제 3과제, 대화를 즐기라! 제 4과제는 ‘스타일 감각 키우다’다. 제 5과제는 ‘삶의 환히’를 알게 하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소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능력’이다. 마지막은 ‘성실한 학습 태도’다.

p 252 결국 프랑스식 육아법과 미국식 육아법 사이 적절한 균형 유지가 관건이다./p 177 자율과 독재의 미학

p 257 물론 프랑스 부모들은 훨씬 엄격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왜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짓을 할까> 서평 별점 ; ★★★

 사람들이 똑똑할까, 멍청할까의 질문에 내 대답의 ‘기본적으로, (그러니까 default 값이) 멍청하다’이다. 사람은 가끔 똑똑하게 생각하거나, 똑똑하게 행동한다. 나는 똑똑하다는 말과 멍청하다는 말을 동시에 듣는다. 똑독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대개 학습지능이 발휘할 때이고, 멍청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실용지능/암묵적 지식이 필요할 때이다.

 

이 책에서는 똑똑함과 멍청함의 중간을 기본갑으로 해서 어떻게 멍청함(똑똑하지 않음)이 발생하는지를 고찰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실용지능과 현명함을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타적인 실용지능이라는 것은 사후확증편향으로 생각된다.)

 

p137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어떤 배에 양 17마리와 염소 16마리가 탄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선장의 나이는 몇 세입니까?” 그러면 학생들은 대부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33세요.”라고 답한다.

 

위 질문은 학습지능과 실용지능의 대립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은 “선생님,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 선장의 나이를 추정할 자료가 질문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부류의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질문이 이상하다. 하지만, 질문을 던진 사람이 선생님으로 나와 비교하여 갑의 위치에 있다. 굳이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여 선생님이 틀린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 이유가 없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추론을 하고 있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행동하면 중간은 간다.” ; 누가 더 똑똑한가?

 

만일 질문을 바꿔본다. 한일합방 시기에 친일여부나, 금융위기 전의 부채, 활황기의 부동산 투자(투기)를 통해 하우스 푸어된 경우. 이런 질문을 연상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변명일 수 있다. 누군가는 친일, 적산불하敵産拂下), 친독재, 부동산 투자(투기), 공적자금 등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고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어떤 가치가 적용된 이야기보다 가치중립적인 대인관계, 경영, 리더십에 관해 실용지능/암묵적 지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 비유는 극단적인 비유거나 적절하지 않을 수 있는 비유인데, (실용지능이 없다는 것은 야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정신질환자이니 말이다.)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혼란스럽거나 내게 그런 것이 없는 것에 대해 화가 난다. 다시 변명을 하자. 실용지능은 선악이나 정의에 관계없는 것에 적용됨이 마땅하다고 할 때, 선악이나 정의는 명확히 구분되는가? 실용지능이라는 도구로 비공식적인 관계(예를 들어, 학연, 혈연, 지연)나 편법, 아부 등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현실은 내 경험을 사회에 지나치게 일반화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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