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지식인의 구체적 사실과 해답

"지식인은 항상 구체적 사실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해서 그는 항상 구체적 해답을 가져야 한다" - 싸르트르

세상을 살다보면 반드시 쉬운 질문들과 맞닥뜨리게 되진 않는다.
예를 들어 어제 내가 준비해간 발제의 끝이 요상하게 흘러서 갑자기 "노무현 식 어법"이 대중사회론과 무슨 관련이 있을지 몰라도 생뚱맞게 그런 질문이 나온다거나, 갑자기 노동운동으로 파고 들어간 문화운동패가 현재 생산해내고 있는 문화적 틀거리들이 과거 80년대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정의내리는 질문 아닌 질문(사실상 이런 류의 질문이 세미나 자리에서 오고간다는 건 개인적으로 탄핵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을 받으며 다시금 지식이 제 아무리 축적된 세상에 살아도 인간의 질문이란 늘 거기에서 거길 왔다갔다 하는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오늘 김명인 선생 홈피에 놀러갔더니 어제 나의 고민과 매우 흡사한 고민을 털어놓은 것을 읽었다.

수업준비를 위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다시 읽다가 이 명제에 덜컥 부딪쳤다. 내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모든 일은 예외없이 '구체적 보편'으로서의 하나의 '사건'이다. 나는 과연 이 구체적 보편들의 연쇄 앞에서 구체적 해답(혹은 대답)을 해 나가고 있는가. 다시 묻는다. 나는 과연 지금도 묻고 대답하는 사람인가? 나는 과연 지금도 내 속에 들어 있는 모순들을 직시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을 바꿔보면 한 마디로 "나는 지식인인가? 나는 지식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하는 성찰을 담고 있는 것이다.  늘상 곁에서 뵙는 분이긴 하지만 지독한 결벽주의자라고밖에 할 수 없는 성정이다. 지식인 나부랑이의 권위 따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혼자 면벽수도하는 사람처럼 지식인됨을 묻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들어가면 도통 해법이 나오질 않는다.

왜? 왜 해법이 나오질 않는가 하면 엘리트와 대중 사이에서 계몽의 서사는 헤맬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호하게 대중을 쓰레기로 처결하여 계몽의 대상, 문화 수용의 대상일 뿐인 존재로 규정할 수도 없고, 과거 민중주의적 시각에서 대중을 혁명의 주체로 설정하자니 대중이 이를 거부하는 양태를 보인다(최소한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 어떤 권위도 존중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순간엔 평소엔 팽개쳐두던 지식인들의 한 마디를 요구한다. 지금 이런 구체적인 보편으로서의 사실(건)이 있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해답(혹은 솔루션)을 제공하라는 요구받는다. 매스미디어는 그런 점에서 지식인의 보잘 것 없는 권위를 가장 유효적절하게 이용하는 매체이다.

노동운동 속으로 파고 들어간 문화운동의 틀이 변하지 않았다고 규정하는 건, 현장에서 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에겐 폭력이다. 왜? 현장의 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화의 형식으로 "대자보"는 당나라 때 최치원도 효과적으로 써먹은 방식인데, 문화판에서 왜 여전히 "대자보"를 붙이는가 하고 묻는다면 거기에 대해 무어라 대답해야 하나? 대답은 여전히 그 방식이 유효적절하기 때문이다. 즉, 상황이 변화하지 않은 이상 현실 사회 구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현장문화운동의 방식만 변화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이 된다. 이를 노동운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현재 불만에 대입시켜 보면 결론은 이렇다.

세상은 이렇게 극심하게 변화(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했고, 대의 민주주의의가 성취되었고,  세계화 이후 기업의 경영 환경이 변화되어 경쟁이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왜 노동조합이 현상황의 발목을 잡는가? 이것이 구체적 사실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 해답은 무엇이 있을까? 얼마전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재선출된 이용득 신임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좋다. 협조해주겠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경영 참가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좀더 구체적이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이 이야기들이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도 아니고,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법안 문제를 이야기해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정치권과 기업) 귀기울여 듣지 않고(다른 말로 하자면 노사정 모두의 이야기가 최소한 양적, 질적의 비례라도 맞춰서 다뤄져야 하는데), 이제 와서 현상적으로 드러난 몇몇 사안들을 가지고 집중타를 날린다.

지식인의 대답이 설령 구체적인 해답(단박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그런 것이 있을리도 만무하지만)일지라도 ... 당신에게 전해지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멀다. 설령, 전해진다손치더라도 귀기울여 들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너무나 많긴 하지만... 일단 내 속이 부글부글해서 한 마디 올려본다. 아무래도 난 대중주의자는 못될 팔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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